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11일 저녁 친구들과의 ‘리그 오브 레전드’ 게임 약속에 늦은 현모(16)군이 노트북을 켠 후 디스코드에 접속한다. 현군은 디스코드에서 친구들과 함께 만든 채널에 입장해 이미 게임을 시작한 친구들의 게임 영상을 실시간으로 시청한다. 디스코드는 이처럼 실시간 영상공유 기능을 제공한다. 친구들의 게임이 끝난 후 현군도 참여한 ‘롤’이 시작됐다. 유저들 모두 디스코드의 음성채팅을 통해 서로 대화하며 게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2. 기자가 디스코드에 로그인한 후 1분도 안 돼 디스코드 내부에서 유통되는 음란물에 접근했다. 18세이어야 한다는 ‘연령제한 채널’ 메시지가 떴지만 ‘계속하기’ 버튼만 누르면 다음 단계로 이동할 수 있었다. 이달 7일 디스코드에서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운영하거나 유포한 혐의로 만 12세 촉법소년이 검거됐다. 범행 시작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같은 혐의로 검거된 10명 중 8명이 청소년이다.
또 다른 ‘n번방’이 있다고 드러난 디스코드는 온라인 게임에 필수인 메신저기 때문에 청소년층이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간편한 접근성이 독이 돼 청소년이 성범죄에 버젓이 노출되고 있다.
◇하루 메시지 9억6,000개 오가는 메신저=디스코드는 2015년 게임 유저를 위한 음성채팅 메신저로 탄생했다. 처음부터 ‘많은 사람과 같이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는 미션으로 게임 유저를 공략했다. 롤이나 배틀그라운드 등 팀플레이 게임을 할 때 없어서는 안 되는 채팅 애플리케이션이다. 긴박한 상황에서 말보다 빠른 것이 없기 때문이다. 게임 자체 음성채팅보다 성능도 훨씬 뛰어나다. 목소리가 잡음 없이 거의 실시간으로 전달된다.
디스코드의 특징은 간편함이다. e메일 주소만으로 가입할 수 있다. 프로그램을 설치하지 않고 웹브라우저만으로 이용이 가능하다. 온라인 커뮤니티 구성도 손쉽다. 함께 게임할 사람이 필요하면 디스코드 내 커뮤니티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초대 인터넷주소(URL)를 공유하거나 공개방으로 설정하면 간단하게 채팅에 참가할 수 있다. 3인 이상 채팅을 위해서 일일이 한 명씩 초대했던 스카이프에 비해 강점이다. 과거 디스코드는 ‘이제 스카이프와 팀스피크는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라는 문구로 홍보한 바 있다.
출시 4년 만에 가입자 수는 2억5,000만명을 넘어섰다. 우리나라 인구의 약 5배가량의 사람들이 디스코드 회원이다. 텐센트 등으로부터 2억달러 이상의 투자금도 받았다. 2018년 말 당시 기업가치는 20억달러(약 2조4,250억원)에 달한다.
◇불법 음란물에 쉽게 접근=문제는 디스코드의 낮은 문턱 때문에 넘쳐나는 불법 음란물에 청소년도 그대로 노출된다는 것이다. 연령제한 채널에 들어갈 때 ‘18세 이상’이어야 한다는 경고 메시지가 뜬다. 하지만 누구나 ‘계속하기’ 버튼만 누르면 접속할 수 있다. 불법 음란물 커뮤니티 초대 URL도 포털사이트 검색을 통해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청소년이 즐겨보는 인기 유튜브 채널의 댓글에 URL이 남겨지기도 한다. 실제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유튜브 댓글 보고 들어갔는데 처벌 받냐”는 문의글이 수차례 게시됐다.
◇“성적 약탈자의 사냥터”=이미 해외에서는 디스코드를 악용한 아동 성착취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해 1월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용의자가 디스코드를 통해 피해자에게 처음 접근한 아동 성착취 사건을 보도했다. 이어 2월 BBC방송은 “소아성애자가 학대 자료를 공유하기 위해 디스코드를 이용한다는 증거를 수사기관이 확보했다”고 지적했다. 디스코드가 범죄에 악용되고 있다는 외신 보도는 갈수록 늘고 있다. 지난해 6월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아이들이 디스코드에서 음란한 채팅과 콘텐츠에 접근하는 상황을 막을 방법이 없다”고 전했고 지난해 말 뉴욕타임스는 “디스코드 등 플랫폼은 성적 약탈자의 사냥터”라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디스코드는 ‘미성년자와 관련된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콘텐츠를 공유하는 행위’ 등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국내에서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협조해 성착취 영상이 유통되는 17건의 디스코드방을 폐쇄했다. 또 올해 3월 민갑룡 경찰청장은 디스코드가 경찰에 협조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더욱 음지로 숨어드는 디스코드 내부의 채널 전부를 적발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김성태기자 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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