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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금융이 투기꾼 감시 사각지대였나… 비주택 부동산대출 1년새 30조 껑충

감정평가액 70%까지 대출 가능

DSR 160% 등 헐거운 규제 적용

지난해 말 257.5조로 급증

금융당국, 이달 '핀셋 규제' 예고

지난 3일 오후 경남 진주시 충무공동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입구로 사람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상호금융권에서 토지 등 비주택 부동산담보대출이 30조 원 넘게 폭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 당국의 부동산 규제가 시중은행을 중심으로 수도권·아파트에 집중된 사이 ‘꾼’들은 빈틈이 많은 상호금융과 땅을 노렸다는 것이다. 실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이 북시흥농협 등에서 토지 감정가의 70%나 대출해 땅을 사들인 데서 보듯 상호금융은 투기의 우회 경로가 되고 있다.

지난 13일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농협·수협·신협·산림조합 등 상호금융의 지난해 말 비주택 부동산담보대출 잔액은 257조 5,000억 원으로 1년 사이 30조 7,000억 원 불어났다. 증가율은 13.5%로 확인 가능한 2017년 이후 가장 높았으며 지난해 전체 가계 부채 증가율(7.9%)도 크게 웃돌았다. 비주택 부동산담보대출은 토지, 상가 건물, 기계 등 주택을 제외한 모든 부동산담보대출이다. 상가 건물은 시중은행도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70%까지 인정해준다. 이 때문에 굳이 금리가 높은 2금융권을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대부분이 토지담보대출일 것으로 보인다. 반면 상호 금융을 통한 토지 담보대출은 느슨한 규제를 적용받고 있는데도 정부는 실태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정부의 대출 규제가 은행권의 수도권 아파트에 집중되는 사이에 ‘투기와의 전쟁’에 구멍이 생긴 것이다.

지난 9일 오전 서울 강남구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지역본부에서 청년진보당 관계자들이 LH 땅투기 임직원들을 규탄하는 기습시위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땅 투기 사각지대된 상호 금융=현재 시중은행에서 KB시세가 15억 원이 넘는 아파트는 아예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없다. 투기과열지구와 조정 지역에서 9억~15억 원 사이 주택은 9억 원까지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 40%, 9억 원 이상분에는 LTV 20%가 적용된다. 시중은행에서 투기지역 또는 투기과열지구 내 9억 원이 넘는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경우 빌리는 사람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40%를 넘어서도 안 된다.

하지만 농협 등 상호 금융을 통한 토지 담보대출은 감정평가액의 70%까지 대출이 나온다. DSR도 차주별이 아니라 전체 대출 평균으로 160%만 넘지 않으면 된다. 농민의 경우 소득이 적어 LTV와 DSR을 빡빡하게 가져갈 경우 받을 수 있는 대출금이 확 줄어 생활의 어려움이 커질 수 있다. 이 때문에 토지 담보대출에 헐거운 규제를 적용해 왔는데 이를 LH 직원들이 악용한 것이다. 물론 일반인이 투기 목적으로 땅을 살 때 걸러내는 장치도 없었다.

◇정확한 토지 담보대출 통계도 없는 정부=상황이 이렇지만 정부는 구체적인 토지 담보대출 통계조차도 갖고 있지 않다. 금융 감독 당국의 한 관계자는 “상호 금융 비주택 부동산담보 대출의 경우 토지와 상가 건물, 기계 등 주택을 제외한 모든 부동산담보 대출이 포함되지만 이 가운데 토지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는 통계로 집계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은 토지 가격이 급락해 금융 시스템 리스크로 번질 가능성이 작아 통계 작성 필요성이 낮았다”며 “상호 금융은 전국에 있는 수천 개 단위조합 수치를 취합해야 하고 조합 중에는 직원이 4~5명인 영세한 곳도 많아서 현실적으로 세세한 토지 담보대출 액수까지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고 설명했다. 관련 통계가 없다 보니 특정 단위 농협에서 토지 담보대출이 급증해도 곧장 이상 징후를 발견하고 들여다볼 방법이 없다.



하지만 비주택 부동산담보 대출 총액이 250조 원을 넘어서면서 시스템 리스크로 번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부동산 대출 규제는 아파트 등 주거용 부동산에 대해서만 집중되고 토지·건물·상가 등에 대해서는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며 “토지 등에 대한 투기 방지를 위해서는 통계 생산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감원 “상호 금융 정체성 맞는 대출인가“=정부는 이제서야 대출 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 조사에 나설 계획이다. 금융감독원은 북시흥농협 등 논란이 된 단위조합에 대해 조합원들 간의 상호부조라는 고유의 정체성을 지켰는지 들여다볼 계획이다. 조합원의 영세 자금을 예탁 받아 이를 다른 조합원에게 대출해주면서 서로 간의 원활한 자금 융통을 유도하는 호혜적 금융인데 외지인에게 수십억 원씩 대출을 해준 것이 적절하느냐는 접근이다.

다만 구체적 대출 과정에 대한 위법 행위를 찾아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예상이다. 상호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문제가 있다면 토지 감정평가액 자체를 부풀리거나 돈을 빌리는 사람의 소득을 조작하는 경우”라며 “단위 농협은 토지 담보대출을 전문적으로 해 감정평가액을 뻥튀기했을 가능성은 작고, 소득도 모두 전산화돼 있어 조작했을 가능성도 낮다”고 말했다. 농협중앙회 역시 “자체 조사 결과 대출 과정에서 문제는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말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도 “금융사는 담보 물건에 문제가 없고 돈을 빌리는 사람이 원리금을 납부할 능력만 된다면 빌려줄 수 있다”며 “물론 도의적 차원에서 LH 직원들에게 줄줄이 토지 담보대출을 내준 것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관련법상 처벌 조항은 없다”고 말했다. 합동 조사 결과가 빠른 시일 안에 나올지도 미지수다. 농협의 경우 소관 부처가 농림축산부, 수협은 해양수산부, 신협은 금융위원회, 새마을금고는 행정안전부여서 각 부처의 조율이 필요하다.

금융 당국은 뒤늦게 이달 가계 부채 관리 방안에 상호 금융 토지 대출 규제 방안을 담을 예정이지만 강도 높은 규제책을 내놓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상호금융 DSR을 조이면 일반 농민이 피해를 볼 수 있어 농민이 아닌 사람들의 땅 투기 목적의 대출을 차단하는 핀셋 규제가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위의 한 관계자는“무조건 DSR을 낮출 경우 일반 농민·어민 등이 대출 한도가 줄어들며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전면적인 ‘칼질’보다는 대출을 받을 때 농어민 증빙 조건을 강화하는 등의 핀셋 대책이 담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태규 기자 classic@sedaily.com, 김지영 기자 ji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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