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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문특파원의 차이나페이지] <47> 習 '만기친람' 통치에 대응시스템 마비...양회 집착하다 골든타임 놓쳐

■코로나19에 초토화된 中 재난컨트롤타워

1월 '원인불명 폐렴' 발생 보고에도 '샤오캉' 선포 양회만 집중

재난대응 '영도소조' 신설했지만 리커창도 習 지시없인 안움직여

초기대응 실패로 양회마저 연기...習 '무오류성' 금 갈 위기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0일 베이징의 안화리 주민센터를 방문해 코로나19 예방·통제에 대한 지시를 하고 있다. 국가 사무 모두를 직접 장악하려는 그의 시도가 초기대응 실패를 초래했다는 지적이 많다. /베이징=신화연합뉴스




#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지난 13일 자 1면에 흥미로운 편집을 했다.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 겸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자 국가주석이 인민해방군 의료인력 2,600명의 후베이성 파견을 승인했다는 기사와 리커창 국무원 총리가 ‘전염병 업무 영도소조’ 회의를 주재했다는 내용을 위·아래로 실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재난에 대응하는 컨트롤타워가 영도소조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 기사가 중요하지만 순서가 바뀌었다. 일개 조치에 불과한 군병력 파견을 오히려 크게 다뤘다.

# 앞서 10일에는 시 주석이 마스크를 한 채 베이징의 한 병원을 방문했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지 두 달여 만에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시기가 절묘했다. CNN 등 미국 언론에서 “시진핑이 보이지 않는다”고 일제히 비판한 직후였다. 이날 이후 중국에서는 시진핑의 발언도 부쩍 많이 보도되고 있다.

코로나19가 확산되는 가운데 중국의 재난 대응 체계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만기친람(萬機親覽)’식으로 시 주석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면서 국가의 재난 대응 시스템이 마비 상태라는 지적이다. 재난 대응은 국내 사무를 맡고 있는 리 총리 소관이지만 지금은 모든 사람이 시 주석만 바라보고 있다. 시 주석의 초기대응 실패는 결국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연기로 이어지며 정치적 위기까지 초래했다. 시진핑의 지시가 있어야 조직이 움직이는 것이 현 중국 공산당의 최대 약점이다.

중국은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지 한 달이 훨씬 지난 지난달 25일에야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회 산하에 ‘전염병 업무 영도소조’를 만들었다. 영도소조라는 제도는 당과 국가 사무를 통합해 처리하는 별도의 조직이다. 특정 재난으로 영도소조를 만든 것은 이번이 첫 사례로 알려졌다. 시진핑은 이날 상무위 회의에서 “각급 당 위원회와 정부는 바이러스 예방·통제를 업무의 최우선순위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래 중국에서 재난 대응은 국무원 소관이다. 재난이 발생한 지역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지원이 필요할 경우 리 총리가 수장으로 있는 국무원(중앙부처)이 활동하게 된다. 리 총리가 재난 대응의 컨트롤타워가 되는 셈이다.

이미 국무원에는 재난 담당 조직이 있다. 2018년 국무원 기구개편에서 응급관리부와 국가위생건강위원회가 신설됐다. 응급관리부는 기존 국가안전생산감독관리총국을 바꾼 것인데 성격이 이름에서 드러난다. 즉 기구의 목적이 산업 안전에서 재난 대비로 변경됐다. 또 기존의 국가위생계획생육위원회에서 바뀐 위건위도 가족계획을 의미하는 ‘계획생육’을 뺐다.



이렇게 본다면 중국에서 재난 대응 기구로서의 응급관리부와 위건위 역사는 아주 짧은 셈이다. 중국에서 대형 재난이 자주 발생하고 또 재난이 일어날 때마다 허둥대는 이유다.

코로나19 대응은 일단 위건위의 업무다. 국가위건위가 지역 위건위를 통해 전염병 확산을 저지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 별도의 ‘영도소조’를 만든 것은 시 주석이 직접 코로나19 사태를 컨트롤해야 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으로 보인다. 물론 ‘조장’이 리커창이기는 하지만 영도소조는 정치국 상무위에 직접 보고하게 돼 있다. 영도소조가 없다면 리 총리가 국무원 조직을 통해 업무를 처리하고 시 주석은 직접 개입할 수단이 없게 된다.

중국은 일단 영도소조를 만들어 국가 전체의 에너지를 동원할 수 있는 시스템은 갖췄다. 여기에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기도 한 시진핑은 인민해방군도 동원했다. 앞서 대규모 병력을 후베이성으로 파견한 것도 시진핑 관할에 따른 것이다.

이번 영도소조 체제는 2008년 9월 8만여명의 사망·실종자를 발생시킨 쓰촨 대지진의 교훈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일반적이다. 쓰촨 대지진이 일어나자 당시 국무원 총리였던 원자바오가 현장에 급파돼 구조와 수습을 책임졌다. 행정기관들을 총동원했는데 문제는 군이었다. 원 총리의 사고현장 진입 명령을 군에서 무시한 것이다. 국무원 총리에게는 지휘권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원자바오는 노발대발했고 나중에 베이징으로 돌아온 후 이들 군지휘관에게 책임을 물었다는 후문이다. 물론 그 자신이 직접 하지는 못하고 당시 국가주석이자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인 후진타오를 통해서였다.



