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업계에 따르면, 석유공사는 최근 ‘비축 특수목적법인 설립 및 투자유치를 위한 타당성 분석 자문용역’을 발주했다. 민간 정유사와 공동출자로 원유 비축을 위한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하는 문제를 검토하기 위해서다. 석유공사가 최대 4,000억원 규모의 저장시설 사용권을, 민간 정유사 등이 3,000억원의 현금이나 현물(원유)을 SPC에 출자하는 형태다. 법인이 설립되면 민간 정유사는 약 1,200만배럴의 원유를 저장할 수 있는 공간을 추가 확보하게 된다. 석유공사는 정부 및 민간 정유사와의 논의를 거쳐 오는 2021년 내 법인을 출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석유공사가 비축시설을 민간에 개방하는 것은 최근 극심한 원유 수급 불균형 사태가 벌어진 데 따른 것이다. 올 초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간 감산 합의가 불발되면서 물량은 넘쳐났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글로벌 원유 소비는 전년보다 30%(하루 3,000만배럴) 감소, 유가는 큰 폭으로 떨어졌다. 이와 맞물려 국내 정유사의 저장고 품귀 현상이 벌어졌다. 수급 불균형에 재고는 늘었지만 장기 계약을 맺은 원유는 유조선에 계속 실려 온 때문이다. 정유업계가 “팔리지 않는 기름을 보관하려 양동이라도 사야 할 판”이라고 호소하자 정부는 석유공사의 여유 비축시설을 활용해 저장탱크를 임대하는 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공사가 임대사업을 넘어 비축을 위한 독립법인 설립까지 검토하는 것은 수요발(發) 위기가 상시화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종잡을 수 없는 코로나19 확산세에 따라 수요절벽이 또 급작스레 닥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글로벌 컨설팅사인 맥킨지는 ‘코로나19 이후 세계 석유·가스 산업 전망’을 통해 세계 유가가 2021~2022년 코로나19 이전 수준(배럴당 50~60달러)으로 복귀할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최악의 경우 2024년이 돼도 유가 회복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아울러 전기차 등이 확대 보급되면서 원유 수요는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석유공사의 한 관계자는 “법인의 사업성을 검토하는 초기 단계로 설립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며 “정부와 민간 정유사와 논의를 거쳐 사업을 구체화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세종=김우보기자 ub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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