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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론직설]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 취약점은 살 만한 기술기업이 없다는 것"

<김철환 카이트창업가재단 이사장>

단순 서비스형 사업보단 기술창업 성공모델 많이 나와야

창업자, M&A로 엑시트→또 다른 기술개발 선순환 필요

'신산업 고용문제 해결' 정부가 개입하는 건 바람직 안해

타다 사태, 모빌리티 혁신에 깊이 고민하는 기회 되기를





김철환 카이트창업가재단 이사장은 21일 대전 KAIST 문지캠퍼스 재단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국내 스타트 업계도 기술창업을 통해 차별화를 꾀하고 창업자가 경영권을 고집하기보다는 M&A를 통해 엑시트를 한 뒤 또 다른 기술개발에 도전하는 창업가 정신이 절실하다”고 조언했다. /대전=권욱기자


최근 무신사까지 10호 유니콘 기업이 탄생했지만 전문가들은 아직까지 독보적 기술을 갖춘 유니콘은 나오지 않았다며 기술창업이 보다 활성화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2012년 대한민국의 기술창업 생태계를 키우는 데 힘을 보태겠다며 민간 비영리 재단법인을 설립한 이가 있다. 김철환 카이트창업가재단 이사장이다. 김 이사장은 2006년 첫 창업에 나선 후 성공의 단맛과 실패의 쓴맛을 모두 경험했다. 성공적으로 엑시트(EXIT)를 하기도 했고 수십억원을 쏟아부었지만 참패로 끝난 사업도 있었다. 이런 자신의 실패 경험이 창업을 하는 후배들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7년째 재단을 이끌어가고 있다. 좀처럼 언론 인터뷰에 응하지 않는 김 이사장을 21일 대전 KAIST 문지캠퍼스에 있는 재단 집무실에서 만났다.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과 따뜻한 말투였지만 갈 길이 먼 창업 생태계에 대해서는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미국이나 중국의 창업 생태계가 활발한 이유 중 하나는 인수합병(M&A)을 통한 엑시트가 활성화돼 있기 때문”이라며 “최근 대기업에 대한 M&A 규제는 많이 풀렸지만 여전히 살 만한 스타트업은 적다”고 지적했다. 단순 서비스 모방형 비즈니스 모델로 승부하기보다는 기술창업을 통해 차별화를 꾀하고 창업자가 경영권 유지를 고집하기보다는 M&A를 통해 엑시트를 한 뒤 또 다른 기술개발에 도전하는 창업가 정신이 절실하다고 조언했다.

-창업하면서 성공과 실패를 모두 경험했다. 기억에 남는 사례를 꼽자면.

△전자종이를 개발한 이미지앤머티리얼스는 여러 대기업과 프로젝트를 수행했는데 운이 좋게도 LG디스플레이에 매각할 수 있었다. 다른 대기업도 의사를 보였지만 LG디스플레이에 인수되는 게 시너지효과가 클 것으로 판단했다. 당시 SK텔레콤과도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스마트폰이 보급되기도 한참 전인데 사물인터넷(IoT)이 세상을 바꿀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IoT 세상에서는 뭐가 달라질까 상상해보니 둘둘 말리거나 접을 수 있는 디스플레이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배터리를 접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스마트 워치와 스마트 의류 등 웨어러블 기기에 폭넓게 사용할 수 있는 플렉시블 배터리 말이다. 기술개발은 완료했는데 이미지앤머티리얼스를 엑시트한 직후라 겸업금지 조항에 걸려 법인 설립을 하지 못했다. 당시 3년의 겸업금지 조항에 서명했는데 기간 설정은 협상하기 나름이라 창업 후배들한테는 최대한 그 기간을 줄여보라고 조언한다(웃음). 해당 기술을 코스닥상장사인 제낙스(옛 샤인)에 매각했다. 제낙스는 플렉시블 배터리 기술에 대해 해외 특허까지 취득하고 상용화에 나선 것으로 알고 있다.

-실패했던 경험도 있다고 들었는데.

