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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모르고 있던 종이와 영수증 이야기





최근 키오스크(무인 주문기) 매장이 늘면서 중·장년층, 장애인 등 기계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늘고 있다.

유명 시니어 유튜버 박막례(72세) 씨가 한 햄버거 매장에서 키오스크를 체험하며 어려움을 겪는 영상이 큰 화제였다. 9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한 이 영상은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때 사용자의 입장에서 충분히 고민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준다.

키오스크와 비슷한 논쟁을 불러 일으키는 이슈가 또 있다. 바로 전자 영수증 도입이다. 전자 영수증이 활성화되면 연간 원목 34만여 그루의 나무를 아낄 수 있고 종이 영수증보다 더욱 편리하다는 게 논쟁의 골자다. 그런데 종이 영수증은 정말 환경에 해로울까? 전자 영수증을 쓰면 소비자들은 더 편리할까? 이는 조금 더 세심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제지업계 관계자는 “종이를 만드는 데 필요한 펄프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천연림이 아니라 별도의 인공 조림지에서 생산된 나무에서 얻어진다”면서 “제지회사와 펄프회사가 운영하는 조림지는 쌀을 얻기 위해 벼 농사를 짓는 것처럼, 종이의 원료를 얻기 위한 ‘나무 농장’ 같은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제지회사 등이 운영하는 조림지의 어린 묘목들은 성장하면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다량의 산소를 생산하며 오히려 지구 온난화 현상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즉, 종이와 종이 영수증이 환경을 파괴하고 오염시킨다는 인식은 오해라는 것.

이러한 오해를 차치하고라도 종이 영수증을 전자 영수증으로 전면 대체하려는 정책은 몇 가지 측면에서 제고할 필요가 있다.



■ 증빙부터 확인까지 종이 영수증이 편리해서 사용하는 사람들

우리는 익숙하고 편리하기 때문에 일상에서 종이 영수증을 사용하고 있다. 많은 직장인이 업무상 사용한 비용을 법인카드 등으로 지불하고 이를 증빙하기 위해 종이 영수증을 제출한다. 개인 생활에서도 구매 내역을 확인하거나 포인트를 적립하기 위해 종이 영수증을 사용하고, 교환이나 환불할 때 필수적이다. 종이 영수증이 주차권을 대신하기도 한다.



가계부를 작성할 때도 종이 영수증은 내가 어디에 얼만큼의 돈을 썼는지 파악하는데 편리하다. 카드 내역서는 어느 매장에서 얼마를 결제했는지 알 수 있지만 무엇을 사는데 얼마를 썼는지는 알 수 없다. 소상공인 등 개인 사업자에게도 종이 영수증은 꼭 필요하다. 경비로 사용한 금액이라도 영수증이 없으면 비용으로 처리하지 못 하거나 가산세를 물어야 하기 때문에 종이 영수증을 반드시 보관해야 한다.

이처럼 종이 영수증은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하는 편리한 습관이다. 그런데 전자 영수증이 도입되면 어떨까? 사람들은 전자 영수증이 종이 영수증보다 사회적으로 더 유용하고 소비자에게 더 편리하다고 생각할까?

IT 회사에서 마케터로 일하는 이혜란 씨(37세)는 “저는 모바일이나 디지털에 익숙한 사람이라서 전자 영수증 자체에 대한 거부감은 없어요. 그런데 제가 하루 동안 소비하는 곳만 봐도 온라인 몰부터 마트, 카페까지 엄청 많거든요. 전자 영수증은 이걸 브랜드마다 별도의 어플리케이션을 설치해야 하고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 거잖아요? 더 귀찮고 번거로울 것 같은데요.”

대기업에서 상품 기획자로 일하는 이지원 씨(34세)는 “전자 영수증은 일종의 빅 데이터가 생기는 거니까 대량의 개인 정보가 유출될 수 있잖아요. 종이 영수증은 제가 관리를 잘 하면 되지만 전자 영수증은 해킹이나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을 막지 못 하면 피해가 너무 큰 거죠.”라며 전자 영수증이 대형 개인정보 유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밝혔다.

또한 전자 영수증을 사용할 때 광고를 시청하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미 너무 많은 광고를 강제로 보고 있는데 매번 물건을 사고 나서 영수증을 확인할 때까지 광고를 봐야 하는 건 너무 불편하고 불쾌해요. 소비자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발상인 거죠.”

소상공인, 영세 사업자에게는 비용도 큰 부담이다. 구매목록 등이 포함된 전자 영수증을 발급하기 위해서는 단순 카드 결제 기능만 갖춘 기존의 캣(CAT) 단말기를 고가의 POS 단말기 시스템으로 교체해야 한다. 국내 결제 단말기의 무려 74.7%를 차지하는 230만대 캣 단말기를 POS 단말기로 교체하기 위해서 약 3조 6천억원의 비용이 든다.

새로운 제도는 기존의 불편을 덜어줄 때 의미가 있지 않을까? 현재 전자 영수증 도입 논의에서는 기존 소비자의 익숙한 사용 습관이나 개인정보 노출에 대한 걱정, 전자 기기 사용이 쉽지 않은 노년층과 장애인 등 디지털 취약 소비자의 불편이 고려되지 않고 있다. 제도를 사용할 사람들의 목소리에 보다 귀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

/김동호 기자 dongh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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