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필자는 ‘디자이너는 단순하게 옷을 만들어서 파는 직업이 아니다’ 라고 생각한다. 디자이너는 자신이 경험하고 느끼는 것에서 영감을 받아 패션이라는 매개체로 해석하고 풀어낸다. 그리고 그것을 대중들 앞에서 컬렉션이라는 것으로 보여주게 된다. 굉장히 예민한 상태로 몇 달을 살고 많은 돈과 시간을 그 작업에 사용한다.
서울 패션위크는 한국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에게 핵심 무대이자 가장 큰 콘텐츠이다. 디자이너들이 6개월 동안 피땀 흘려 만든 창작물을 대중 앞에 선보이는 중요한 그리고 어쩌면 ‘거룩한’ 날이다. 패션쇼를 보고 옷을 주문하는 바이어부터 트렌드를 분석하는 에디터, 패션디자이너의 꿈을 꾸는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필자에게 컬렉션은 학창 시절의 멋진 꿈이자 미래의 동경이었으며, 패션이라는 것을 직업으로 선택하고 살아가게 된 이후에는 고충과 갈증을 풀어주는 몇 안 되는 유일한 행위였다.
그런데 이런 패션위크가 최근 몇 년 전부터 ‘이다’가 아닌 ‘였다’로 바뀌는 분위기다. 사석에서 만난 몇몇 디자이너들은 더 이상 패션위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패션 관련 직종이나 전공 학생들조차 서울 패션위크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한때 세계 5대 컬렉션을 꿈꿨던 서울 패션위크가 큰 난관에 봉착한 모습이다.
그러나 필자는 13년째 패션위크에 참석하고 있다. 매 시즌 많은 돈과 노력을 쏟아낸 결과물을 선보이기에 언제나 ‘거룩’한 마음가짐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브랜드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사실 패션위크는 더 이상 수지 타산으로 접근해서는 안 되는 콘텐츠다. 옷을 만드는 비용, 참가비, 연출료 등을 더할 경우 패션쇼를 한 번 여는 비용은 적어도 한 시즌 브랜드를 운영하는 수준만큼이나 들어간다.
판매 방식도 변화해 패션쇼 현장보다는 휴대전화를 이용한 실시간 방송이나 소셜 네트워크를 이용한 콘텐츠가 훨씬 더 파급력이 좋다. 단 한 시간 방송만으로 많게는 억대 단위의 옷을 파는 시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서울 패션위크를 비롯한 전 세계 패션위크가 취소됐고 다음 시즌 역시 기약할 수 없게 됐다.
처음 데뷔했을 때가 생각이 난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패션위크의 문제점은 주제만 다를 뿐 무게는 여전히 같다. 더 나아가기 위한 이야기임을 알기에 그 안타까움만 커지고 있다.
패션위크는 반드시 지속돼야 한다. 여전히 이 일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패션을 돈을 버는 행위 이상의 무엇인가가 반드시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적어도 패션을 좋아하고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은 꼭 봐야 하는 콘텐츠로 자리 잡기 위해 더 많은 분석과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