△배터리의 발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배터리에 구멍을 뚫는 기술을 연구하는 회사가 눈에 들어왔다. 서울대 출신으로 대기업 연구소에서 일하던 분들이 창업한 오렌지파워다. 워낙 기술이 좋고 타이밍도 앞서간다고 판단해 처음에 투자자로 합류했고, 나중에는 대표이사를 맡았다. 애플이 해당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국내외 특허를 찾아보던 중 이 회사를 알게 됐고 우리 기술을 보더니 대용량 배터리 공동개발을 제안했다. 그런데 개발 완료 시점에 한 언론에 보도되면서 애플측이 비밀유지협약(NDA)를 어겼다며 강하게 항의했고 거액의 손해배상까지 요구했다. 결국 회사 전체에 큰 타격을 입었고 다른 파트너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면서 연구를 계속 하느라 개인 돈도 60억원 넘게 쏟아 부었다. 하지만 이미 기술이 급속하게 범용화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지난해부터 청산절차를 밟아 최근 거의 마무리됐다.

-벤처캐피털을 설립해도 됐을 텐데 굳이 재단을 만든 특별한 이유가 있나.

△안 그래도 처음에 중소기업청(지금이 중소벤처기업부)에 신청했더니 왜 벤처캐피털이 아닌 재단이냐는 질문부터 하더라. 물론 돈을 벌고자 했으면 벤처캐피털을 설립했을 거다. 하지만 회사 매각과 기술 매각으로 수백억원의 거금이 손에 들어왔다. 과연 이 돈이 온전히 내 돈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당시 나의 멘토가 ‘네가 행복한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면 좋지 않겠냐’고 했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국내 벤처캐피털은 상당수가 멘토보다는 재무적투자자(FI) 역할에 머물고 있다. 그런데 나도 창업을 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이 매일매일 뭔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조언을 해줄 멘토였다. 스타트업은 형태는 법인이지만 개인회사처럼 운영되면서 최고경영자(CEO) 개인의 판단에 중요한 의사 결정이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과정에서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경험 많은 선배나 멘토의 도움이 절실하다. FI 관점에서 접근하다 보면 회사의 지속성보다는 당장 1년 후, 3년 후 수익성에 더욱 비중을 두게 된다. 그런 한계를 넘어서고 싶었다. 또한 나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멘토로 참여해야 하는데 이분들을 모시려면 재단 형태가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재단은 주로 기술창업에 투자하는 것이 원칙으로 알고 있는데.

△창업을 경험했던 사람이자 여러 창업가를 접했던 입장에서 보면 확실한 기술적 우위나 비즈니스 모델의 우위가 없으면 지속하기 힘들다. 그나마 쿠팡이나 위워크처럼 자본력이 뒷받침되면 어느 정도 버틸 수 있겠지만 대다수 스타트업은 그런 레벨까지 가기 힘들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창업을 하면 모든 요소를 다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인력·조직문화·기술·자본·마케팅 등 회사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모든 요소가 하나의 울타리처럼 감싸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스타트업은 그렇지 않다. 마치 삼지창이나 주머니 속 송곳처럼 확실한 것 하나가 튀어나오는 게 중요하다. 그게 비즈니스 모델의 혁신성이 될 수도 있고 독보적 기술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해외와 국내 기술창업 시장을 비교하면.

△최근 미국을 방문하면서 ‘이러다가 한국은 정말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기술을 가진 우리 창업가들이 너도나도 미국 실리콘밸리에 터를 잡고 있다. 미국의 혁신 속도는 이처럼 엄청난데 과연 우리는 뭘 하고 있나 위기감이 들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약 7년 전 알리바바에 방문했는데 부사장이 직접 회사 소개를 해줬다. 그에게 3년 후 알리바바는 어떤 회사가 될 거냐고 물어보니 자신 있게 두 배 성장할 거라고 답하더라. 그리고 그가 말한 대로 정확하게 3년 후 알리바바는 두 배 성장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가. 자신의 성장지도를 가진 알리바바와 같은 회사가 국내에 얼마나 있을까. 네이버나 카카오 등 정보기술(IT) 기업들이 많은 스타트업을 인수하거나 분사하고 있지만 과연 혁신적이라고 할 수 있는 기술회사는 얼마나 될까. 이런 부분은 기술 스타트업이 채워줘야 한다. 한 우물을 열심히 파면서 특정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을 확보하고 이를 대기업이 사줘야 한다. 그게 바로 혁신 생태계인 것이다.

