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처럼 빠르게 증가하는 국가부채가 한국 경제의 가장 큰 경쟁력이었던 재정건전성을 약화시킬 뿐 아니라 국가신용등급 강등이라는 끔찍한 결과로 이어질까 우려된다. 최근 국제신용평가사인 피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에 재정적자가 확대됐다는 이유로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과 캐나다의 신용등급을 일제히 하향 조정했다.
피치는 올해 2월 우리나라와의 연례협의 이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오는 2023년 46%까지 증가할 경우 중기적으로 국가신용등급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획재정부의 2020~2024년 중장기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지난 2019년 38.0%에서 2024년 58.3%로 5년 만에 20%포인트나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에 46.7%로 예상돼 피치가 경고하는 수준이 2년이나 앞당겨진다. 게다가 2002년 17.0%에서 21%포인트 높아지는 데 17년 걸린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에 대해 “정부도 채무비율이 늘어나는 속도에 대해 경계하고 있다”고 수차례 밝혔다.
3일 피치에 따르면 앞으로 1~2년간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에 변동은 없을 것이라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하지만 이를 뒤집어보면 다음 정권이 출범한 뒤 지출 증가율을 강하게 억제하지 못한다면 바로 신용등급을 낮출 수 있다는 경고로 해석될 수도 있다. 재정건전성 하락으로 인한 신용등급 하락은 우리 경제 전체를 흔들 정도의 파장을 일으킨다. 당장 국채 이자가 올라 금융기관 조달금리가 상승할 수밖에 없다. 여기다 국가신용등급 하락은 금융권의 신용도에도 영향을 주며 장기채 발행에 부정적이다. 외국인 자금이 대거 유출되는 상황을 불러올 수 있다. 등급 하락 후 회복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고통이 따른다.
우리는 과거 IMF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을 과감한 재정지출로 극복해낸 경험이 있다.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는 1999년 -3.5%에서 2000년 -0.9%로, 2009년 -3.6%에서 2010년 -1.0%로 위기를 넘기며 빠르게 회복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복원이 쉽지 않다. 정부는 올해 -5.8%까지 악화됐음에도 2024년까지 5년 내내 -5%대를 유지하겠다는 계획이다.
채무관리에서 숨겨진 함정이라고 불리는 공기업부채도 문제다. 국내에서 활용되는 국가채무(D1)와 D1에 비영리 공공기관을 합친 일반정부부채(D2)에는 한국의 특수성이 강한 공기업부채가 빠져 있다. 우리나라의 비금융공기업을 포함한 공공 부문 부채(D3)는 2018년 1,078조원으로 GDP의 56.8%를 차지한다. 2014년 957조3,000억원에서 4년 만에 120조원가량 불어났다. 공기업의 채무불이행 문제가 발생하면 결국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정부의 부채 감축 노력으로 GDP 대비 부채비율은 2014년 61.3%에서 다소 하락하기는 했지만 코로나19를 계기로 정부가 공공기관들의 투자 확대를 독려하고 있어 부채비율은 언제든 튈 조짐이 보인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우리는 공기업과 사회보험 비용이 상당히 강하기 때문에 미래 재정 부담도 크다”고 지적했다.
기재부에 따르면 지난해 337개 공공기관의 부채 규모는 525조원으로 역대 최대로 불어났다. 공공기관의 부채비율(부채/자본)은 156.3%로 전년 대비 1.1%포인트 올라 7년만에 상승세로 전환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신재생에너지 확대 등 핵심공약에 주요 공기업이 동원되고 투자도 최대한 확대해나간 영향이 크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우리는 공기업을 통해 재정사업을 하는 나라여서 재정건전성에 보이지 않는 공기업의 영향도 분명히 있음에도 이를 간과하는 측면이 있다”면서 “지금은 중앙정부 예산이 상당하고 이로 인해 부채비율 증가 속도가 빠른 부분부터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황정원·하정연기자 garde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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