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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건네는 담담한 위로…괜찮아, 아무것도 아니야

[리뷰] 국립창극단 '나무, 물고기, 달'

저마다 꿈 안고 소원나무 원정

굴곡진 恨·격정의 노래 없지만

담백한 메시지 지친 마음 달래





“괜찮다, 아무것도 아니란다.”

별거 아닌 이 한마디가 절실할 때가 있다. 쓰디 쓴 현실의 고통과 걱정 앞에서는 그럴듯한 위로보다 이 특별할 것 없는 말이 오히려 지친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준다.

국립창극단의 신작 ‘나무, 물고기, 달’이 그런 작품이다. 긴장감 요리하는 굴곡 진 갈등도, 소리꾼이 한(恨) 담아 토해내는 격정의 노래도 없다. 주인공들이 저마다 꿈을 안고 ‘공동의 목표’를 찾아가는 소박한 여정은 그러나 관객으로 하여금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짓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쌀밥 한 번 배불리 먹는 게 소원인 소녀, 진짜 가족과 진짜 행복을 얻고 싶은 소치기 소년, 마지막으로 꽃 한 송이 피우고 싶다는 메마른 사슴 나무, 진리를 찾아 고행하는 순례자. 이들은 각자의 소원을 가슴에 품고 꿈을 이뤄준다는 ‘소원나무’를 향해 함께 길을 걷는다. 마치 ‘오즈의 마법사’를 만나기 위해 동행하는 도로시와 그 일행들처럼. 관객은 어느새 ‘소원나무 원정대’의 일원이 돼 자신의 꿈을 품고 무대 위 여정에 동참한다. 작품에는 함께 물리쳐야 할 악당도, 뜻 밖의 함정이나 소름끼치는 반전도 없다. 하지만 굴곡 없이 단조로운 이야기는 이 작품의 ‘진짜 시작’을 위한 장치다. 소원나무를 만나 원하던 것을 얻은, 이 여정의 ‘끝’ 같았던 그 순간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소원나무는 주인공들이 마음으로 상상했던 것들을 눈앞에 가져다준다. 햄버거에 주먹밥, 아름다운 여인,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우리의 두려움까지도. “우리 마음 속 생각들이 눈앞에 그대로 나타나는 거야. 이게 소원 나무의 정체라고.” 두려움의 괴물들로부터 가까스로 도망친 주인공들은 말한다. “괴물한테 먹히느니 차라리 집에서 배곯아 죽는 게 낫지.” “나 그냥 집에 가고 싶어. 가족 같은 건 필요 없어.” 날 선 풍자와 충격적 결말, 거창한 주제 의식은 없다. 그래서 이 동화 같은 이야기는 더 가슴에 와 닿는다. 결핍과 만족, 불행과 행복 모두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뻔한 가르침을 얻기 위해 ‘소원나무 원정’을 반복하는 것이 우리 인생이기 때문이다.

담백한 메시지를 담아낸 그릇은 신선하고, 때론 예상을 깨는 파격을 선사한다. 배요섭 연출과 김춘봉 작가(사실 둘은 동일인물이다)의 찰떡 호흡(?)이 돋보이는 스토리는 ‘소원 나무’라는 뼈대에 인도와 중국 설화, 제주도 구전 신화(원천강본풀이) 등 신비로운 이야기를 제대로 버무려냈다. 이자람의 음악도 기존의 판소리와는 사뭇 다르다. “‘이 정도 선까지 넘어보면 어떨까’ 싶은 음악적 시도들을 해봤다”는 그의 말마따나 기본적인 선율의 짜임 사이에 예상 못 한 선율과 선법이 등장한다.



한바탕 소동 후 원정대, 그리고 이들과 동행하던 달지기들은 함께 노래한다. “넌(난) 아무것도 아니다. 좋을 것도 없고 나쁠 것도 없다. 행복도 잠깐 불행도 잠깐 지나가면 그뿐이라. 아무것도 아니다.” 스스로 만들어낸 결핍을 채우려 발버둥 치는 누군가여, 잠시 긴장 풀고 이 담백한 위로에 빠져보시길. 21일까지 국립극장 하늘극장.

/송주희 기자 ssong@sedaily.com 사진=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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