김철환 카이트창업가재단 이사장은 21일 대전 KAIST 문지캠퍼스 재단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국내 스타트업계도 기술창업을 통해 차별화를 꾀하고 창업자가 경영권을 고집하기보다는 M&A를 통해 엑시트를 한 뒤 또 다른 기술개발에 도전하는 창업가 정신이 절실하다”고 조언했다. /대전=권욱기자


-애플리케이션 기반의 창업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은데.

△애플리케이션 창업은 진입 장벽은 낮지만 그만큼 지속하기가 어렵다. 특허 등록을 한다고 해도 차별성이 확보되지 않는 한 유사한 서비스 출현을 막기 힘들다. 당연히 비즈니스 모델을 보호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반면 에어비앤비나 우버는 좀 다르게 봐야 한다. 우버만 해도 인터페이스를 기가 막히게 만들었다. 전문가의 눈으로 봐도 UI(User interface 사용자 인터페이스)나 UX(User Experience 사용자 경험)가 엄청나게 훌륭하다. 더 대단한 건 탁월한 보안 기술이다. 데이터 비즈니스에서 핵심으로 꼽는 두 가지 축이 바로 데이터와 그 데이터를 지키는 보안 기술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해킹의 사각지대 아닌가. 데이터 비즈니스를 하더라도 확실한 보안 기술이 담보되지 않으면 지속하기 어렵다. 바로 이런 분야에서 기술창업이 활발하게 일어나야 한다.

-국내에도 그런 회사가 있을 텐데.

△물론 많진 않지만 있다. 대표적으로 천정희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가 창업한 크립토랩이 있다. 4세대 암호인 동형암호의 세계적인 권위자인데, 현대 공인인증서 등 인터넷 전산시스템에 사용되는 3세대 암호 ‘공개키암호(RSA)’는 수학의 정수론에 기반하고 있다. 하지만 이론적으로 해킹이 가능하고 차세대 컴퓨터인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되면 깨질 수 있다. 동형암호는 데이터를 복원할 때 ‘가로챌 키’가 아예 없어 해킹이 현재 수준의 슈퍼컴퓨터로도 불가능하다. 재단은 이런 기술의 독보성을 높게 보고 투자했고, 팁스(TIPS)에도 올려줬다. 현재 시리즈A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한발 앞서 시장을 예측하는 능력이 기술창업의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3차원(3D) 프린터를 예로 들어보자. 최근 몇년간 3D 프린터가 제조 혁신의 아이콘처럼 됐는데, 내가 3D프린터 기술을 접한 것도 꽤 오래됐다. 3D프린터 제조 기술은 접근이 용이하다. 미국 3D프린터 제조업체 스트라타시스의 FDM 특허가 2008년 만료되면서 같은 방식의 3D프린터 제작이 가능해졌다. 그렇다면 지금은 뭘 생각해야 할까. 바로 소재다. 생체 재료나 뼈를 프린트하는 등 전혀 새로운 방식의 접근법이 필요하다. 미국은 2013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3D 프린팅 기술을 차세대 제조혁명의 필수요소로 언급했고 집권 기간 총 10억 달러를 투자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특히 정부 주도로 전 세계 3D프린팅 전문가들을 미국 대학으로 불러 들이며 기술 인프라의 초석을 다졌다.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이 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인공지능(AI)이나 빅데이터를 통한 4차 산업혁명도 중요한 이슈인데.

△특정 스타트업이 정부 과제로 제출한 데이터는 공공재로 봐야 한다. 그럼 이렇게 모아진 공공재가 데이터베이스(DB)화됐는가. 이게 다른 스타트업이나 대학 연구실의 데이터와 데이터포맷이 같은가. 즉 데이터간 호환할 수 있는가를 따져봐야 한다. 국내의 경우 연구자간 데이터포맷이 서로 다르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데이터 세탁(다른 사람이 쓸 수 있게 호환하는 작업)을 가장 힘들어한다. 호환할 수 없는 데이터는 빅데이터가 아닐 스몰데이터의 컨비네이션에 불과하다. 누군가 데이터포맷의 표준화 작업을 해야 한다. 정부 기관이 주도를 하든, 관련 협회에서 하든 공유 가능한 데이터포맷이 있어야 한다. 이런 기본적인 인프라조차 조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4차 산업혁명은 구호에 불과하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정부부처 담당공무원이 순환보직으로 돌아가는 게 가장 큰 맹점이다. 1~2년 만에 자리가 바뀌다보니 새로 업무를 파악하다가 시간을 버리고 만다. 당연히 책임지지 않으려는 보신주의가 만연하고,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도 당연지사다. 정부 고위 관료가 우리나라와 미국의 AI 기술 격차가 3~4년 정도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카카오나 네이버가 3년 후 구글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4차 산업혁명의 중요성을 말만 할 것이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보다 혁신적이면서도 근본적인 변화가 절실하다.

