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득·고신용자를 겨냥한 정부의 '대출 죄기'가 새해에도 이어지면서 은행들이 잇달아 신용대출을 축소하고 있다. 카카오뱅크가 신한은행에 이어 직장인 신용대출의 최대 한도를 5,000만원 낮췄고, 수협은행도 일부 마이너스통장 대출의 신규 취급을 한시 중단했다.
카카오뱅크는 22일 고신용 직장인 대상 신용대출과 마이너스통장의 최대 한도를 기존 1억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축소했다고 밝혔다. 축소된 한도는 이날 오전 6시 신규 취급분부터 적용됐다.
수협은행도 이날 오전 9시부터 'Sh더드림신용대출'의 마이너스통장 신규 취급을 중단했다. 이 상품은 연소득 3,000만원 이상 직장인에게 최대 5,000만원 한도대출을 내준다. 수협은행 관계자는 "운용한도 소진에 따른 것"이라며 "기존 차주가 대출을 상환해 한도에 여유가 생기면 판매를 재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마이너스통장 대출을 제외한 만기일시·분할상환 방식 신용대출은 가능하다.
이번 한도 축소에 대해 카카오뱅크는 중·저신용자 대상 중금리대출 재원을 늘리기 위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출범 당시 내건 '중금리대출 공급'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겠다는 취지다. 중금리대출은 신용 4등급 이하인 중·저신용자에게 연 10% 안팎의 금리대로 내주는 대출을 뜻한다. 그동안 일각에서는 인터넷전문은행들이 당초 목표와 달리 고신용자 대출에만 집중해왔다는 비판이 있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고액 신용대출을 억제하라는 정부의 압박도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급증하는 신용대출을 잡기 위해 지난해 말부터 대출 규제를 강화하고 은행별 가계대출 총량을 수시 점검하고 있다. 특히 고소득자가 거액의 빚을 내 주식·부동산시장에 투자하는 '빚투' '영끌'이 집중 관리 대상이다. 도규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12일 "과도한 레버리지를 활용한 부동산 등 자산 투자에 대해 우려의 시각이 있다"며 "최근 급증했던 고액 신용대출, 특히 긴급생활·사업자금으로 보기 어려운 자금 대출에 대해 은행권의 특별한 관리 강화를 당부한다"고 재차 경고를 날렸다. 금융위는 고액 신용대출에 대해 매달 이자와 원금을 같이 갚도록 의무화하겠다는 계획도 꺼내든 상태다.
이에 따라 은행권은 지난해 말 중단했던 신용대출을 재개하면서도 축소했던 대출 한도는 그대로 유지하거나 추가로 줄이고 있다. 앞서 신한은행은 이달 15일부터 직장인 신용대출 4개 상품의 건별 최고한도를 각각 기존 1억5,000만원~2억원에서 1억원~1억5,000만원으로 5,000만원씩 축소했다. 우리은행도 이달 7일부터 '우리 WON하는 직장인신용대출' 판매를 재개하면서 마이너스통장의 최대 한도는 기존 1억원에서 5,000만원으로 줄였다.
은행권이 잇달아 신용대출 조이기에 나서면서 아직 한도를 조정하지 않은 다른 은행들도 합류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금융당국이 은행별 대출 총량 관리를 강하게 주문한 만큼 한도가 넉넉한 은행으로 대출 수요가 쏠리면 '도미노식' 조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초저금리, 주식시장 활황, 경기 회복 지연 등 대출 수요는 여전히 높은 상황에서 겹겹이 규제 강화가 예고될 때마다 '일단 받고 보자'식 가수요 대출이 늘어나는 현상도 반복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과도한 '빚투'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데에는 은행들도 공감한다"면서도 "신용등급과 상환능력에 따라 내준다는 신용대출의 기본 원칙을 훼손하는 것은 우려스러운 지점"이라고 말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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