이후 군병력이 대규모로 동원될 정도의 재난은 다행히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2년 만에 대규모 전염병이 창궐한 것이다. 베이징의 한 관계자는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생각에서 아예 공산당 내부에 영도소조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코로나19 같은 국가급 재난에 국가원수가 직접 나서는 것은 당연하다. 외신들과 중국 전문가들은 두 가지 이유에서 시 주석에게 치명적인 실수가 있었다고 분석했다. 첫째는 모든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한 가운데 코로나19 사태를 안일하게 생각했고, 다른 하나는 이른바 ‘샤오캉(小康) 사회’를 선포할 올해 양회에 집착했다는 것이다. 양회는 입법기구인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자문기구인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를 일컫는다.

최근 공개된 공산당 이론지 ‘치우스’에 따르면 시진핑 자신은 2월3일 상무위 연설에서 “이미 1월7일에 ‘원인불명 폐렴’이 발생했다고 보고를 받고 이에 대한 대응 지시를 처음 내렸다”고 공개했다. 한참 늦은 1월20일에야 시진핑이 상황을 파악했다는 국내외의 비판에 대해 해명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달 7일의 대응 지시는 ‘잘해보라’는 일반적인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기본적으로 전염병 대응은 국무원 산하 위건위 소관이다. 시진핑이 당시에 세부 내용까지 챙겼다고는 보기 어렵다.

명보 등 홍콩 언론은 1월7일 정치국 상무위 회의에서 내려진 지시를 소개했는데 시 주석은 “예방 조치에 주의를 기울이되 이로 인해 지나치게 공포심을 불러 다가오는 춘제(중국의 설) 분위기를 망치지 말라”고 말했다. 문맥상 후자에 초점이 맞춰진다. 지역의 후베이성 위건위는 당연히 내용을 축소했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도 의료진이나 전염병 전문가들은 이미 경고를 한 상태였다. 하지만 양회를 앞둔 후베이성 당서기로서는 일이 크게 불거지는 것이 별로 좋지 않았을 것이다.

춘제 분위기를 망치지 말라는 지시는 올해가 중국 공산당에서 차지하는 중요성 때문이다. 내년은 중국이 목표로 하는 ‘두 개의 100년’ 중 하나인 ‘중국 공산당 창건 100주년’이다. 덩샤오핑 때부터 주장해온 ‘샤오캉 사회’가 실현될 것으로 중국은 기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올해 양회의 중요성은 아무리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당시 1월6일부터 우한시에서 지방 양회가 진행 중이었고 1월12일에는 후베이성 양회가 예정된 상태였다.

모든 업무를 직접 지시하고 처리하는 만기친람식인 시진핑의 통치 스타일이 사태 악화를 초래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의 지시가 없으면 2인자인 리 총리도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리 총리가 코로나19의 발원지인 후베이성 우한을 처음 방문한 것은 1월27일이다. 전염병 업무 영도소조가 만들어지고 나서다. 이는 쓰촨 대지진 때 원자바오 당시 총리가 지진 발생 당일 전용기를 타고 쓰촨성을 찾은 사실과 비교된다. 시진핑이 1월20일 강력대응을 지시하면서 시스템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참 늦었다. 코로나19는 이미 중국 전체를 넘어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갔고 발원지인 우한은 초토화됐다.

여전히 지방조직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방정부들이 코로나19 방역과 경제활동 재개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코로나19로 소비가 감소하고 생산이 정체되는 가운데 경기둔화 우려를 느낀 시진핑이 최근 방역 강화와 생산 재개라는 두 가지 명령을 동시에 내렸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양회가 전염병 재난을 더 키운 것도 아이러니다. 2003년 사스 사태 당시 3월 양회를 개최하면서 전염병이 확산됐다. 2003년은 후 주석이 앞선 장쩌민으로부터 권력을 최종적으로 물려받았을 때다. 당시의 양회는 이를 완성하는 세리머니였다. 사스는 그 전해 말부터 확산되기 시작했지만 누구도 이 때문에 신정부의 ‘축제’를 망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양회는 그럭저럭 마무리됐지만 빈틈을 타고 사스는 전 세계로 퍼져 막대한 희생자를 만들었다. 정권을 쥔 후진타오가 그해 4월 ‘사스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이후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잡았다고 하지만 쇼에 불과했다.

초기대응 실패로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있는 코로나19는 이제 중국 정치마저 흔들고 있다. 당초 오는 3월 초로 예정됐던 양회가 연기되면서 ‘샤오캉 사회’ 실현 선언을 앞두고 있는 시진핑의 ‘무오류성’에 금이 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코로나19 사태가 더 악화하고 그로 인한 경제적인 고통이 예상보다 커진다면 시 주석 본인이 모든 비난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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