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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 야단법석] 이재용의 수상한 재판과 '대놓고 봐주기' 논란

파기환송심 "삼성 준법감시委 양형 반영" 결정에

분위기 단번에 뒤집혀... 시위자들 이재용에 돌진

애초부터 법리판단보다 재판부 성향이 관건인 재판

"李 개인범죄... 기업 삼성은 피해자" 비판 잇따라

같은 재판부의 이중근 회장 선고 이후 논란 증폭

뇌물받은 박근혜·최순실은 2심 징역 25년·20년

지난 17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속행 공판을 마친 뒤 나오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성난 시위자가 돌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52) 삼성전자(005930) 부회장 변호인 측에서 제출해주신 삼성의 새로운 준법감시제도 부분은 기업범죄 양형 기준에 핵심적 내용입니다. 지난 1991년 제정된 미국 연방법원의 양형기준 제8장에 언급된 양형 사유입니다. 여기에는 준법감시제도가 실효적으로 운용돼야 한다고 합니다. 미국 연방법원은 기업 범죄로 재판받는 ‘기업’에 대해 실효적 준법감시 제도를 명하고 전문가를 통해서 시행 과정을 평가하고 감독했습니다. 통계를 보면 2002~2016년 연방법원은 무려 530개 기업에 대해 실효적 준법감시제도를 명령했다고 합니다. 이 부회장과 삼성그룹은 준법감시위원회를 실효적으로 운영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건 우리 재판부뿐 아니라 삼성이 우리 국민에 대해 한 약속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국민 중에는 이런 삼성의 약속에 대해 의구심을 가진 분 있으므로 독립적인 제3자 전문가로 구성된 전문심리위원으로 준법감시제도가 잘 실행되는지 점검하려 합니다.”

지난 17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 303호 법정. ‘국정농단’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4차 공판에서 재판장을 맡은 정준영(53·사법연수원 20기)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 부장판사는 재판을 진행하다 문득 삼성이 지난 9일 급하게 마련한 준법감시위원회를 언급했다. 이어 이 조직을 전문가들에게 살피게 해 이 부회장 양형에 반영하겠다고 선언했다. 재판장이 내뱉은 뜻밖의 발언에 법정은 술렁였고 흥분한 일부 방청객들은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파기환송심 4차 공판에 출석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연합뉴스


◇이재용에 확연히 유리해진 재판 흐름=애초 이날 재판은 이 부회장 뇌물 혐의의 수동적 성격을 증언해줄 것으로 예상됐던 손경식 CJ(001040)그룹 회장의 증언을 듣는 게 핵심인 자리였다. 외려 손 회장이 일본 출장을 이유로 돌연 재판에 불출석하면서 공판 전까지는 삼성 측에 비상등이 켜졌다.

그러나 정 부장판사이 삼성의 준법감시제도를 거론하면서 재판 분위기는 단숨에 뒤집혔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항간에 재판부의 언급, 삼성의 제도 설치, 위원장 기자회견 등이 이재용 봐주기를 위한 명분 쌓기가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며 강력 반발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재판부는 특검과 이 부회장 양측이 전문심리위원 후보자 1명씩을 추천해 달라며 기존 방침을 그대로 밀고 나갔다.

여기에는 ‘이 부회장의 범죄=삼성의 기업 범죄’라는 등식이 전제됐다. 삼성은 지난 9일 김지형 전 대법관(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준법감시위원회를 마련했으나 아직 본격 가동하지는 않았다.

이 부회장이 이날 재판에서 얻은 소득은 또 있었다. 재판부가 특검이 신청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건 관련 기록들을 증거로 채택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파기환송심은 이 부회장 승계 작업의 일환인 구체적 현안을 따지는 재판이 아니므로 양형을 정할 때 증거 조사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화가 난 일부 시위자들은 재판이 끝난 뒤 법원 앞에서 이 부회장에게 돌진하다 방호원 등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구속 상태 당시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서울경제DB


◇파기환송심 관건은 처음부터 ‘재판부 뽑기’=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구속됐던 이 부회장은 첫 번째 2심에서 삼성의 승마지원 용역대금(36억원)만 유죄 판단을 받아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지난 2018년 2월 석방됐다. 하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8월29일 삼성이 ‘비선실세’ 최서원(개명 전 이름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에게 제공한 말 세 마리(34억원)의 실질 소유주를 최씨로 보고 이 부회장 사건을 2심 재판부로 파기환송했다. 삼성이 영재센터에 제공한 후원금(16억원)까지 이 부회장 승계와 관련이 있는 제3자 뇌물로 판단하면서 이 부회장의 총 뇌물 액수는 원심 36억원에서 86억원으로 무려 50억원이 증가했다.

이에 따라 이 부회장의 실형 가능성이 급격히 높아졌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액이 50억원을 넘으면 무기징역이나 징역 5년 이상을 선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이 파기환송심에서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재판장이 재량으로 형을 깎아주는 ‘작량감경’ 전략뿐이었다. 형법상 유기징역을 감경할 때는 형기의 절반을 깎도록 하며 집행유예의 대상이 되는 형량은 3년 이하의 징역이다. 이 부회장은 이론상 법정형 하한 근처인 징역 5~6년의 절반, 즉, 징역 2년6개월~3년까지 감형을 받아야 집행유예 선고를 끌어낼 수 있다. 애초부터 이 파기환송심은 ‘재벌 총수를 봐줄 재판부를 만나느냐, 못 만나느냐’에 모든 게 달려 있었다.

