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안전망으로서의 기본소득 도입을 논하는 토론회에서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원희룡 제주지사는 ‘한국형 기본소득’이 필요하다고 입을 맞췄다. 다만 둘 다 한국형 기본소득에 대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열어뒀다.
23일 국회에서 열린 ‘사회안전망4.0과 기본소득제’ 정책토론회에 참석한 김 위원장은 “재정 관련 문제를 해결할 경우 한국식 기본소득이라는 제도를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이어 “통합당이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려면 사회안전망이 가장 중요하다”며 4차 산업혁명이 예고하는 대량 실업 사태에 대한 해법으로 기본소득을 논의해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원 지사 역시 “2020년은 대전환·대가속의 시기”라며 “이에 맞춰 우리도 담대한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고 진단했다. 무엇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기후변화, 인공지능 등의 변화를 이유로 “시장의 기능뿐만 아니라 국가의 역할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김 위원장은 더 나은 사회안전망과 관련해 밀턴 프리드먼의 마이너스 소득세 개념과 로버트 실러의 기존 보험제도 활용 방안도 제시하며 한국형 기본소득의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어 원 지사를 향해 “기본소득의 실현 가능성과 한계를 도출해 통합당이 앞으로 기본소득을 어떤 형태로 끌고 갈 것인지 방향을 제시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원 지사는 초중고를 비롯한 대학 교육의 대전환으로 국민의 기본역량을 강화하는 데 방점을 찍으면서도 인간다운 삶을 지키기 위한 ‘기본보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토론회에서는 기본소득 논의를 발전시키려면 다양한 실험이 선행돼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기본소득 전문가로 참석한 이원재 LAB2050 대표는 “우후죽순으로 현금수당 사업을 만들고 버리는 지방자치단체가 기본소득에 시사점을 주는 방향으로 사업을 공모하게 만들자”고 제안했다. 원 지사는 이미 제주도에서 자기주도적 취업과 창업을 준비하는 청년을 대상으로 2년간 월 150만원의 생활비를 보장하는 ‘더큰내일센터’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며 이날 실무적 고민을 많이 안고 가겠다고 밝혔다.
이날 다양한 재정 마련 방안이 나왔지만 일회성으로 멈춘 재난지원금과 달리 사회안전망이 되려면 지급의 ‘지속성’이 중요하다는 결론으로 좁혀졌다. 장영신 한국사회복지협의회 정책연구실장은 2017년도 기준 85개·163종의 복지사업 중복됐다며 복지사업 효율화 작업을 소개했다. 이 대표는 공정한 과세와 지방재정 지출 조정 등의 효율적 재정 운영으로 1인당 월 30만원을 지급할 재원이 마련된다고 주장했다. 결국 쟁점은 지속 가능한 재원 마련이었다. 이 대표는 “1980년대 레이건·대처 시대 때도 교육이나 복지에 사용된 공공예산은 국민총생산(GDP) 대비 계속 늘어났다”며 재정 확대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윤창현 통합당 의원은 “대한민국이 기축통화 국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며 타 선진국과 한국의 재정확대 여력이 다른 점을 경고했다. 또 “인간행동을 좌우하는 인센티브의 힘도 무시하면 안 된다”며 노력한 사람이 더 가져가는 비례적 요소가 들어간 기본소득을 제안했다.
/김혜린기자 r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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