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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 공포'에 원화 약세 가속…8월 금리인상 압박 커진다

■ 美 조기 테이퍼링에 고민 깊은 한은

원·달러 환율 1,200원선까지 상단 열려 있어 위태

물가 상승률도 넉달째 목표치 2%대 넘어 대응 시급

일각선 "델타 변이 맞물려 스태그플레이션 올수도"

코스피와 코스닥이 하락하고 원-달러 환율이 급등한 17일 중구 을지로 KEB하나은행 딜러들이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호재기자




인플레이션(지속적 물가 상승) 공포에 원화 약세가 가속화하면서 오는 26일에 열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가 인상될 가능성이 한층 높아지고 있다. 빨라지는 미국의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을 앞두고 증시에서 외국인 탈출이 이어지자 환율은 단숨에 1,200원 선도 위협하고 있다. 환율 상승은 수출에 도움이 되지만 물가 상승을 더욱 부추기는 요인이 된다. 서울의 지난달 아파트 가격 상승률 역시 1년 만에 최고치를 보여 가계 부채 증가에 따른 한은의 ‘금융 불균형’ 우려는 더욱 커지는 양상이다.

원·달러 환율은 17일 11개월 만에 최고치인 1,176원 30전에 마감했다. 지난 한 주간 약 27원 오르며 달러에 대한 원화 가치가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을 시사하는 테이퍼링 움직임이 빨라지고 외국인의 증시 매도세가 꺾이지 않으며 원화 약세도 예상보다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미 연준의 긴축은 안전 자산 선호 심리를 강화해 강달러를 촉발하는 측면이 있다. 특히 이날도 외국인은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에서 4,870억 원의 순매도를 기록하며 증시를 떠났다. 최근 유로·엔 등 주요 통화에 대한 미 달러화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가 93을 웃돌다 하락한 반면 원화에 대한 달러 강세가 유독 두드러지는 배경에는 외국인의 증시 매도세가 있는 셈이다. 오창섭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연준의 테이퍼링을 앞두고 달러 강세에 대한 기대가 적지 않은데 외국인들이 증시에서 빠져나가며 원화를 팔고 달러를 사면서 수급에 직접적 영향을 주고 있다”며 “단기 상승 폭이 크기는 하지만 1,200원 선까지는 상단이 열려 있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환율 상승은 그렇지 않아도 불안한 소비자물가에 기름을 부을 수 있는 요인이어서 한은과 정부의 애를 태운다. 지난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6%를 기록하며 한은의 물가 목표치인 2%를 훌쩍 넘어 넉 달 연속 2%대를 나타냈다. 환율이 오르면 수입 물가 상승을 부르며 소비자물가 상승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한은이 26일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올릴 명분은 늘게 됐다. 7월 수입 물가는 3.3% 상승하며 석 달 연속 오름세를 보였다.

강삼모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의 테이퍼링 일정 등을 고려할 때 한은의 금리 인상 시점이 다가오는데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쉽지 않아지자 달러 강세를 부추긴 측면도 있다”면서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전고점을 크게 넘지 않는 수준에서 관리된다면 이달 금통위에서 금리 인상이 단행될 가능성도 높다”고 내다봤다.



한은 내부에서도 코로나19 재확산에도 ‘학습 효과’로 전반적인 경제 위축 가능성이 높지 않고 국민지원금 등 2차 추가경정예산안 집행, 환율 상승에 따른 수출 호조세가 올해 4%대 성장률 달성을 이끄는 측면 등을 고려하면 이달이 2018년 11월 이후 2년 9개월 만에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할 시점이라는 판단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한은은 기준금리를 2019년 각각 0.25%포인트씩 두 번, 2020년에는 두 차례에 걸쳐 0.75%포인트 인하해 현재 기준금리는 0.50%다. 델타 변이 바이러스 확산에 주춤했던 금리 인상 시그널이 환율 상승에 더욱 강해지는 모습이다.

특히 가계부채 증가세에 더 이상 손놓고 있을 수 없다는 한은의 위기감도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다. 전체 은행권 가계대출은 6월 말 기준 1,030조 4,000억 원으로 올 상반기에만 초저금리와 집값 상승의 흐름을 타고 41조 6,000억 원 급증했는데 7월에도 9조 8,000억 원 늘어나며 전달보다 증가 폭을 확대했다.

서울의 아파트 값 상승세가 정부의 총력전에도 지난달 1년 만에 최고치를 나타내고 전·월세 상승세도 계속되는 것이 가계 부채 증가의 주된 요인이라고 보는 한은은 거품이 커지고 있는 부동산 시장에 개입할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릴 경우 한은은 전체 주택담보대출자의 이자 부담이 1조 4,000억 원 증가하며 부동산 매수세를 조금이나마 제약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문제는 금리 인상이 자칫 코로나19 상황에서 한계에 다다른 중소기업과 자영업을 빠르게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이다. 재난지원금으로 버텨왔던 경기가 순식간에 주저앉을 수 있다는 점도 우려 요인이다. 전문가들은 금리 인상은 한계에 이른 가계와 좀비 기업에 대한 정책적 지원과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지원은 아니다. 금융권 자율의 철저한 옥석 가리기가 우선돼야 한다.

일각에서는 섣부른 금리 인상이 자칫 변이 바이러스와 맞물려 저성장의 트리거가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가장 좋지 않은 시나리오인 저성장·고물가의 스태그플레이션이 다가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투자 매체 배런스는 “세계 경제가 생명 유지 장치로 겨우 목숨을 이어온 상황에서 (코로나19의) 또 다른 유행이 발생하면 미약한 회복세에 종말을 가져올 수 있다”며 “스태그플레이션의 공포가 투자자들에게 주요 걱정거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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