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확장재정을 더욱 가속화하겠다고 밝히며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유승민 전 미래통합당 의원은 “나라 살림을 거덜 내려고 작정한 게 분명하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28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문 대통령은 “국민의 삶을 지키고 국가의 미래를 열기 위해, 재정의 역할이 더욱 막중해졌다”며 “2021년 예산안은 ‘위기의 시대를 넘어 선도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예산”이라고 강조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확장재정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고령화·남북문제 등의 변수까지 감안하면 재정확장 추이가 지나치게 가파른데다 재정지출이 시간제 일자리 확대 등 단기처방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하며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한 성장전략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이 이날 “고용유지 지원금 등으로 46만 명의 일자리를 지켰다”고 밝혔지만 이 또한 결국 국민 세금으로 보전한 일자리라는 점에서 한계가 명확하다.
유 전 의원은 “‘재정건전성을 고려한다’는 말뿐이지 재정적자·국가채무·가계부채라는 단어는 흔적도 없다”며 “555조원을 쓰는데 빚이 얼마인지 국민께 보고조차 안 한다. 보통 사람들도 이런 식으로 가계부를 쓰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확장재정에다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한 네 차례의 추경으로 적자국채 발행이 급증하며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지난해 37.7%에서 올해는 43.9%로 1년 새 무려 6.2%포인트 늘었다. 지난 2010년 관련 비율이 29.7%로 최근 10년간 연평균 국가채무 비율 증가율이 0.8%포인트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코로나19 등의 특수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올해 부채비율이 지나치게 급하게 늘었다.
이 같은 국가채무비율 증가 추이는 2021년(47.1%), 2022년(51.2%), 2023년(55.0%), 2024년(58.6%) 등 매년 꾸준히 상승해 2025년에는 6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수치를 GDP와 비교한 통합재정수지는 향후 4년간 -4%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되는 등 재정건전성에 ‘적신호’가 켜진 상태다.
문 대통령은 이 같은 비판을 의식했는지 이날 “(내년도 예산안은) 중장기적인 재정건전성도 함께 고려했다”고 밝혔지만 재정지출 증가 추이가 지나치게 가파른 반면 재정건전성을 회복할 방안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염명배 충남대 명예교수는 “최근 정부의 재정지출 행태를 보면 과도한 인플레이션만 없으면 화폐를 마음껏 발행해도 된다는 이른바 ‘현대통화이론(MMT)’을 연상시킬 정도로 재정 씀씀이가 과하다”고 지적했다.
기획재정부는 과도한 재정지출을 제어하기 위한 ‘한국형 재정준칙’을 공개했지만 느슨한 기준과 낮은 구속력 등으로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준칙 적용 시기 또한 차기 정부 집권 중반기인 2025년이라 “돈은 현 정부가 쓰고 뒷감당은 차기 정부가 감당할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더 큰 문제는 더불어민주당에서 이 같은 재정준칙마저도 “재정지출의 제약 요인이 된다”며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맹탕준칙’이라고 비판받는 한국형 재정준칙이 국회 통과 과정에서 자칫 누더기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지난 7일 기재부 대상 국정감사장에서도 고용진·홍익표·정일영 등 여당 의원들은 “코로나19에 따른 위기 상황에 재정준칙을 도입하려는 것은 시기에 맞지 않다”며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을 상대로 수차례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코로나19에 따른 위기라는 특수성이 있기는 하지만 현재와 같은 재정확장 기조가 지속되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며 “재정준칙을 통해 재정건전성을 관리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확장재정을 기반으로 GDP 성장률을 끌어올리면 그만큼 재정수입이 늘어나는 만큼 재정악화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달 올해 세계 경제가 6월 전망치 대비 0.8%포인트 높은 -4.4%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한 반면 우리나라 경제는 넉 달 전 전망치 대비 0.2%포인트 높은 -1.9%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IMF 분석 결과 최근 넉 달 새 한국의 경제회복 속도가 여타 국가 대비 느린 셈이다. IMF는 또 내년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2.9%로 전망해 글로벌 경제성장률 전망치(5.2%)에 크게 못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학과 명예교수는 “정부가 추진 중인 뉴딜정책만 보더라도 지나치게 정부 개입이 많아 관련 시장에서 민간의 투자를 저해하는 이른바 ‘구축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며 “정부가 조금 더 긴 호흡을 가지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맞춤한 성장정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밝혔다.
/세종=양철민기자 chop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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