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넓은 야외에서 아주 평화롭게 낭만을 만끽하고 있는 한 가정. 아빠(클린트)는 딸에게 활 쏘는 법을 가르치고, 아들들은 야구를 하고, 엄마는 맛있는 점심을 챙긴다. 그런데 아빠가 뒤를 돌아본 순간 아내와 자녀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는데….” 2019년 개봉한 영화 ‘어벤져스:엔드게임’의 도입부다. 이 영화는 양자 터널을 지나 시간 여행을 하는 양자의 세계를 소재로 삼았다.
이처럼 과학의 발달로 빛처럼 빠른 세상, 나노 크기 영역의 미시 세계에 작용하는 물리 법칙에 관한 연구가 본격화하고 있다. 지금까지 세상을 지배해온 고전 물리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양자역학의 세상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하고 한국연구재단과 서울경제신문이 공동 주관하는 ‘이달의 과학기술인상’ 7월 수상자인 심흥선(48·사진) KAIST 교수는 금속과 반도체 내 불순물의 자성을 가리는 스핀 구름의 존재를 세계 최초로 입증했다. 이를 통해 미래 정보통신과 안보 기술의 토대인 양자 기술 발전의 실마리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새로운 특성의 양자 정보 소자 개발과 양자 컴퓨터 구현의 단초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도체나 반도체 내 불순물이 스핀을 가질 때, 이 스핀이 주위의 자유전자들에 의해 생성된 스핀 구름에 의해 가려지는 콘도 효과는 이미 1930년대 처음 알려졌지만 정작 스핀 구름을 관측한 연구자는 없었다.
심 교수는 2013년 콘도 스핀 구름 내부에 전기장을 가한 경우와 외부에 전기장을 가한 경우 각각 서로 다른 전류가 발생함을 예측하고 이를 활용해 콘도 스핀 구름을 관측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공동 연구에 나선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 연구팀은 심 교수의 이론 제안에 따라 불순물 스핀 주변의 서로 다른 여러 곳에 전기장을 인가할 수 있는 반도체 양자 소자를 제작했다.
심 교수팀은 매우 낮은 온도(-273.05℃)에서 관측된 소자의 전기신호를 분석하는 방법으로 스핀 구름의 크기와 공간 분포 확인을 통해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스핀 구름 존재를 최초로 증명했다. 발견한 수 마이크로미터(1㎛는 100만 분의 1m) 크기의 스핀 구름이 양자역학적 파동 특성을 보이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이번에 입증한 스핀 구름은 가장 간단한 경우의 자성 불순물에 발현되고 이보다 좀 더 복잡한 불순물의 경우에는 상당히 난해한 현상이 나타난다”며 “2차원 반도체 전기 소자를 이용해 양자역학적 파동 특성을 보이는 스핀 구름을 생성하고, 제어하고, 관측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이는 양자 컴퓨터나 양자 통신으로 대표되는 양자 정보 미래 기술을 반도체를 이용해 구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것을 뜻한다”며 “앞으로 미래 반도체 기술 개발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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