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으로 벼랑 끝에 내몰린 영세 자영업자들이 늘면서 임대인의 고통 분담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수도권의 방역조치 강화로 사실상 영업이 중단된 상황에서 임차인 홀로 부담을 떠안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일부 전문가 사이에서도 현행법에 규정된 ‘차임증감청구권’을 적극 행사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된 지난달 30일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고위험 시설로 분류돼 사실상 영업이 중단된 기간 임대료를 삭감 또는 면제해달라는 요청 글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강제휴업 기간 임대료 일부나 전액을 임대인이 부담하는 방안을 정부가 내놓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방역조치 강화 이후 헬스클럽·당구장·볼링장 등 실내체육시설과 노래방·PC방·스터디카페 등은 영업이 중단됐다.
경기도에서 볼링장을 운영한다는 한 작성자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감염위험이 높은 사업장들의 영업제한은 반드시 필요하다”면서도 “다만 정책을 시행하려면 적어도 그에 따른 피해를 임대인과 나눌 수 있는 방안도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또 다른 청원 글 작성자도 “정부가 공익을 위해 임차인의 영업을 규제하면서도 임차인에게 영업장소를 제공하는 임대인을 규제하지 않는 건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며 “영업중단 기간 임대료는 임대인이 부담하되 세금감면 등 임대인에 대한 정부 지원도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영업중단 장기화로 자영업자들의 임대료 부담이 커지자 민법과 상가임대차법에 규정된 차임증감청구권을 적극 행사해야 할 때라는 주장도 나온다. 차임증감청구권은 큰 경제적 변동이 있을 때 임대인 또는 임차인이 상대방에게 월세를 조정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권리다. 임대료감액청구권으로도 불린다. 단 상대방이 조정요구를 거부하면 소송을 통해 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
최광석 부동산 전문변호사는 “그동안 법원에서 청구를 인정해준 사례가 극히 드물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코로나19에 버금가는 ‘경제사정 변동’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지금은 임차인들이 충분히 청구권을 행사해볼 만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황재훈 만해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정부가 지역·업종별로 적절한 임대료 인하 폭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줄 필요가 있다”며 “임대인에게도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고 제언했다.
반면 차임증감청구권은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양재모 한양사이버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임대인이 조정청구를 거부해 소송이 시작되면 법원에서 해당 청구가 ‘급격한 사정변경’에 해당하는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며 “코로나19라는 이유로 청구를 다 받아주면 법적 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 만큼 정부가 임차인에게 직접 지원을 해주는 게 낫다”고 말했다. /김태영기자 young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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