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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반려식물을 기를 수 있을까?

피크닉 '정원만들기' 10월24일까지

6개월 계절변화 경험하는 느린 전시

땅의 가치,자연과의 공존 일깨워

도시의 자연성을 회복하는 장소로서의 정원을 재조명한 전시 '정원만들기'가 한창인 서울 중구 남산 인근 피크닉(piknic) 전경. /사진제공=피크닉




발 밑에 두고 있어 종종 잊고 지내는 흙, 땅. 소리 없이 피고 지는 풀, 꽃. 최근 들어 이들에 대한 관심이 새삼 커졌다. 기후변화와 환경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 전환이 가장 큰 이유일테고, 코로나 우울(코로나블루) 극복을 위해 택한 ‘반려식물’과 ‘플랜테리어’(식물을 뜻하는 plant와 실내장식인 interior를 합성한 신조어)의 확산 등 함께 숨 쉬고 있음에도 소홀했던 자연에 대한 공존 의식의 확대도 한 몫 했다. 서울 중구 남산 기슭의 피크닉(piknic)이 기획한 전시 ‘정원만들기’는 이 같은 경향을 정조준 해 “도시의 자연성을 회복시키는 장소로서 정원의 의미를 재조명”하며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정원을 만들고 식물을 가꾼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제대로 알고자 10월24일까지 길게, 계절의 변화를 느껴가며 느리게 진행되는 전시다.

최정화의 설치작품 ‘너 없는 나도, 나 없는 너도’


땅의 진짜 가치


시작은 땅이다. 사람보다 더 큰 양파,당근,배추와 아스파라거스가 꿈틀거린다. 거대한 땅 속 같은 전시장 안에서 풍선형 채소들이, 호흡하듯 발딱 솟았다 스러지기를 반복한다. 최정화의 설치작품 ‘너 없는 나도, 나 없는 너도’는 한 생명체를 규정할 때 공생하는 생명체까지 모두 포함하는 생물학 개념인 ‘통생명체(Holobiont)’를 이야기 한다. 흙 속 생명체가 된 듯한 경험을 하고 땅을 빠져 나가면 외부로 연결되고 바깥 공기를 마주하게 된다. 조경가 김봉찬과 신준호가 꾸민 ‘어반 포레스트 가든’은 식물학과 생태학 연구에 기반해 꾸민 도심 속 원시림 정원이다. 전시 개막을 준비하며 지난 4월에 심은 꽃과 나무가 그새 좀 더 자랐고, 여름에는 울창해질 것이며, 폐막할 10월 무렵엔 단풍과 열매를 보여줄 것이다. “발 아래 무성한 자연의 모습과 담장 너머 도심의 빌딩 숲을 바라보며 인간이 보다 커다란 자연 공동체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길 바란다”는 게 작가들의 목소리다.

조경가 김봉찬,신준호의 '어반 포레스트 가든' /사진제공=피크닉


관람 동선은 다시 전시장으로 이어진다. 구기정 작가는 토양에서 영감을 얻어 흙·마른 나뭇잎·이끼·벌레 등을 매크로렌즈로 촬영해 3D가상공간에서 합성했다. 구체적인 생명체가 없음에도 꿈틀대는 땅 속 이미지는 생명력 그 자체를 느끼게 한다. 실제 흙과 이끼 위에 모니터를 설치한 방식도 참신하다.

구기정의 '초과된 풍경'


구기정의 '초과된 풍경'


흙과 식물에 대한 마음이 열렸다면 이번에는 ‘정원가들’을 만날 차례다. 유럽·미국에 400여개 정원을 설계했고 오늘날 정원 디자인 이론의 초석을 다진 전설적 정원가 거트루드 지킬부터 국립중앙박물관·호암미술관의 희원·서울아산병원 공원 등을 만든 한국의 대표 조경가 정영선 등의 철학을 경험할 수 있다. 정원가꾸기를 사랑한 문인 헤르만 헤세, 에밀리 디킨슨, 차페크 형제, 박완서의 재발견은 자연이 삶에 어떤 영감을 주고 생각을 풍요롭게 하는지를 일깨운다.

