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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트럼프에 막힌 바이든의 이민개혁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GPS’호스트

美 남부국경 난민대열 길어지자

트럼프는 "불법이민 홍수" 선동

바이든 정책개혁에 찬물 끼얹어

이민 줄면 인구문제 심각해질듯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GPS’호스트




취임식을 마친 후 불과 몇 시간 사이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전임자인 도널드 트럼프의 악명 높은 이민 정책을 연이어 거둬들였다. 그중에는 바이든이 “미국의 양심에 찍힌 오점”이라고 평했던 ‘무슬림 입국 금지’ 명령도 포함됐다. 그날 하루 동안 바이든이 서명한 6건의 행정 명령은 미국에 들어와 일하는 1,000만 명의 불법 체류자들에게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등 보다 인도적이고 포괄적인 이민 개혁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야심만만한 사전 포석이었다.

이와 함께 바이든 행정부는 관광객부터 이민자까지 모든 외국인의 입국과 체류를 어렵게 하기 위해 트럼프가 끼워 넣은 수백 건의 규칙과 규정, 수수료를 폐지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은 미국 남쪽 국경에 새로운 이민 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전임 대통령의 정책 탓에 방해를 받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수십만 명의 중앙아메리카 사람들은 난민 신청을 위해 미국과 멕시코 접경지로 몰려들었다. 이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는 부모로부터 어린 자녀들을 강제로 떼어내 열악한 수용 시설에 감금하는 잔인한 방식으로 맞섰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적인 정책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남쪽 국경에서 난민 신청을 받아 직접 처리하던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일단 신청서를 제출한 난민들은 자격 심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멕시코 지역에서 대기하도록 했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고 이전보다 훨씬 너그러운 이민 정책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면서 미국의 남부 국경으로 향하는 중앙아메리카인들의 대열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올해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미국 남부 국경에 도착했거나 불법 월경을 시도한 중앙아메리카인들은 대략 18만 명에 이른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두 배에 달한다.

바이든 취임 이후 멕시코 접경지의 일선 관리들은 구름처럼 밀려드는 난민 신청자들로 인해 곤욕을 치르고 있다. 가장 큰 골칫거리는 건강을 이유로 아동 이주 희망자들의 입국을 막은 트럼프의 행정 명령에 예외 규정을 두도록 한 바이든의 결정 탓에 부모 없이 국경에 도착하는 어린이들의 숫자가 대폭 늘어났다는 점이다. 연방 정부는 아직도 국경 근처에 머물고 있는 3,500명의 미성년자를 수용하기 위해 비행장과 군 기지를 물색하는 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실 미국의 난민 시스템은 통제 불능 상태다. 난민의 개념은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은 종교적·인종적 혹은 정치적 핍박이 두려워 해외로 피신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별도의 입국 경로를 열어놓았다. 이후 수십 년 동안 이 경로를 통한 입국은 극단적인 차별 사례에 한해 제한적으로 적용됐다.



남부 국경을 통해 들어오려는 대다수 사람은 빈곤과 폭력을 피해 고국을 등진 전통적인 이주자들이다. 사정이 딱하기는 하지만 비슷한 이유로 미국으로 이주하기 위해 정상적인 절차를 밟고 있는 타 지역 출신자들에 비해 이들을 특별히 대우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불법 이민에 대한 두려움을 최대한 활용해 지난 2016년 대선에서 승리한 바 있는 트럼프는 남쪽 국경 상황을 문제 삼아 바이든에게 무차별 공세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달 국내 최대 보수 단체인 미국보수연합(ACU)이 주최한 보수정치행동회의(CPAC)에 참석해 “바이든이 우리가 이제까지 본 적이 없는 거대한 불법 이민의 홍수를 불러일으켰다”고 비난했다.

이번 국경 위기와 이를 둘러싼 트럼프의 정치 선동이 이민 시스템의 총체적 개혁을 달성하려는 바이든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난민 신청자들은 전체 이민자들 중에서 소수다. 이민 신청자 중 가족 상봉을 위해 들어오려는 사람들이나 미국이 꼭 필요로 하는 기술을 지닌 숙련 노동자 등은 난민 신청자들보다 훨씬 많다.

트럼프의 정책 덕분에 이민자들 혹은 이민 신청자들은 미국이 이민 쿼터를 폐기한 1965년 이래 가장 적대적인 환경에 노출돼 있다.

이 같은 상황은 수치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이동 제한까지 더해지면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이민자 수는 40년 이래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세계 최고의 두뇌와 기술을 지닌 이주 희망자들 중 일부는 캐나다와 호주 등 이민자에게 훨씬 호의적인 국가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통계는 이민이 중단될 경우 미국이 심각한 인구 문제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전체 인구, 그중에서도 특히 청년 인구가 감소하면서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국가의 역동성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개개인의 기회가 축소될 것이라는 심각한 경고다.

진정한 이민 위기는 현재 남쪽 국경에서 전개되는 상황이 아니다. 인구 감소야말로 국가의 미래가 걸린 심각한 이민 위기다.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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