-국내 벤처 생태계가 열악한 이유는 무엇일까.

△엑시트 시장이 여전히 활성화되지 못한 거다. 생태계의 선순환 시스템이 미약하다는 얘기다. 보통 사람들은 어떤 일을 시작할 때 끝난 시점에서 어떤 성취가 있을까 상상한다. 이러한 동기 부여가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목적지로 가게 만드는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 미국 실리콘밸리 창업가에게 사업을 하는 목적을 물으면 95%가 시스코나 애플에 M&A되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글로벌 회사에 자신이 창업한 회사가 매각되는 것을 지상목표로 삼는 것이다. 반면 국내에서는 삼성이나 네이버에 M&A되고 싶어 창업했다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 스타트업 CEO들은 자신의 회사를 팔 준비가 돼 있어야 하고 어느 시점에 얼마를 받고 매각할 것인지도 구체적인 그림을 갖고 있어야 한다. 현재 한국에서 엑시트는 철저하게 기업공개(IPO)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따져보면 IPO 성공률은 3% 정도다. 100곳 중 3곳 정도만 증시에 상장할 수 있다고 보면 나머지 97곳은 실패하는 실정이다.

-대기업들이 국내 스타트업에 관심이 없다는 지적도 있는데.

△대기업의 스타트업 M&A 규제는 상당 부분 완화된 만큼 마음만 먹으면 M&A는 가능하다. 더구나 대기업 입장에서도 새로 회사를 설립하거나 사업부를 신설해 시장에 진입하는 것보다 해당 기술을 확보한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것이 시장 진출 타이밍을 훨씬 앞당길 수 있다. 하지만 대기업에 물어보면 국내에 살 만한 기술 스타트업이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만한 독보적인 기술력을 갖춘 스타트업을 찾기 힘들다는 얘기다. 이 지점에 대해서는 우리 스타트업 업계가 좀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 한국 시장 전체로 봤을 때 밸런스가 맞아야 한다. 대기업이나 중견기업도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서는 기술기업을 적극적으로 인수할 필요가 있다. 20년 전만 해도 벤처기업인에게 사업 목적을 물으면 삼성이나 현대차의 1차 벤더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1차 벤더가 된 후 안정적으로 매출을 내고 상장하는 게 목표라는 얘기다. 지금 시대에는 그렇게 해서는 새로운 혁신은 불가능하다.

-국내 창업 환경은 꽤 좋은 편으로 알고 있다.

△절대적으로 좋다고 볼 수 있다. 단적으로 미국과 비교해도 엔젤투자를 받을 수 있는 확률이 10배 높다. 미국에서 엔젤투자를 받는 레벨이 되면 한국에선 시리즈A 수준이다. 국내에서 창업을 100곳이 하면 엔젤투자는 20곳이 받고, 시리즈A가 10곳, IPO는 3곳 정도라 볼 수 있다. 미국은 100곳 중 10곳 정도만 엔젤투자를 받는다. 나머지는 투자를 못 받지만 성공하는 기업도 적지 않다. 스타트업 창업 초기에 돈이 너무 많이, 또한 너무 쉽게 뿌려지는 것도 문제다. 10여년 전 국내 엔젤투자 규모가 400억원이었는데, 지금은 5,000억원에 달한다. 엑셀러레이터도 200곳이 넘는다고 하는데 국내 시장 규모에 비해 너무 많은 것 같다. 과연 이들이 어떻게 먹고 살지 의문도 든다. 상당수는 정부 과제로 연명할 가능성도 높다. 또 다른 형태의 좀비 기업을 양산할 수도 있다.

