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에 풀린 돈이 지난 4월 사상 처음으로 3,000조원을 넘은 데 이어 5월에도 사상 최대 규모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넘쳐나는 유동성이 소비·투자 등 실물경제로 이어지지 않고 부동산·증시로만 쏠리고 있어 금융 불균형 대응방안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5월 중 통화 및 유동성’에 따르면 5월 통화량(M2 기준)은 3,053조9,000억원으로 전월 대비 1.2% 증가했다. 금액 기준 35조4,000억원이 늘어나면서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86년 이후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4월(3,018조원) 사상 처음으로 3,000조원을 돌파한 후로도 증가폭이 더욱 가팔라지고 있는 셈이다. 전년 동기 대비로는 9.9% 증가하면서 2009년 10월(10.5%) 이후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1년 만에 시중 유동성이 275조원이나 늘어난 것이다.
통상적으로 ‘시중 유동성’으로 불리는 M2는 현금, 요구불예금, 수시입출금식 예금(이상 M1) 이외에도 머니마켓펀드(MMF), 2년 미만 정기 예적금 등 바로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단기 금융상품 등을 포함한다. 경제주체들이 유동성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 볼 수 있는 보편적인 지표로 활용된다. 유동성이 급증하는 것은 기준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인 연 0.5%로 낮아진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업과 가계 등 경제주체들이 현금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은 관계자는 “기업 부문에 대한 신용공급이 확대되면서 M2가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경제주체별 통화량을 살펴보면 가계 및 비영리단체가 수시입출식 저축성 예금을 중심으로 전월 대비 15조1,000억원 증가했다. 기업도 2년 미만 외화예수금을 중심으로 14조6,000억원 증가했다. 기타 금융기관 7조원, 기타 부문 2조9,000억원 등 나머지 부문에서도 증가세를 보였다. 상품별로는 요구불예금이 15조7,000억원 증가했다. 재정지출자금이 지방정부로 일시 유입된 영향이다. MMF와 수시입출식 저축성 예금도 각각 10조9,000억원, 10조4,000억원씩 늘었다. 다만 예금금리 하락 영향으로 2년 미만 정기 예적금은 7조9,000억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넘치는 유동성이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시장에 집중적으로 유입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등으로 소비가 원활하지 않다 보니 비대면 거래가 쉬운 주식시장이나 부동산시장으로 돈이 몰린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한국감정원이 7월 첫째주 주간 아파트 가격을 조사한 결과 서울 매매가격은 0.11% 상승해 전주(0.06%) 대비 오름폭이 확대됐다. 정부가 6월에 이어 7월까지 연달아 고강도 부동산대책을 발표할 정도로 가격 상승이 심상치 않다. 지난달 SK바이오팜 공모주 청약 증거금으로 역대 최대인 31조원이 몰리기도 했다. 넘치는 유동성에 주식시장도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도 유동성이 자산시장에 집중되는 상황을 인지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열린 금통위 회의에서 한 금통위원은 “최근에 금융시장과 실물경제 간 괴리 이슈 등 금융 불균형 쪽으로 다시 관심이 모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역대 최대로 늘어난 유동성이 부동산과 주식시장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지금이 거품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앞으로 이런 현상이 지속돼 실물경제가 좋지 않은데도 부동산·주식 가격이 더 오를 경우 거품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조지원기자 j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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