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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 재고손실만 수천억…車·조선 등 주력산업도 '도미노 타격'

■국제유가 18년來 최저…먹구름 짙어진 기업

코로나發 수요위축 속 저유가 장기화땐 디플레 우려

조선 발주 멈추고 車판매 감소…철강도 '유탄' 불가피

항공업계도 회복세 난망…정부 '유가 대응반' 재가동





국제유가가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면서 국내 산업의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 저유가 추세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글로벌 경기 침체를 부채질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정유·화학 등 유가에 민감한 업종뿐 아니라 국내 주력 산업 전반이 수요 위축으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사태가 어느 정도로 전개될지 예측할 수 없어 기업이 가장 두려워하는 불확실성도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중동 자금이 국내 금융시장에서 이탈할 수 있다는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유가 반등 모멘텀 실종…수요 위축 불 보듯=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 경제가 타격을 받으면서 원유 수요가 급격히 줄자 유가는 하루가 다르게 낙폭을 키우고 있다. 설상가상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원유 감산 합의에 실패한 후 가격 인하와 증산계획을 밝히면서 유가 반등 모멘텀은 실종된 상태다. 이에 국제유가가 배럴당 10달러대까지 고꾸라질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판국이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코로나19가 글로벌로 확산하면서 생기는 수요 감축 탓에 저유가 국면이 장기화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유가 하락은 당장 중동을 비롯한 주요 산유국의 경기에 직격탄을 날릴 것으로 보인다. 산유국이 재정적자에 처하지 않을 수준의 유가를 ‘재정수지 균형 유가’라고 하는데 대표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균형 유가는 배럴당 80달러 수준으로 알려졌다. 현재 유가가 재정적자를 피하기 위한 기준 가격의 4분의1 수준에 불과한 만큼 이들 국가의 경기가 급속히 얼어붙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저유가로 인한 파급효과가 산유국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 수요 위축을 가속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원유가 대부분 산업에 기본적으로 쓰이는 원자재임을 고려하면 기업 입장에서 일반적으로 유가 하락은 비용이 절감되는 플러스 요인이다. ‘아낀 기름값’에 따른 소비자의 실질구매력 상승으로 수요가 늘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소비 심리가 급속히 얼어붙고 있는 터라 유가 하락이 되레 디플레이션 등 더 큰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국책 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인한 불확실성이 여전한 상황에서 유가까지 되살아나지 못하면 전 세계 경기가 둔화되는 악순환 고리로 빠져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내 주력 산업 연쇄 타격 우려=글로벌 수요가 쪼그라들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대외 의존도가 높은 국내 산업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정유업계다. 짧은 시간에 유가가 하락하면 정유사가 과거 높은 가격에 구매한 원유 재고의 평가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노우호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2월 이후 유가 급락에 따른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의 합산 재고손실이 3,283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저유가로 호황을 누렸던 2015~2016년에는 수요가 뒷받침됐기 때문에 실적이 좋아질 수 있었다”며 “지난해 미중 무역분쟁, 올해 코로나19로 세계 경제가 위축되는 국면에서 같은 상황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다른 업종 역시 유가 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적지 않다. 조선업의 경우 유가가 하락하면 유전 시추와 원유 생산을 위한 해양플랜트 발주가 막힐 수 있다. 특히 올해 발주가 예상됐던 1조원 규모의 프로젝트들의 발주가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소비심리 위축으로 자동차 업계 역시 상황을 낙관하기 어렵다. 조선·자동차 등 핵심 전방산업이 침체되면 철강업계도 저유가의 유탄을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항공업계도 여객 수요가 급감하면서 생존의 기로에 놓인 터라 유가 하락으로 인한 반사이익을 기대할 상황이 아니다.

유가 급락에 따라 기업의 불안감이 증폭되는 가운데 정부는 직접적인 대응책을 내놓기보다는 상황 파악에 우선 주력하는 모습이다. 정부 관계자는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석유공사·에너지경제연구원이 참여하는 ‘국제유가 대응반’을 재가동해 대응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며 “현재는 저유가 추세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가늠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김우보·조양준기자 박효정기자 ub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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