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대적인 자본시장 제도 변화도 임박한 상태다. 당장 올해 말부터 양도세를 부과하는 대주주 요건이 평가액 3억원으로 완화된다. 개인투자자들의 증시 영향력이 커지며 그간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던 ‘자본시장의 룰’도 바뀌고 있다. 금융투자소득세를 핵심으로 하는 세법개정안 초안이 개인투자자의 반발에 공제액 기준이 대폭 완화됐고 그간 사실상 기관과 외국인에게만 허용됐던 공매도를 개인에게까지 허용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공모주 청약제도 개편, 신용융자 금리 산정 투명화 등도 개인투자자들이 가져온 성과다. 하지만 정치 논리를 앞세워 개인투자자의 의견을 제도개편에 반영하는 데 급급한 당국의 현 주소가 시장 효율성을 저해한다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금투센터에 있는 자본시장연구원장실에서 만난 박영석 원장은 “올해 국내 주식 시장 자금 흐름의 가장 뚜렷한 특징인 개인투자자의 기록적인 순매수 규모 확대는 증시 기반 확대라는 측면에서는 확실히 긍정적”이라면서도 “이들이 증시에서 장기 분산 투자를 하는 주체로 남을 수 있게 시장 건전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8년 6월부터 국내 자본 시장의 ‘싱크탱크’를 이끌고 있는 박 원장에게 국내 투자 시장이 나아갈 길을 물었다. /대담=한영일 증권부장 hanul@sedaily.com
“올해 국내 주식 시장 자금 흐름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개인투자자의 기록적인 순매수 규모입니다. 연기금(3,000억원)을 제외하면 개인투자자는 올해 국내 증시의 유일한 순매수 주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규모뿐 아니라 투자자 저변도 크게 확대됐습니다.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440만개의 활동계좌가 증가했는데 이는 직전 5년 대비 2~3배 늘어난 수치이고 자료가 집계된 후 가장 높은 증가폭입니다.”
박 원장은 올해 국내 증시의 화두로 망설임 없이 ‘개인투자자’를 꼽았다. 그는 “개인투자자의 거래량 증대로 금융위기 이후 내리막을 걷던 거래회전율이 올해는 확연히 증가했다”며 “전체 거래 규모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비중도 과거 60~70%에서 최근 80%까지 늘었고 국내 증시의 유동성이 풍부해지는 긍정적인 영향도 있었다”고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다만 개인투자자들이 증시에 오래 남을 수 있는 제도 개선도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대주주 요건 완화의 문제점을 꼽았다. 소득세법 시행령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부터 주식 양도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여부를 판단하는 주식 보유액 기준을 10억원에서 3억원으로 낮출 예정이다. 올해 말 기준으로 대주주가 내년 4월 이후 해당 종목을 팔아 수익을 낼 경우 22~33%의 양도세(지방세 포함)를 내야 한다.
박 원장은 ‘자본이득에 예외 없이 과세한다’는 과세원칙에는 공감하면서도 대주주 요건 완화의 과세 방식과 속도에는 문제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실효적인 주주권 행사가 불가능한 주주에게 대주주에 준해 과세하는 현재의 대주주 양도세 기준 완화는 납세의무 부과의 정당성 차원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며 “오는 2023년부터 모든 주식 양도차익에 대해 과세하는 세법개정안이 예정돼 있으므로 대주주 요건 완화 방식의 주식 양도차익 과세는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국내 증시는 연말이면 대주주 양도세 지위 회피를 위한 매물이 쏟아지며 유독 변동성이 나타난다. 올해는 그 대상이 크게 늘고 개인의 자금도 크게 확대됐다는 점에서 더욱 큰 리스크로 다가올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박 원장은 대주주 과세 기준을 손질하지 않을 경우 일반 개인투자자의 수가 늘어난 올해는 이 같은 과세 회피를 위한 움직임에 따른 증시 변동성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실제 대주주 양도세 과세 기준을 강화한 2015년도 소득세법 개정안 발의일(2015년 8월5일) 및 개정일(2015년12월15일)을 전후로 2~3% 수준의 유의미한 주가하락이 관찰됐고 하반기 단계적 주가하락 패턴 또한 확인할 수 있다”며 “(과세를 명분으로 하지만) 지분 매각을 통해 조세회피의 여지가 있어 온전한 과세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년 시장 효율성을 저해하는 불필요한 충격을 유발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고 평가했다. 이 같은 과세 경험이 개인투자자 진입으로 기껏 늘어난 증시 저변을 위축할 우려도 있다는 것이 박 원장의 진단이다.
