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7개국(G7) 재무장관들이 이달 초 영국 런던에서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 15%를 뼈대로 한 합의를 이끌어내자 “국제 조세체계에 100년 만에 최대 변화가 생기게 됐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특히 ‘기업 소재지에서 과세한다’는 국제 법인세 체계의 한 축을 허물고 애플·구글·아마존·페이스북 등 다국적기업의 이익에 대해 매출이 발생한 나라가 과세할 수 있게 한 것은 미국이 반대했다가 포스트 코로나 체제를 준비하며 찬성으로 돌아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탄소 중립 시대’를 향해 앞서 나가는 유럽연합(EU)은 다음 달 탄소세 입법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글로벌 택스(Tax) 리셋(재조정)이 국경도 없이 진행되면서 국가 경쟁력을 강화할 세제 개혁의 큰 그림이 절실해진 형국이다.
G7 재무장관들은 지난 5일(현지 시간)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을 15%로 설정하는 데 합의해 ‘조세 회피처’에 법인을 두고 세금을 피해 온 적잖은 글로벌 기업뿐 아니라 ‘슈퍼 리치(Rich·부자)’도 상당한 영향을 받게 됐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주요 20개국(G20)이 글로벌 최저 법인세 논의를 시작한 지 약 8년 만으로 연말까지 139개국 협의체의 ‘포괄적 이행체계(IF)’ 논의만 남겨 두고 있다.
아울러 G7은 현행 제도와 달리 본사나 공장을 두지 않고 있는 다국적기업이라도 매출을 올리고 있는 나라에서 법인세를 부과할 수 있게 바꿀 계획이다. 주로 유럽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미국의 애플·구글·아마존·페이스북 등의 다국적 빅테크 기업들을 겨냥한 것이지만 우리나라의 삼성전자나 대형 게임 업체들도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 자국 기업들이 주로 글로벌 법인세의 타깃이 되는 미국은 각국의 최저 법인세율을 15%로 끌어올리기 위해 EU 회원국들의 적극적인 빅테크 기업 과세에 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G7이 100년 만에 뒤흔든 법인세 과세 체계 변화에는 삼성·SK·LG·CJ 등 상당수 국내 기업들도 영향권에 들 것으로 관측된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에 따르면 법인세가 거의 없는 조세 회피처에 역외 법인을 둔 대기업집단은 삼성이 59개로 가장 많고 SK 57개, LG 34개, CJ 33개, 현대차 25개 순이다.
글로벌 조세체계 개편에 대응이 불가피해진 국내 기업들의 부담을 줄이면서 고용 창출과 세수 확대를 이끌 세제 개혁의 필요성은 커지고 있다. 이미 국내 기업은 높은 수준의 법인세를 부담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2018년 법인세 최고세율을 인상하면서 과세표준 3,000억 원 초과 법인에 대한 최고세율은 22%에서 25%로 높아졌다. 법인세에 붙는 지방소득세(10%)까지 고려하면 법인세 최고세율은 사실상 27.5%에 달해 OECD 회원국 중 아홉 번째로 높다.
여기에 EU가 다음 달까지 해외 기업들을 겨냥해 소위 탄소세인 배출권거래세를 제출해 오는 2023년부터 적용할 계획이어서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내 기업들은 비상이 걸리게 됐다. EU가 부과할 탄소국경세는 수입품을 대상으로 해당 상품을 만든 기업에 탄소 배출량을 따져 세금(비용)을 부과하는 추가 관세나 마찬가지다. 이미 탄소세를 도입한 일본·캐나다·스웨덴에 EU가 가세하면 미국과 우리나라의 탄소세 도입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여 국내 주력 산업 중 하나인 철강과 석유화학 업계는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우려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최근 2019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기준으로 탄소세 도입 시 세율에 따라 연간 7조 3,000억 원에서 36조 3,000억 원의 기업 부담이 추가될 것으로 예측했다. 철강 업계의 한 핵심 관계자는 “탄소 중립 정책으로 에너지는 물론 산업계 전체가 대격변을 맞는 맞큼 적절한 세제 개편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코로나19 대응으로 정부 지출과 국가 부채가 급증하고 있는 만큼 생산성을 높이는 조세 재정 정책의 혁신도 요구된다. 한국경제학회장을 맡고 있는 정진욱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회성 정부 지출을 최소화하고 악화된 재정 상태를 다시 강화하면서, 생산성을 향상할 조세 재정 분야의 개혁 작업이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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