-창업 후 3년까지를 창업 초기로 규정하는데, 다소 부족하다는 얘기도 들린다.

△우리나라는 창업 후 3년 내에 피봇(Pivot)을 하는 곳이 많다. 시장에 내놓았더니 혁신적인 기술이 아니라는 판단을 하거나 타깃 고객을 수정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피봇, 즉 방향전환을 해서 다시 시장에 내놓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개발 기간만큼 시간이 필요한데, 3년으로는 부족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정부 지원은 보통 3년, 7년으로 나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창업하자마자 2년차인 이듬해 정부 지원 신청하느라 분주하고, 그 다음해인 3년차 정부 지원 받으려고 사업계획서 쓰다 보면 3년이 훌쩍 가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창업 초기 기준이 5년 정도로 조정되면 스타트업들도 차분하게 기술 개발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정교하게 다듬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기술 창업 얘기를 좀더 하자. 아무래도 연구실 창업 등 대학가에서 창업이 활발하게 일어나야 할 것 같은데.

△연구실 창업은 지금도 많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교수들 상당수가 해당 기술의 오너가 본인이라고 착각하는 거다. 우리나라는 이익을 개인화하는 경향이 강한데, 대학에서도 교수들이 기술을 개발하면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엄밀히 말하면 교수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직무 발명이 맞다. 권리는 학교에 귀속되는 것이다. 학교 안에서 공공재가 되면 해당 교수가 아닌 학생들도 그 기술로 창업할 수 있는 거다. 그게 바로 개방형 혁신이다. 대학은 개방형 혁신의 첨병이 돼야 한다. 게다가 연구실 창업의 경우 교수가 대표를 맡고 연구실 조교들이 직원으로 근무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런 경우 일반 회사의 대표이사와 직원과 같은 관계가 되기가 참으로 힘들다. 학생들은 지도를 받는 입장이라 수직적 관계가 지속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 학생들이 지쳐서 회사를 떠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바이오 헬스케어 분야에서는 대학병원에서 창업해 성공한 케이스가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병원이라는 사회와 학교라는 사회의 공통점은 둘 다 내보낸다는 거다. 학교는 학생들을 졸업시키고, 병원은 회복한 환자를 퇴원시킨다. 병원은 일반인 환자가 대상이다. 의사의 창업이 많아지고 성공률도 높아지는 이유는 이들의 절박함이 핵심 동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생명을 다루는 만큼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한다. 창업의 성공은 날카로운 엣지를 확보하느냐 아니냐에 달렸는데, 의사들의 경우 절박함이 엣지로 작용한다. 절박함이 극치에 닿아 있는 문제들, 해결의 니즈가 큰 것들을 다루는 만큼 창업 성공률도 높아지는 거다.

-최근 타다 얘기를 안 할 수 없는데 각종 규제나 정치권의 갈지자 행보가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다.

△타다의 기술이 얼마나 혁신적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는 만큼 이는 차치하고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몰려 올 때 기존 산업의 고용자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고민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그것의 해결 방법이 무조건 정부가 개입하는 건 아닐 것이다. 시장에 맡겨두면 정상적인 혁신이 가능할 것이다. 정부가 나서서 일일이 동선을 관리하면 혁신은 요원하다. 타다 사태가 기존 택시회사에 많은 자극을 준 것도 사실이다. 다만 타다에 대한 논의, 그 자체로 끝날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 모빌리티 혁신에 대해 우리 사회가 좀 더 깊이 고민하고 실천 방안을 모색하는 기회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전=정민정 논설위원 jminj@sedaily.com

He is…

1969년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나 KAIST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8년 특례보충역으로 한솔기술원 전문연구원으로 일하며 전자주민증과 고흡수성수지를 개발했다. 2000년 디피아이솔루션즈에 입사해 고해상도토너 개발과 유기투명전극 개발을 맡았으며 2006년 이미지앤머티리얼스를 창업해 전자종이를 개발했다. LG디스플레이에 매각 후 2012년 민간 비영리 재단법인 카이트창업가재단을 설립했다. 한국엔젤투자협회 부회장, 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를 맡고 있으며 최근엔 혁신 약물제형 소재기술을 개발한 스카이테라퓨틱스를 창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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