면세점 기준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그는 “다른 자산군과의 과세 형평성 차원에서 국내 주식에도 자본이득세를 부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원칙주의에 입각해 자본이득세를 부과하되 해외로의 투자자금 이탈 우려가 있는 만큼 국내 주식 시장의 경쟁력을 감안한 면세점 설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증권거래세를 폐지하고 금융투자소득세를 부과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올해 세법개정안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장기투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점에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박 원장은 “증권거래세 인하는 주식 매도자 관점에서 매도가격을 덜 높이게 되므로 이론상 자본의 동결 효과가 완화돼 그만큼 거래량이 늘어날 것을 예상할 수 있다”며 “다만 고빈도 매매나 시세조종 행위에 의한 가격왜곡 우려에 어떻게 대응하는가가 중요한 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거래세를 인하했음에도 주식 거래량이 상당히 늘어나며 올해 증권거래세 수입 규모는 9조원으로 역대 최대일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거래세 인하 효과의 비중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게 박 원장의 분석이다. 박 원장은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장기투자 유도를 위해 장기투자에 대한 혜택을 주장했으나 관련 고려가 들어가지 않은 점은 아쉽다”며 “부동산에 치우친 가계 자금을 끌어오기 위해서는 부동산처럼 주식투자에도 보유기간에 따른 공제액을 두는 방식을 검토해볼 만하다”고 조언했다.
박 원장은 최근 급증한 개인투자자들의 투자 행태에 대한 우려도 감추지 않았다. 그는 “개인투자자는 자산운용 측면에서 중장기적인 자산배분을 통한 투자보다는 단기 고수익을 추종하는 단기투자 행태를 보이는 경향이 짙어 일부 종목에서 과열 양상이 나타나는 등 증시에 부정적인 영향도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올해 자본시장연구원에서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개인투자자가 구성한 포트폴리오에는 기초체력이 약화된 기업의 비중이 높고 개인의 신용융자를 활용한 매수세도 계속되고 있어 투자자금의 건전성에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박 원장은 “개인투자자는 일반적으로 전문적인 기관투자가에 비해 정보 접근성 측면에서 정보 열외자에 가깝기 때문에 과도한 레버리지 활용이나 소위 ‘몰빵’ 투자는 지양해야 하고 본인의 위험성향에 맞는 투자전략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인투자자의 영향력은 증시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정부 제도 개편에도 증시 회복의 일등공신인 개인투자자의 입김이 세지고 있다. 최근 금융당국이 발표한 공매도 제도 개편 및 신용융자 금리산정 기준 공개, 공모주 배정 방식 전환 등이 대표적인 예다. 박 원장은 개인투자자들의 제도 개선 요구를 당연한 현상으로 인정하면서도 수용 가능한 선을 넘어 시장 효율성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정부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원장은 “걱정되는 부분은 정치권이 개인투자자를 일종의 표로만 의식해 자본시장의 규칙이나 제도가 정치화하는 것”이라며 “바람직한 방향은 규칙이나 제도가 시장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 즉 시장을 통해 기업의 경영에 대한 견제도 하고 그것들이 제대로 투자돼 수익을 높이고 가치평가도 시장에서 이뤄지게끔 설계가 돼야 하는데 제도가 정치화하면 시장의 효율성 측면은 저해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게 공매도 사례다. 박 원장은 “공매도에서 개인의 참여를 보다 활성화시키는 것이 필요하지만 공매도 제한은 단기적이고 선별적으로 이뤄졌어야 하는데 6개월간 전면 제한한 것은 과도한 조치”라며 “공매도 제한은 결국 가격거품을 누적시키고 외국인투자가 기반을 위축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공매도를 처음 금지할 때는 불가피한 상황이었다고 하더라도 강력한 전면제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공매도는 주가를 하락시키는 것이고 따라서 정부가 급락 장세에 전면금지를 단행한 것’이라는 개인투자자의 오해를 강화하고 그로 인해 공매도 제한을 계속 연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 공매도를 허용하되 유동성이나 시가총액이 적은 종목들은 공매도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꾸준한 회복세를 보여온 증시는 최근에는 추동력을 잃어가는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기업 실적이 악화하는 상황에서 증시만은 유동성을 바탕으로 고공행진하는 현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며 증시 급락에 대한 우려가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박 원장은 증시에 충격이 극단적으로 올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분석했다.
