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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미 지닌 '가상 부캐' 하나로…누구든 스타 될수 있죠"

[이사람]

■세계 최초 가상인간 '루이' 제작 오제욱 디오비스튜디오 대표

실제 사람에 가상 얼굴 입힌 캐릭터

행동부터 구도까지 이질감 전혀 없어

태생부터 가상인 AI인간과도 차별화

끼 있는 일반인 꿈 펼칠수 있게 도와

상사맨 출신 자칭 '실패한 사업가' 에서

경영경험·VR기술·콘텐츠 결합해 재기

가상인간 인격권·범죄악용 문제는 과제

오제욱 디오비스튜디오 대표가 가상인간(버추얼 휴먼) '루이' 입간판 옆에 앉아있다. /오승현 기자




“저는 온라인에서만 만날 수 있는 버추얼 ‘부캐(부캐릭터)’ 루이입니다.”

지난 2월 유튜브에 공개된 한 영상으로 수많은 구독자들이 혼란에 빠졌다. 넉 달여간 유튜브에서 활동해온 ‘루이’라는 여성이 자신의 얼굴이 실체 없는 ‘가상’임을 고백했기 때문이다. 사실을 공개하기 전까지 루이는 인기 가수들의 노래를 부르고 여행하는 영상을 올리는 평범한 20대 대학생 유튜버로 알려져 있었다. 루이의 ‘폭로 영상’은 40만 회에 달하는 조회 수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다. 영상에 달린 “현실에 존재할 것 같은 얼굴” “못 믿겠다” “소름이 돋는다”는 댓글들은 루이가 ‘진짜 인간’임을 누구도 의심치 않았음을 그대로 보여줬다. 스스로 고백하기 전까지는 합성임을 알아챌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가상 얼굴’이었던 것이다.

3차원(3D) 모델링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에게 가상 얼굴을 씌운 세계 최초의 ‘가상 인간(버추얼 휴먼)’. 루이를 일컫는 수식어다. 루이를 제작한 오제욱(42) 디오비스튜디오 대표는 “평범한 외모의 일반인도 정우성·전지현 같은 얼굴이라면 쉽게 인플루언서가 될 수 있는 세상”이라며 “평범한 사람도 끼만 있다면 셀러브리티(유명 인사)나 메가 인플루언서가 될 수 있게 하겠다는 목표로 루이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루이의 ‘본체’는 유튜브에서 꽤 알려진 분으로 노래를 좋아하고 실제 아이돌 데뷔를 위해 연습생 생활을 했지만 아이돌이 되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 보니 그 길을 포기하게 됐다”면서 “하지만 루이라는 가상 얼굴로 아이돌이 아니더라도 노래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됐다”고 설명했다.

◇ 상사맨 출신 ‘실패한 사업가’... 기술·콘텐츠 융합한 ‘가상 인간’으로 재기

가상 인간 루이는 데뷔에 실패한 아이돌 연습생에게 가상 얼굴이라는 날개를 달아 꿈을 펼칠 수 있게 돕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루이는 제작자인 오 대표의 인생 역경을 떠올리게 한다. 루이를 만들어낸 디오비스튜디오는 오 대표가 세운 두 번째 회사다. 엑시트 후 연쇄 창업에 나선 ‘성공 사례’는 아니다. 2015년 창업했던 첫 회사 ‘티그라운드’는 처절하게 실패했다. 한류 열풍을 타고 유튜브 중심의 콘텐츠 사업을 벌이려 했지만 2016년 사드 배치와 한한령이라는 암초를 만났다. 오 대표는 당시를 떠올리며 “나는 실패한 사업가”라고 자조한다.

당시 예능, 드라마 리메이크, 영상 편집, 웹툰, 가상현실(VR) 등 수많은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지만 모두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그는 “그동안 공들였던 사업들이 6개월간 하나씩 순차적으로 없어졌고 사드 배치 직전까지 ‘러브콜’을 보내던 모든 파트너들에게서 연락이 끊겼다”고 어려웠던 시절을 회상했다. 오 대표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 빚을 내며 버텼지만 결국 직원들을 내보내야 했고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며 “사드 사태로 기업 경영에 거시적인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그대로 주저앉게 하지 않았다. 좌절하던 그에게 가상 인간 루이 같은 새로운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첫 도전에서 실패한 후 직장을 다니던 그에게서 가능성을 본 투자자들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줬고, 이에 그는 두 번째 도전에 나설 수 있게 됐다. 오 대표는 “가상 인간 사업을 독려해주신 엔젤투자자가 없었다면 재기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 대표의 성공에는 쓰라린 실패의 경험과 다양한 직장 경험이 영양분이 됐다.

오 대표는 대학에서 중문학을 전공한 후 LG상사·골프존·SBS콘텐츠허브 등에서 대(對)중국 사업으로 커리어를 쌓은 ‘상사맨’ 출신이다. 상사맨과 가상 인간은 거리가 먼 조합 같지만 그는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고 설명한다. 오 대표는 “LG상사에 처음 취업했을 때는 경영의 ‘ㄱ’자도 몰랐지만 전통 산업의 경영 관리와 신사업 추진법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을 배울 수 있었다”며 “골프존에서는 중국·대만 법인 설립을 맡아 시장 조사부터 고객 관리까지 ‘맨땅에 헤딩’하는 법을 배웠고 SBS콘텐츠허브에서는 한류 황금기에 콘텐츠 사업을 벌였다”고 했다. 상사에서는 경영을, 골프존에서는 VR 기술을, SBS콘텐츠허브에서는 콘텐츠 사업을 배운 셈이다. 결국 이러한 경험이 가상 인간 콘텐츠 사업의 성공 확률을 높이는 바탕이 됐다는 설명이다.



