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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기업
[동십자각]이젠 우리 제조업을 챙길 때다

김능현 산업부 차장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초기였던 지난해 3~5월 영국 보건 당국이 진행했던 일일 언론 브리핑에서는 단골 질문거리가 하나 있었다. 영국 의료진에 지급될 개인보호장비(PPE)가 얼마나 준비되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당시 영국 의료진은 제대로 된 PPE 장비가 부족해 감염률이 3분의 1에 육박한다는 보도까지 나오는 상황이었다. 영국 방송에는 비닐 천을 뒤집어쓰고 코로나19 검사를 하는 의료진의 처참한 모습이 수시로 등장했다.

영국 보건 당국은 터키로부터 PPE를 긴급 수입했지만 물량이 턱없이 부족했고 그마저 불량률이 높아 의료진의 불안감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버버리 등 세계적인 의류 브랜드를 보유한 영국이 정작 자국 의료진에 입힐 PPE를 만들어내지 못해 수입에 의존한 것이다.

영국의 PPE 부족 사태는 아무리 우수한 기술과 브랜드를 가졌더라도 제조업이 없다면 허울에 불과할 수 있다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최근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우리나라는 미국과의 경제 동맹, 가치 동맹을 강화했다. 우리 4대 그룹은 반도체·배터리·전기자동차 등의 분야에서 44조 원어치의 투자 보따리를 미국에 안겨줬다. 중국에 맞서 미래 전략 산업의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미국의 요구에 부응하는 한편 미국 시장 공략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기업들 입장에서는 미국의 압박에 굴복한 측면도 있지만 핵심 기술과 거대 시장을 가진 미국에 대한 투자 확대는 불가피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국 중심의 공급망에 편승하는 것 못지 않게 우리나라 제조업의 기반을 유지·강화하는 작업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미래 전략 산업의 글로벌 공급망에서 국내 제조업이 핵심 역할을 해야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사태에서 보듯이 해외 투자를 늘려 글로벌 경제 협력을 강화한다 해도 자국 내 제조 시설이 없으면 정작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대처가 어려워질 수 있다.

마침 우리 정부는 핵심 전략 기술의 연구개발(R&D)과 시설 투자에 대한 세제 혜택을 확대하는 등 첨단 산업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하지만 단순한 세제 혜택만으로는 해외로 빠져나가는 우리 제조 기업들을 붙들어두기 힘들다. 기업들의 투자를 가로막는 수많은 규제를 해소하고 경직된 노동 시장 구조를 바꿔 어느 나라 못지 않은 매력적인 투자처로 탈바꿈해야 한다.

글로벌 경제 협업이 각국의 교류를 늘리고 더 많은 가치 창출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코로나19 같은 비상사태가 발생하거나 강대국 간 힘겨루기가 심화하면 자국 우선주의가 기승을 부리며 국제 협업이라는 가치는 뒤로 밀린다. 강한 제조업 경쟁력은 이런 냉혹한 현실을 헤쳐나갈 가장 강력한 무기다.

/김능현 기자 nhkimch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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