기획전 ‘정원만들기’ 중 정원가 피트 아우돌프의 작품과 철학을 체험할 수 있게 조성한 공간. /사진제공=피크닉




네덜란드 출신 정원디자이너 피트 아우돌프의 작품은 각각의 의미 뿐만 아니라 해외여행이 막혀 가 보지 못하는 세계 곳곳의 정원을 벽면 크기의 대형 사진으로 접하게 한다는 점에서 더 오랜 시간을 머무르게 만든다. 아우돌프는 꽃에만 치중하던 전통 가드닝 방식을 지속가능한 정원, 곤충과 새들이 찾아오는 친환경 정원으로 바꿔놓은 선구자다. 스웨덴 드림파크, 미국 시카고 루리가든과 뉴욕 하이라인이 그의 작품이다. 예술이 자연과의 공존을 모색하기 시작하면서 하우저앤워스갤러리의 의뢰로 영국 서머싯주에 6,000㎡ 규모로 17개 화단의 정원을 조성했고, 2011년 런던 서펜타인갤러리의 연례행사인 파빌리온 프로젝트에 초청돼 스위스 건축가 페터 춤토어와 협력한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피크닉 측은 다큐영화 ‘다섯 계절: 피트 아우돌프의 정원’을 이번 전시 기간에 독점 상영한다.

정재은 감독의 30분짜리 3채널 영상작품 '정원의 방식' /사진제공=피크닉


나도 정원을 가꿔볼까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의 정재은 감독이 선보인 30분짜리 3채널 영상 작품'정원의 방식'은 ‘풀멍’(풀을 보며 넋놓기)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만든다. 영상이건만 촬영지 제주의 공기와 바람이 느껴지는 듯하다. 그렇게 이어지는 옥상에는 조경가 정영선의 진짜 정원이 펼쳐진다. 조경의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한 선구자답게 빌딩 숲 빽빽한 도심이 무색하게 인근 남산과 남산타워까지 정원의 일부로 끌어들인 실력이 탁월하다.

조경가 정영선이 조성한 피크닉 루프탑의 정원 전경.


조경가 정영선이 조성한 피크닉 루프탑의 정원 전경.


전시의 마무리는 전시의 첫 질문으로 일깨운다. 디렉토리매거진의 ‘나의 한 평 정원’은 도심 속 작은 집에서 살아가는 1~2인 가구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나는 식물을 잘 못 기른다’는 물음에 ‘예’ 또는 ‘아니오’로 답하며 화살표를 따라가면 채광·통풍·시간 등 각자의 성향과 상황에 적합한 정원을 찾아준다. 아파트 베란다에 마련한 작은 텃밭, 방 안에 들인 화분 등 어떻게든 식물을 삶 가까이 끌어들이고자 애쓰는 9명의 실제 사례가 ‘또다른 우리’를 만나게 한다.

디렉토리매거진이 구성한 '나의 한 평 정원'은 도심 속 현대인에게 적합한 정원방식을 추천해 준다.


지난해 코로나19의 한복판에서 선보인 ‘명상’ 전시가 치유와 회복의 계기를 제공해 호평받은 피크닉은 이번 전시 또한 환경과 생태라는 시대적 화두와 공명하고 식물을 가까이 두고 싶어하는 도시인의 공감을 이끌며 순항하는 중이다. 특유의 세련된 체험형 전시방식이 돋보이는데다 가치있는 소비, 세계관의 공유를 추구하는 MZ세대가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있다. 김지은 피크닉 큐레이터는 “평소 2030의 젊은층이 주를 이뤘으나 이번 전시는 50대 이상까지 고른 방문을 보이고 있어 고무적"이라고 귀띔했다. 누구나 갈망하는 ‘자연’의 힘이다.

/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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