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지지율 하락으로 정치적 위기에 몰린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이달 29일로 예정된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하지 않기로 했다. 이는 이달 말 총재 임기에 맞춰 1년 만에 총리직에서 물러난다는 의미다. 스가 지도부로는 오는 10월 총선에서 이길 수 없다는 자민당 내 여론이 커지면서 스가 정권이 1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스가 총리는 3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코로나19 대책에 전념하기 위해 총재 선거에 출마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총리가 된 뒤 1년간 코로나19 대책을 중심으로 국가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 해결에 전력을 기울여왔다”면서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해 양립할 수 없는 코로나19 대책과 총재 선거 활동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민 여러분의 생명과 삶을 지키는 것이 총리인 저의 책무이므로 전념해 (임기 만료까지 그 책무를) 완수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의원내각제인 일본에서는 다수당(현재 자민당) 총재가 총리를 맡게 된다. 자민당은 소속 국회의원과 당원이 참여해 새 총재를 뽑는 선거일을 이달 29일로 잡았다. 중의원 임기 만료(10월 21일)에 따른 총선일은 유동적이지만 10월 17일이 유력하다. 29일 선출되는 새 자민당 총재는 총선에서 자민당이 다시 다수당을 차지할 경우 총리가 된다.
이번에 스가 총리가 자민당 총재 선거에 나가지 않겠다고 한 것은 총리직 연임의 첫 관문에 도전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스가가 총리직을 계속 수행하려면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재선 문턱을 넘은 뒤 총선을 승리로 이끌어 자민당의 다수당 지위를 지켜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최근 여론이 급격히 악화하자 결국 손을 든 것이다. 스가는 지난해 9월 지병을 이유로 자민당 총재 임기를 1년 남겨놓고 물러난 아베 신조 전 총리의 뒤를 이어 자민당 총재로 선출된 뒤 총리가 됐다. 이번 불출마 결정으로 스가는 전임 아베의 잔여 임기만을 수행한 1년짜리 총리로 기록된다.
스가의 총리직 수행 환경은 녹록지 않았다. 무엇보다 코로나19 사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여론이 크게 나빠졌다. 델타 변이 바이러스 확산에도 불구하고 도쿄 올림픽 개최를 강행한 것도 부담이 됐다. 결과적으로 일본 대표팀의 올림픽 성적이 좋아 도쿄 올림픽 자체에 대한 여론은 개선됐지만 스가의 지지율 회복으로는 연결되지 않았다. 올림픽을 계기로 코로나19 확산세가 더욱 강해졌기 때문이다.
외교적으로도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특히 올 초 취임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일본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는 데 실패했다. 최근 아프가니스탄 대피에서도 일본 외교의 안일한 자세가 언론의 집중 사격을 받았다.
일각에서는 스가 총리가 난국돌파용으로 추진한 당 간부진 쇄신 인사와 부분 개각이 당내 반발로 실현 불가능한 상황이 되자 백기를 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인사 추진에 대해 당내에서 “총재 선거와 총선을 앞둔 시점의 땜질 인사는 스가 정권 연명만을 위한 미봉책”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져 오히려 더욱 코너로 몰리게 됐다는 것이다. 교도통신은 총리 관저 관계자를 인용해 “6일로 예정했던 당 임원 인사가 막힌 것이 총재 선거 불출마의 직접적 배경”이라고 전했다.
한편 차기 총리 후보로는 기시다 후미오 전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을 포함해 고노 다로 행정개혁담당상,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 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지난해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후보 3명 중 득표 수 2위를 기록했던 기시다 전 정조회자은 지난달 26일 일찌감치 출마를 선언했다. 기시다는 자신이 총재가 되면 자민당 간사장 임기를 1년으로 정하고 연속 3기(3년) 동안만 간사장을 맡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개혁안을 제시했다.
고노 담당상은 여론조사에서 이시바 전 간사장과 더불어 차기 총리 후보 선두 다툼을 벌여 스가의 대안으로 급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전날까지 출마에 관해 “백지”라고 반응했던 이시바도 스가의 출마 포기 소식이 전해진 이날 “동지와 상담해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할 때 결론을 내겠다”며 출마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시바는 2008년·2012년·2018년·2020년 등 모두 네 차례에 걸쳐 총재 선거에 출마한 이력이 있다. 2012년과 2018년에는 아베와 맞섰고 지난해에는 스가·기시다와 경쟁했으나 후보 3명 중 3위를 기록했다.
이밖에 다카이치 사나에 전 총무상이 출마 의사를 밝혔고 젊은 피로는 고이즈미 신지로 환경상이 후보군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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