공교롭게도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지난해 10월 첫 공판 때부터 묘한 발언을 내놓았다. 재판장인 정 부장판사는 유·무죄 판단에 대해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은 채 갑자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을 거론하며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당시 만 51세 이건희 총수는 이른바 삼성 신경영을 선언하고 위기를 과감한 혁신으로 극복했는데 2019년 똑같이 만 51세가 된 이 부회장의 선언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이 재판이 유·무죄 다툼보다 이 부회장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에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은연 중 암시한 것이다.

정 부장판사는 나아가 이 부회장에게 숙제도 내줬다. 그는 “이 사건과 같은 범죄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기업 내부의 실효적인 준법감시제도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그전까지는 삼성 내부적으로 논의조차 안됐던 준법감시위원회가 정 부장판사의 이 한 마디에 3개월 만에 뚝딱 탄생했다.



지난 22일 서울 서초동 변호사회관에서 열린 ‘삼성공화국으로의 회귀’ 긴급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개인범죄에 삼성은 피해자” 곳곳에서 ‘봐주기’ 우려=4차 공판에서 나온 재판부의 결정은 각계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재판장이 이 부회장에 대해 드러내놓고 감형 의지를 내비친 게 아니냐는 의견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특히 삼성의 준법감시위원회 설치와 이 부회장 형량 감경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느냐는 지적이 잇따랐다. 대법원 취지대로라면 회삿돈을 부정하게 빼돌린 이는 이 부회장이고 횡령 범죄의 피해자는 삼성그룹이 된다. 준법경영 방안은 피해자인 삼성이 만들었는데 이를 이유로 가해자인 이 부회장의 형량을 줄이는 건 모순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참여연대, 경실련, 국회의원 43명(더불어민주당(34명), 정의당(6명), 바른미래당(1명), 민주평화당(1명), 민중당(1명) 등)은 지난 21일 공동성명을 내고 “재판부가 준법감시위원회를 명분으로 이 부회장 구명에 나선다면 또 다른 사법농단과 법·경 유착의 시작”이라며 강한 우려를 표시했다.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과 경제개혁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참여연대는 지난 22일 변호사회관에서 ‘삼성공화국으로의 회귀’라는 주제로 긴급간담회를 열고 이 부회장 재판부 결정을 ‘이재용 봐주기’라고 아예 못 박았다.

김종보 민변 변호사는 이 자리에서 “재판부가 제시한 미국 연방 양형기준 제8장은 ‘개인’이 아닌 ‘기업’에 대한 양형기준”이라고 꼬집었다. 최한수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기업 범죄가 주로 최고경영자(CEO)의 보수와 관련된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재벌 총수의 그룹 지배권 승계를 위한 범죄가 대다수”라며 “재판부가 내부 통제장치의 역할을 과대평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부회장 재판의 수상한 흐름은 법원 내에서도 논란이 됐다. 설민수(51·사법연수원 25기) 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는 재판 당일인 지난 17일 법원 내부 통신망인 코트넷에 ‘정준영 부장판사님께’라는 글을 올리고 “준법감시위원회의 실제 효과는 낮을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이중근 부영 회장 항소심 이후 논란 더욱 증폭=이 부회장 감형 가능성에 대한 논란은 22일 수백억원대 횡령·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중근(79) 부영그룹 회장 항소심 이후 더 증폭됐다. 이 부회장과 같은 재판부가 심리한 이 재판에서 정 부장판사는 이 부회장을 법정 구속시키면서도 1심에서 선고한 총 징역 5년 형을 절반인 징역 2년6개월로 줄였다. 재판부는 “이 회장이 2018년 5월 준법감시실을 신설해 독자적으로 준법경영을 위해 노력하는 점 등을 양형에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작량감경이 적용된 재판이었다.

법조계에선 이 판결이 이 부회장 파기환송심 선고의 예고편일 수 있다는 반응이 나왔다. 범죄를 저지르고 준법감시제도를 도입한 부분이 이 부회장 사건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 역시 원칙적으로 징역 5년 이상을 선고받아야 하는 입장인 데다 실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는 점도 이 회장과 크게 겹치는 부분으로 지목됐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중근 회장은 해당 사건 이전에도 횡령죄로 구속 기소돼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적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 회장은 전과가 있는데도 같은 범죄를 또 저질러 법정에서 바로 구속됐다.

초범인 이재용 부회장은 여기서도 자유롭다. 만약 이 부회장에게 이 회장과 비슷한 잣대로 작량감경이 적용될 경우 형량만 절반이 깎이는 것이 아니라 초범이라는 이유로 집행유예 판단까지 내려질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뜻이다.

이 부회장을 통해 뇌물을 받았다는 최서원씨는 지난해 8월 2심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지난 22일 특검은 파기환송심에서 최씨에 대해 이보다 많은 징역 25년을 구형했다. 최씨와 경제공동체로 지목돼 역시 뇌물죄가 적용된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 혐의로만 2심에서 징역 25년을 선고받았다. 이달 15일 파기환송심 첫 공판은 그의 불출석으로 5분 만에 끝났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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