“인공지능(AI) 사업을 하려면 데이터와 투자가 필요한데 한국에는 없었어요. 만약 실리콘밸리가 아닌 한국에서 창업했더라면 파산했을 겁니다.”
최종웅 인코어드테크놀로지스 대표는 지난 6일 서울 강남구 한국법인 사무실에서 진행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인코어드테크놀로지스는 LS산전 대표였던 최 대표가 2013년 창업한 에너지 수요 관리 스타트업으로 빅데이터와 AI를 활용해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솔루션을 선보이고 있다. 현재 실리콘밸리 본사를 중심으로 한국과 일본에 법인회사를 두고 있으며 전 세계 총 75명의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최 대표가 한국이 아닌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사업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배경에 대해 최 대표는 데이터와 투자에 있어서 한국은 실리콘밸리에 비해 사업을 시작하기 어려운 구조였다고 토로했다. 특히 데이터를 얼마나 잘 활용할 수 있느냐에 대한 문제는 AI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최 대표는 “당시 한국 전력회사들은 AI 기술 개발을 위한 데이터를 주지 않았다”면서 “오히려 미국의 전력연구소(EPRI)에서 미 정부의 지원을 받아 지난 10년간 가정에서 1시간 단위로 얼마큼의 에너지를 사용했는지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해 연구용으로 공개했고, 이 자료를 바탕으로 기술을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 대표는 국내 AI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검토하고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실리콘밸리는 시장우선주의라는 원칙 아래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 소비자에게 가치로 돌려주는 데 있어 개방적이고 경쟁적”이라면서 “규제할 것은 규제해야 하지만 규제를 풀어야 할 부분에서는 과감히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최 대표는 데이터를 공개하는 것이 전체 산업 발전에도 선순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 정부로부터 받은 데이터로 우리가 사업을 시작했고, 이 사업을 하면서 얻은 데이터를 다시 서울대와 서강대를 비롯한 국내 8개 대학에 공개하고 있다”면서 “최근에는 이 데이터를 활용해 대학들에서 세계적인 학술지에 논문을 내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에너지 분야에 한정돼 이야기하자면) 한국전력 등 공기업이 투자펀드를 조성해 장기간에 걸쳐 육성하고 지원하는 생태계를 만들어야만 국내 에너지 AI의 발전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내에서는 제대로 된 투자를 받을 수 없었던 것도 최 대표가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으로 작용했다. 최 대표는 “LS산전 사장 출신이라는 배경이 있으니 한국에서 사업하면 투자받기 쉬울 줄 알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면서 “인코어드의 기술이 당시 시장에 없는 앞선 기술이었는데 이에 대해 한국 투자자들은 잘 이해를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우리나라의 벤처캐피털(VC)들은 대부분 투자하고 2~3년 뒤에 바로 회수를 해야 하는 구조이다 보니 에너지처럼 장기간의 연구개발을 기다려주지 않았다”면서 “오히려 조지 소로스나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관심을 가져 투자를 했고, 당시 투자자들이 한국에 설립하면 기업 가치가 저평가될 수 있으니 실리콘밸리에서 시작하라는 조건을 걸었다”고 말했다. 이때 최 대표는 소프트뱅크로부터 1,100만달러(약 120억원)를 투자받았고, 이 투자금을 시작으로 실리콘밸리에 인코어드테크놀로지스를 설립해 본격적인 기술 개발에 들어갈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최 대표는 앞으로 인코어드테크놀로지스가 나아갈 방향과 비전에 대해서도 밝혔다. 최 대표는 “최고의 전력망 독립형 풀스택 AI 플랫폼을 완성해 에너지 생산자와 에너지 소비자가 연결돼 골치 아픈 에너지 문제로부터 자유롭게 만드는 것”이라며 “사람이 고민할 것을 기계가 대신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백주원기자 jwpai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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