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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의 언어정담] 오해와 비판 속에서도 나다움 지키기

작가

작가는 항상 오해 받을 준비돼 있어야

타인 악의적 댓글에 무너지지 말고

더 좋은 글 쓰고 싶은 열망에 초점두면

마침내 이해·공감의 땅에 다다를 것

정여울 작가




글을 쓴다는 것은 항상 오해 받을 준비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비판 받을 준비도 해야 한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독자들은 ‘자신이 읽고 싶은 정보’만 읽거나, 읽은 문장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오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너무 자주 오해를 받다 보니 한동안 침묵을 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런 어두운 유혹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열정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슬럼프가 아니라 타인의 오해 때문에 차라리 침묵해야겠다는 자기비하의 감정이다. 오해는 잠깐의 사고일 뿐 결코 나의 글쓰기에 대한 열망 자체를 꺾을 수 없으며, 타인의 오해나 비난이 나의 인생 전체를 좌우할 수는 없다.



독자들의 오해와 비난 때문에 힘들 때는 좋은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달래본다. 니콜 크라우스의 소설 ‘사랑의 역사’ 속에는 오직 손짓 만으로 의사소통을 하던 ‘침묵의 시대’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가 펼쳐진다. 손가락과 손목의 섬세한 뼈를 이용한 무한한 조합의 동작만으로 인간은 모든 의사 표현을 해낼 수 있었다 한다. 침묵의 시대에 사람들은 오히려 지금보다 훨씬 더 의사소통을 많이 했다. 모든 손짓에 제 나름의 의미가 있었기에, 모두가 살아있는 한 늘 손짓을 통해 말하고 있었으므로. 그리하여 침묵의 시대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손으로 요리를 하기만 해도, 사랑은 저절로 전해졌던 것이다.

침묵의 시대에는 손짓 만으로 의사를 표현하다 보니 오해도 자주 생기기 때문에 사람들은 ‘언제나 오해가 발생할 수 있음’을 잊지 않고 더 자주 사과하고 오해를 풀려고 노력했다. 그저 코를 긁으려고 손가락을 올렸는데 그때 하필 연인과 눈이 딱 마주친다면, 상대방은 ‘당신을 사랑한 게 잘못임을 이제 깨달았어’라는 뜻의 손짓 언어로 오해할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용서해줘, 난 그저 코를 긁었을 뿐이야, 당신을 사랑한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아’라고 표현할 수 있는 손짓 언어도 함께 발달했다고 한다. 오해를 풀고 용서를 구할 때의 손짓은 가장 단순한 형태로 진화했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말해야 할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표현할 때는 오직 한 손바닥을 펼치기만 하면 됐다. ‘용서해 줘’라는 말이었다. 소중한 이에게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꺼내기 어려운 말은 ‘용서해 줘’가 아니었을까. 작가 니콜 크라우스가 묘사한 ‘침묵의 시대’에 사람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자주 용서와 미안함을 표현함으로써 지금보다 훨씬 순하고 평화롭게 사랑을 이루며 살아간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침묵할 때 가장 오해가 덜했다는 니콜 크라우스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어쩌면 의사소통이라는 것 자체가 오해를 단단히 각오할 때만 진정으로 실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글을 쓸 때는 ‘항상 오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며 쓰는 것이 좋다. 글쓴이가 최상의 표현을 추구해도, 읽는 이는 언제든 오해할 수 있다. ‘부모와의 갈등으로 인해 빚어진 트라우마를 극복해야 한다’는 취지로 쓴 글이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내 성적에 대한 부모님의 과도한 기대와 집착으로, 어둡고 슬픈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고백했는데, 독자들은 ‘감히 자식이 부모를 비난한다’고 오해했던 것이다. 지금은 부모님과 아주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내용을 더 강조해야 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항상 오해의 가능성이 가득한 거대한 침묵의 바다 위를 홀로 노 저어간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무시무시하게 고독할 때가 있다. 모두가 나를 오해할 준비가 되어 있는 듯한 슬픈 환상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괜찮다. 오해할 준비가 된 독자들의 비난보다는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은 나의 열망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 깊고 쓰라린 오해의 늪을 무사히 건너면 더 깊은 이해와 공감의 땅에 다다르기 때문이다. 모든 창조적인 작업을 꿈꾸는 크리에이터들이여, 타인의 악의적인 댓글에 무너지지 말기를. 기꺼이 오해 받을 준비, 언제든 비판 받을 준비를 하되, 마침내 이해 받고 공감 받을 준비를 하자.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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