가상인간(버추얼 휴먼) 루이. /사진제공=디오비스튜디오


◇ ‘디지털 휴먼’과 ‘버추얼 휴먼’은 다르다… 끼 있다면 누구나 인플루언서로

오 대표의 최대 역작인 루이에 관한 가장 큰 궁금증은 과연 ‘본체’와 얼마나 닮았느냐다. 기술 실증을 위해서는 가상 얼굴과 ‘본판’의 차이점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하는데 루이의 본얼굴 공개는 계약상 불가능하다. 오 대표는 이러한 문제를 자신의 부캐로 정면 돌파했다. 공개된 오 대표의 가상 얼굴은 섬세한 20대 미남 청년은 물론 수염이 덥수룩한 루이의 얼굴로도 변한다. 본체가 오 대표임을 모른다면 실제 얼굴을 유추하기 힘들 정도다. 본래 얼굴과 상관없이 자연스러운 변형이 가능함을 증명한 셈이다.

유튜브·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보정된 얼굴을 내세우는 경우는 흔하다. 그러나 정해진 구도에서만 가능하거나 과도한 왜곡으로 아름다움을 넘어 기괴함을 느끼게 하는 일이 잦다. 루이는 인공적인 아름다움 대신 거리에서 언제든 마주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외모를 지녔다. 구도에서도 자유롭다. 일상생활을 기록한 브이로그(VLOG) 영상에서도 이질감을 느낄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럽다. 춤을 춰도, 여행지에서 자유롭게 뛰어놀아도, 가구 쇼룸에서 상품을 둘러봐도, 드론을 날려 줌 인·아웃을 시켜도 언제나 어색함 없이 실제 같은 얼굴을 유지한다.

그는 “루이를 만들어낸 디오비엔진은 얼굴을 ‘왜곡’해 만드는 기존 보정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며 “디오비엔진은 눈·코·입 등 랜드마크를 인식해 기존 얼굴과 아예 다른 새로운 데이터를 입히기 때문에 정해진 구도가 아니어도 가상 얼굴을 적용하는 데 무리가 없다”고 루이가 일상적인 자연스러운 움직임은 물론 다양한 구도도 가능한 이유를 설명했다.

현재 루이 외에도 가상 인간을 내세우는 캐릭터는 많다. 최근 신한라이프 광고 모델로 등장해 주목된 ‘로지’, 2016년 등장해 연간 100억 원 이상 벌어들이는 가상 인플루언서 ‘릴 미켈라’, LG전자가 올 초 CES 2021의 연사로 내세운 ‘래아’ 등이 대표적이다. 오 대표는 태생부터 가상인 캐릭터들과 얼굴 뒤에 실제 사람이 있는 가상 인간의 차이점을 강조한다. 태생부터 가상인 버추얼 셀러브리티, 버추얼 인플루언서는 ‘게임 캐릭터’와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오 대표는 “실사와 구분하기 힘든 그래픽을 구현하더라도 사람이 지닌 생동감이 부족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엔지니어·스토리텔러·마케터 등 인력이 동원되며 비용 부담은 더욱 커진다”며 “실패했을 때 위험 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런 방식의 가상 캐릭터로 개인의 부캐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디지털 휴먼은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자율성 없는 게임 캐릭터에 불과하지만 루이 같은 버추얼 휴먼은 얼굴만 다른 인격이 존재하는, 가면을 쓴 개인의 분신과 같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가상 캐릭터에게 존재할 수밖에 없는 ‘불쾌한 골짜기(인간과 유사성이 높지만 이질감이 남아 있을 때 느끼는 불편한 감정)’를 쉽게 극복할 수 있다는 게 오 대표의 주장이다.

오 대표는 “능력 있는 일반인이 셀러브리티까지 될 수는 없더라도 메가 인플루언서 단계까지는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디오비스튜디오의 목표”라며 “타인에게 좀 더 매력적인 사람으로 비치고 싶어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채워줄 수 있다”고 말했다.

◇ 누구나 가상 얼굴 ‘부캐’ 갖는 세상 목표… 범죄 악용 가능성은 해결해야

디오비스튜디오의 다음 목표는 ‘얼굴 분양’이다. 루이라는 한 캐릭터를 넘어 일반인들에게도 각각의 가상 얼굴을 분양한다는 계획이다. 루이가 여행을 다니고, 생활을 기록해 영상으로 공개하듯이 가상 얼굴을 쓴 개인의 ‘부캐 라이프로깅(일상 기록)’을 활성화하겠다는 전략이다. 루이를 제작하며 어떤 구도에서도 자연스러운 가상 얼굴을 구현하는 데 집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만 오 대표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법적 문제와 악용 가능성이다. 가상 얼굴을 이용한 범죄는 이미 실존 인물에 대한 ‘딥페이크’ 등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오 대표는 범죄 차단을 “가장 중요한 책무”라고 강조했다. 디오비엔진이 범죄에 악용되기 시작하면 사업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상 얼굴의 인격권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실제 루이에 대해서도 소수지만 악플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가상 얼굴이 널리 퍼질수록 악플·성희롱 문제가 더욱 크게 불거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하지만 현재까지 국내에서 가상 얼굴·인물의 인격권이 인정된 적은 없다. ‘가면’을 썼을 뿐임에도 뒤에 가려진 ‘사람’의 인격이 무시될 수 있는 셈이다. 오 대표는 “외설적인 콘텐츠를 자동으로 필터링할 수 있는 기술을 보완해야 하고 가상 얼굴이라는 점을 명시해 사기 가능성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며 “현재 소프트웨어 저작물로만 인정되는 가상 얼굴의 인격권에 대한 관련법 제정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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