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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사내칼럼
[목요일아침에]국민 간 보는 정부

내년 초 의대생 사과·국시 재시험 소문

정부 부인 속 여론 내세우며 국민 떠봐

의대생 진심이라면 불이익도 감수해야

원칙 무너지면 만사휴의…재시험 안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22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을 거부한 의대생들에게 추가 응시 기회를 부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재시험 시행 여부를 묻는 말에 그가 내놓은 답은 “현재로서는 없다”였다. 이래서 한국말은 어렵다고 하는 걸까. 재시험은 분명 없다는데 결국에는 있을 것 같은 이 미묘한 뉘앙스 말이다. 23일 류근혁 청와대 사회정책비서관이 재시험 구제 국민 청원에 대해 답한 내용도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그의 답변에는 “국민 수용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상황”이라는 표현이 있다. 어휘가 그동안의 국민 여론, 국민적인 이해에서 국민 수용성으로 달라졌을 뿐 뜻은 같다. 국민이 받아들인다면 재시험 기회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의사 국시가 얼핏 지나간 이슈 같지만 전혀 아닌 이유가 여기 있다. 누군가는 정부의 방침이 바뀌었는지 간을 보고 정부는 아직 바뀌지 않았다며 국민을 떠본다. 의료계에서는 국민적 관심이 떨어진 내년 초가 되면 의대생들이 사과하고 정부는 여론이 찬성한다며 의사 국시 재응시를 허용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아직은 국민 과반수가 의사 국시 재응시를 반대한다. 의대생들은 혹시 국민적 관심이 떨어질 만한 적절한 사과 표명 시기를 찾고 있나. 혹시 그렇다면 그것은 뜨거웠던 지난여름 의사 가운을 반납하며 비장한 각오로 파업에 나서던 선배 의사들의 진심을 저버리는 행위다.

의대생들이 의사 파업에 동조해 의사 국시에 불참한 것은 그들 스스로 의대 정원을 확대하는 정부 정책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거리로 나오게 된 의대생’이라는 책을 보면 의대생들은 의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진료를 할수록 적자가 나는 기형적인 수가 제도가 문제라고 주장한다. 의대생들의 주장이 타당한지를 떠나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의 혼란과 붕괴를 막으려는 그들의 간절한 마음을 이해한다. 그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의사 국시에 불참했다면 그로 인해 생기는 불이익도 감수해야 한다. 뭔가를 얻으려면 내 것을 먼저 내놓아야 한다.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국시에 대한 응시 의사를 표명한다”는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국민 건강권이 위협받고 의료인력 수급문제가 대두되는 현시점에서 학생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 ‘옳은 가치와 바른 의료’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국민 건강권이 왜 위협받고 의료인력 수급문제가 왜 대두됐나. 그들이 의사 국시에 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문제를 만들어놓고 그 문제를 해결할 테니 의사 국시를 다시 치르라는 주장에서 그들의 오만함이 느껴진다. 생명보다 소중한 것은 없고 생명을 다루는 의사보다 중요한 직업은 없다. 의사라면 그런 숭고한 일을 직업으로 삼도록 허락해준 환자와 사회에 고맙게 여겨야 한다. 그들은 대신 환자를 볼모로 삼아 사회를 향해 갑질을 했다.



정부는 한국의 의사 수가 인구 1,000명당 2.4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 수준이라고 주장한다. 정부가 의대 정원을 늘리기로 한 이유다. 의사들이 반대 논리로 제시한 것은 인구 감소다. 맞는 말이기는 한데 그럼 고령화는 어떻게 대응하나. 5년 뒤인 오는 2025년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1,000만명이 넘는다.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고령 인구인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면 의료 수요는 급격하게 늘 것이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보건의료위원회는 27일 “노사정은 부족한 의사 인력을 확충하기 위해 2022년부터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늘려나가야 한다”는 권고문을 발표했다.

의사 힘에 눌린 정부의 굴복으로 의대 정원 확대는 없는 일이 됐다. 내년이 돼 의사 국시 재시험이 치러진다면 그것은 정부의 두 번째 굴복이 될 것이다. 고3 수험생은 1분만 지각해도 수능 시험을 못 친다. 의사 국시에 늦은 의대생은 길을 잘못 든 택시가 문제라며 시험을 치게 해준다. 정부가 그토록 외치던 공정이 이런 것은 아닐 것이다. 원칙이 무너지면 만사휴의다. hank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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