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반도체 탈일본 가속화.”
지난달 7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의 제목이다. 지난 2019년 7월 일본 정부는 일방적인 수출 규제를 발표했다. 우리는 이성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대응으로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했다. 일본 불화수소의 한국 수출은 규제 전보다 90%나 감소했지만 한국 반도체는 승승장구하고 있다. 위기를 이겨냈지만 우리 경제의 심장을 향해 쏜 일본의 공격은 분명 충격이었다.
한일 양국은 서로에 가장 큰 교역국 중 하나다. 정치적 목적으로 경제를 희생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세계화를 통해 ‘영구 평화’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던 이마누엘 칸트도 당혹했을 터다. 일본의 도발과 미중 경제 분쟁으로 글로벌 가치 사슬의 취약성을 확인했다. 하지만 19세기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는 강점을 더 전문화하고 잉여 생산물의 교환으로 효율성을 높인다는 비교우위론을 주장했다. 이에 토대를 둔 국제 교역이 세계경제 번영을 이끌어왔음은 부인할 수도 없다. 협력 속에 강점을 강화할 것인가 아니면 약점을 보완할 것인가. 세계경제는 정답이 없는 선택 앞에 선 것이다.
이 정답 없는 선택은 어디나 있다. 필자는 연구원으로 입사 후 연구를 병행하며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당시는 추격형 연구를 넘어 선도형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가 확산했다. 강점이던 응용 기술로 가치 창출을 하는 연구를 강화할 것인가. 아니면 부족한 선도형 연구 개발 경험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보완할 것인가. 선택의 순간이었다. 1995년 펜실베이니아주립대의 겐지 우치노 교수 연구실에서 연수 연구원 생활을 시작했다. 보완을 선택한 것이다.
겐지 교수는 전자 재료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이었다. 일본의 선도적 기술과 미국의 연구 기획, 시스템, 안전 체계와 개방적 연구 문화를 동시에 경험하는 것은 행운이었다. 고가의 첨단 장비를 직접 사용할 수 있는 것도 특별했다. 물론 사전 교육을 받고 시험을 봐야 했다. 첫 시험은 불합격이었다. 답을 왜 하나만 고르냐는 물음을 받았다. 답이 여러 개일 수 있다는 상식이 우리에게는 없었다. 이 시절 우리 연구도 답은 하나였다. 추격형 연구였기 때문이다. 선도형 연구로 향한 첫걸음은 이런 화석화된 관념의 틀을 깨는 일이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강점과 약점을 갖고 있다. 도널드 O 클리프턴 박사의 강점 이론처럼 자신의 강점을 강화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거나 앤절라 더크워스가 그릿에서 제안한 의식적 연습을 통해 약점을 보완할 수도 있다. 우리는 언제나 한정된 시간과 자원을 갖고 최적의 방안을 찾아야만 한다. 강점의 강화와 약점의 보완 그사이에 단 하나만이 정답은 아니다. 진리에는 얕은 진리와 깊은 진리가 있으며 얕은 진리는 그 반대가 거짓인 반면 깊은 진리는 그 반대 역시 참이라고 한 닐스 보어의 말처럼.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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