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만들기(Making a Miracle).”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루카스 시카고대 교수는 지난 1993년 자신의 논문에서 한국의 경제성장에 대해 이같이 정의했다. 이후에도 한국은 ‘기적’이라는 표현도 부족해 보일 정도로 눈부신 성과를 써내려 왔다. 그렇지만 한국 기업의 성과를 단순 ‘기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우리 기업들은 해외업체와의 기술제휴 등을 통해 초기에는 시장 변화에 수동적으로 대응했지만 선두에 올라선 후에는 경쟁사가 따라올 수 없는 능동적인 사업전략을 펼쳤다. 바로 격(格)을 달리 한 것이다. 세계적 마케팅 전문가 잭 트라우마는 “한국의 기업들이 보여준 전략은 ‘남들보다 빨리, 다르게’에 있다”며 “중국 기업들이 일본이 아닌 한국을 따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10월 미국 애틀랜타 ‘2019 북미 상용 전시회(NACVS)’에 현대차의 첫 수소전기 대형트럭 콘셉트카 ‘HDC-6 넵튠’이 공개됐다. 화물을 적재하고 장거리 운전이 가능한 수송용 대형트럭으로, 8개의 수소탱크를 탑재했다. 수소전기차가 경제성을 가지고 상용화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은 36톤에 달하는 거구의 화물차로 답을 했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후발주자인 현대차는 수소차 시장에서 ‘초격차’를 실현해나가며 관련 생태계를 주도하고 있다. 완성차 제조사의 낡은 이미지는 버렸다. 내연기관 시장에서는 추격자였지만 누구보다 시장의 변화를 빠르게 포착했다. 한발 앞서 수소차 기술을 축적하며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냈다. 현대차의 수소차 개발은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래 친환경차 시장을 내다본 정몽구 회장은 현대차 내부에 별도 조직으로 수소전기차 연구개발팀을 꾸렸다.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정 회장이 개발팀을 직접 찾아가 “100대를 실패해도 된다”고 말했던 일화는 아직도 직원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당시 수소전기차 개발비용이 대당 3억원을 넘었고 일본이나 유럽 완성차 업체들도 쉽사리 도전장을 못 내미는 상황에서 현대차의 도전은 과감했다. 당시 개발에 참여했던 현대차 관계자는 “20년도 전에 수소를 생각했다. 항상 따라만 가던 우리에게 수소차에 대한 도전은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었다고 회상했다. 초창기 수소차 모델인 ‘싼타페 수소연료전지차(FCEV)’를 2000년 세상에 선보인 데 이어 2005년 연료전지 시스템의 국산화에 성공하며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현대차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2013년에는 세계 최초 수소차 양산 모델 ‘투싼ix Fuel Cell’을 시장에 내놓았으며 2018년에는 ‘넥쏘’를 출시하며 수소차 주도권을 쥐게 된다.
현대차 22년간 수소차 개발…넥쏘 선보이며 시장 주도권
반도체 후발업체 삼성도 ‘끊임없는 연구’로 경쟁사 압도
실패 용인하고 협업 생태계 구축…‘과감한 도전’ 빛 발해
현대차의 수소차 초격차 전략은 현재진행 중이다. 2018년 12월 현대차그룹은 중장기 수소 로드맵인 ‘FCEV 비전 2030’을 공개하고 오는 2030년 국내 연 50만대 규모의 생산체제를 구축할 계획이다. 현대차는 지난해 10월 스웨덴 연료전지 분리판 코팅 기술 전문업체 ‘임팩트 코팅스’ 등과 전략투자 및 공동기술 개발 협력 사업을 진행하는 등 수소차 분야에서 초격차를 벌리기 위해 수소생산·저장업체, 수소연료전지 부품업체까지 동맹의 폭을 넓히고 있다. 현대차는 ‘수소차 동맹’을 통해 연료전지 개발에서부터 수소생산 및 인프라 구축에 이르기까지 수소전기차 관련 혁신기술을 상용화시켜 수소전기차의 제조원가와 수소 생산 비용을 대폭 낮춘다는 전략이다.
빠른 경영판단이 승패를 좌우한 산업은 누가 뭐래도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다. “기술력 없는 삼성의 반도체 진출은 3년 내에 실패할 것”이라는 조롱을 들으면서도 일본 업체 등과의 기술제휴에 공을 들였다.
조롱은 경악으로 바뀌었다. 1983년 5월 세계 D램 시장 주력제품인 64K D램 개발을 시작해 불과 7개월 만에 완료하며 시장을 경악시킨 삼성전자는 1987년에는 글로벌 반도체 업체와의 격차를 확연히 좁혔다. 당시 삼성 경영진은 4Mb D램 개발 방식을 셀을 쌓는 ‘스택’으로 할지, 아래로 파고 들어가는 ‘트렌치’를 할지를 놓고 장고에 들어간다. ‘복잡한 문제일수록 단순히 보려 한다’는 이건희 회장의 판단은 명료했다. 향후 문제 발생시 발 빠른 대응이 가능한 스택 방식을 택한 삼성전자는 트렌치를 채택한 도시바 등을 제치고 1993년 글로벌 1위 D램 제조사에 등극하게 된다. 결단의 순간은 다시 찾아왔다. 1993년 이 회장은 1조원의 손실을 감수하고 반도체 5라인을 8인치 웨이퍼 생산라인으로 선택했다. “과감한 시도를 하지 않으면 영원히 기술 후진국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절박감 및 삼성 특유의 ‘초격차’ 전략에 기반해 과감한 판단을 내리며 격이 다른 1위를 굳혔다. 삼성전자가 역설적이게도 1위에 대한 집착을 버린 것 역시 또 다른 초격차 전략이다. 낸드 플래시 시장에서는 특유의 ‘협업’ 생태계로 시장을 주름잡는다. 삼성전자는 1992년 도시바와 기술제휴를 한 후 아이팟·아이폰 등을 내놓은 애플을 등에 업고 시장을 주도하게 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시스템 반도체 1위를 목표로 한 ‘비전 2030’을 공개하는 등 새로운 목표를 제시하며 외연 확장에 힘쓰고 있다. /양철민·서종갑기자 chop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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