그는 “현재 한국증시는 이례적인 흐름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경제기초 여건과 전망에 부합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며 “우수한 방역성과로 코로나19의 경제에 대한 충격은 주요국 중 가장 적고 경제성장률 전망도 최상위 수준이며 코로나19로 부가되고 있는 정보기술(IT)·의료 섹터의 주식 시장 비중도 크다”고 진단했다. 이어 “주식 시장의 유동성 수준이 높은 만큼 단기충격에 대한 탄력성이 좋아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불확실성은 존재하지만 코로나19 방역 성과가 유지돼 경제지표 변화가 완만한 추세를 보인다면 우려할 만한 자산가치 급락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리=양사록기자 sarok@sedaily.com 사진=성형주기자
사모펀드가 공모의 1.5배 ‘비정상’…퇴직연금 활용한 공모펀드 확대를
올해 국내 증시에서 역대급으로 펼쳐지고 있는 개인투자자의 자금 유입을 유독 부러워하는 시장이 있다. 바로 펀드 시장이다. 기초자산이 대부분 주식으로 구성된 주식형 펀드에서는 올해 들어 14조원이나 빠져나갔다. 박영석 자본시장연구원장 역시 펀드 시장 활성화를 남은 임기 중요한 과제로 꼽았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코스피와 코스닥은 주가를 가파르게 회복하며 뜨거운 모습을 보여줬는데 유독 간접투자 시장은 아직 냉기가 흐른다”며 “개인의 직접투자 자금이 대거 증시로 유입됐는데 이를 간접투자로 전환해 주식 시장의 장기 투자자금을 증가시키고 기관투자가 비중을 높이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그 첫째는 펀드 시장의 ‘정상화’다. 박 원장은 최근 라임·옵티머스 등 사모펀드 사태로 펀드 시장 전체가 지난 금융위기 때보다 더한 신뢰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진단하며 해법으로 공모펀드 시장의 확대를 제안했다. 박 원장은 “사모펀드 시장이 잘 발달한 미국조차 공모펀드가 25조달러인 데 반해 사모펀드는 8조달러로 32% 수준밖에 되지 않는데 우리나라는 사모펀드가 432조원으로 공모펀드(276조원)의 1.5배”라며 “아무리 연기금 같은 기관투자가의 수요가 많다고 해도 사모펀드가 공모펀드보다 큰 나라는 없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인 활성책으로는 최근 정부가 발표한 뉴딜펀드와 같은 비교적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배당형 인컴펀드를 제시했다. 박 원장은 “가계 금융자산의 리밸런싱을 촉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인프라 리츠 등 안정적인 고배당 펀드가 많이 나오도록 자본 시장과 연관된 부동산 금융제도를 전반적으로 손질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배당수익률이 예금이자를 넘어서고 있어 예금을 대체하는 인컴펀드에 대한 관심은 증가하는 등 시장 여건도 나쁘지 않다는 게 박 원장의 진단이다. 특히 정부가 최근 내놓은 뉴딜 인프라펀드가 앞으로 인컴펀드의 대표상품이 될 가능성이 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박 원장은 “최근 공모펀드들이 주주행동주의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알파 창출 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펀드 시장과 연계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퇴직연금 활성화도 내년 6월까지로 예정된 임기 중 역점사업으로 꼽았다. 박 원장은 “공모펀드의 4분의1이 퇴직연금에서 나오는 미국을 비롯해 어느 나라든 공모펀드의 수요기반은 연금”이라며 “우리나라는 공모펀드 276조원 중에서 퇴직연금에 담은 주식형펀드는 3조5,000억원으로 전체의 1%에 지나지 않는데 자본시장 활성화는 물론 국민 노후 보장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퇴직연금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논의의 우선순위에서 밀렸던 디폴트 옵션제도나 기금형퇴직연금제도·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제도 등은 올해 구성된 20대 국회에서도 재상정돼 논의되고 있다. 박 원장은 “이 과제가 처음 제기된 때가 지난 2014년인데 그때부터 자본시장연구원이 참여해 관련 연구를 상당히 축적한 상태”라며 “사회적 합의도 상당히 진행된 사안이라고 보고 있어 앞으로 역점을 두고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양사록기자 saro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