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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반도체 탈환'·EU '배터리 독립'...韓은 규제 남발 '역주행'

[선거판에 외면 당한 K산업]

美의회 초당적 협력...'보조금·R&D지원' 반도체법 만들어

EU는 신통상전략 발표...中도 韓 겨냥 OLED 키우기 나서

국내선 선거에 골몰, 주력 수출 품목 철강·정유 등 '푸대접'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월 24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민주·공화 양당 의원들과 만나 중요 산업 재료의 '공급망'(서플라이 체인)에 관해 논의하면서 컴퓨터 칩을 들어 보이고 있다./AP연합뉴스




인텔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재진출, 폭스바겐의 전기차 배터리 독립 선언을 개별 기업의 경영 전략으로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미국은 ‘굴기(?起·우뚝 섬)’로 불릴 정도로 반도체 산업 지원을 위한 초당적 입법 노력을 쏟아붓고 있다. 유럽은 일찌감치 에너지 동맹을 맺고 배터리 산업 육성 정책을 차근차근 실행에 옮겨왔다. 폭스바겐은 오는 2030년까지 스웨덴 배터리 업체 노스볼트 등과 협력해 공장 6개를 유럽 전역에 짓겠다고 밝혔다. 폭스바겐과 독일만의 정책으로 볼 수 없는 이유다.

주요국은 미래 산업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동분서주하는데 우리 정부는 한가하다 못해 손발을 아예 놓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치권은 선거 이기는 데 정신이 팔려 있고 정부는 특혜 시비에 휘말릴까 봐 대기업 지원에 소극적이다. 산업 대전환 흐름에 맞춰 그 어느 때보다 ‘그랜드 플랜’이 필요한 시기에 표를 얻으려는 규제와 기업 옥죄기 정책만 쏟아지고 있다. 전직 고위 경제 관료는 “미국은 반도체법을 만들어 관련 산업을 키우겠다고 하고 유럽은 배터리 산업을 키우겠다고 선언했다”며 “국가의 산업 지원 시스템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미래 산업 주도권 확보 나선 美·中·EU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속도를 내고 있는 강대국들의 자국 산업 육성책은 수출과 제조업으로 먹고사는 한국을 위협한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이어 조 바이든 행정부도 핵심 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전력하고 있다. 정구현 전 삼성경제연구소장은 “미국의 제조업 강화는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단기간에 성공하기 어렵다”며 “상당히 오랜 기간 이러한 노력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 의회의 초당적 협력은 부러울 정도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미 의회는 지난해 자국 내 반도체 투자 기업에 연방정부의 보조금을 지원하고 연구개발(R&D)에 재정을 보탤 수 있도록 법을 바꿨다. 대통령 직속으로 반도체 기술 개발을 위한 기구 설립도 촉구하고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지난달 신(新)통상 전략을 내놓았다. 디지털 전환과 기후변화 대응을 새로운 통상 전략의 이유로 내세웠지만 결국은 EU 역내에 주요 산업 밸류체인을 구축하겠다는 의도가 다분히 깔려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EU 회원국의 이익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한 공급망 개편이 추가된 것이 기존 전략과의 차별점”이라고 분석했다. 유럽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폭스바겐의 배터리 독립 선언 역시 이런 흐름 속에서 나온 것이다. 민간 연구 기관의 한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기술 환경이 급격하게 변하는 흐름에 기업들이 대응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며 “산업 대전환기에 기업이 앞서가면 정부가 뒤에서 지원하는 구도”라고 설명했다.

당정, 정치놀음 빠져 기업 절규 무시

미국과 유럽의 반도체·배터리 산업 육성은 중국이 디스플레이 산업을 키워 결과적으로 한국이 치명상을 입은 선례를 되풀이하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 시장조사 기관 트렌드포스는 대형 액정표시장치(LCD) 시장에서 한국 점유율이 올해 9.7%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한때 50%에 육박했던 점유율이 중국에 밀려 한 자릿수로 추락하는 것이다. 지난 2015년 19.4%였던 중국의 점유율은 6년 만에 3배가 뛰어 올해 57.8%로 전망된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도 중국에 역전당하는 시기가 머지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주요 강대국들이 자국 산업 경쟁력 강화에 골몰하는데 한국은 선거판이 온 나라를 뒤덮고 있다. 집권 여당 대표는 아무렇지도 않게 특정 기업의 이름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며 망신 주기를 한다. 민간 기업 최고경영자(CEO) 교체 요구가 국회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나온다. 정치판에서 ‘기업 경쟁력 강화’ ‘기업인 기 살리기’ 담론은 사라진 지 오래다.

신산업을 육성한다고 하지만 막상 기득권의 저항에 맞닥뜨리면 꼬리를 내린다. 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경제 부처의 한 관계자는 “입법부가 행정부를 산하기관 취급하는 기울어진 힘의 균형 아래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고 토로했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원격의료 반대에 부딪혀 10년째 국회에 계류 중이다.

주력 수출 품목인 철강·정유·석유화학 업계를 향한 푸대접에 가까운 대우는 비극적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이들은 산업 주무 부처 장관조차 현장을 잘 찾지 않는 ‘손절’ 대상이 돼버렸다. 화학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금의 한국 경제를 있게 한 전통 산업을 어떻게 유지·발전시켜 경쟁력을 업그레이드할지 고민하지 않은 채 탄소 배출이 많다는 이유로 규제의 대상으로만 삼으려는 정부와 정치권의 인식은 무지하다 못해 비극적이기까지 하다”고 꼬집었다.

/한재영 기자 jyhan@sedaily.com, 이수민 기자 noenem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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