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근당은 이달 초 회사채 시장에 처음으로 데뷔해 만기가 3·5년인 자금 1,000억 원을 조달했다. 그간 은행 대출로 필요한 자금을 확보해왔지만 본격적인 금리 인상기에 접어들면서 금융 비용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지난달 말 사전청약을 진행한 삼성바이오로직스도 창사 이래 처음으로 공모 회사채 5,000억 원어치를 발행했다. 당초 3,000억 원을 발행할 예정이었지만 추가 수요가 있는 것으로 보이자 곧장 2,000억 원을 늘려 현금을 추가로 확보했다.
대기업과 중견 기업을 막론하고 자금 조달을 위한 발걸음이 이달부터 빨라진 것은 본격적인 긴축 국면에 접어들면 금리 인상 속도를 가늠하느라 돈가뭄에 시달릴 수도 있다는 기업 자금 담당자들의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이르면 다음 달이라도 기준금리를 추가로 올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자 조금이라도 낮은 비용으로 현금을 확보하려는 수요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박종석 한은 통화 담당 부총재보는 지난 9일 “정책금리가 인상 사이클로 들어선 것은 사실”이라며 추가 인상 기조를 분명히 했다.
이에 따라 재무구조가 탄탄한 포스코와 롯데그룹 계열사인 포스코케미칼과 롯데렌탈도 이달 들어 각각 2,000억 원과 3,000억 원을 회사채 발행으로 조달하며 금융기관 대출 상환 재원을 마련했다. CJ제일제당과 SK㈜ 역시 각각 3,700억 원, 3,600억 원어치의 회사채를 발행해 단기 자금(CP) 상환에 나서기도 했다.
기업들이 주로 이용하는 금융기관 대출의 경우 변동금리 비중이 높아 기준금리 인상 여파를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 대부분 1년 안팎인 단기 자금 시장도 마찬가지다. 만기가 짧은 탓에 외부 충격에 취약하다. 실제 지난달 기준금리가 15개월 만에 인상으로 방향을 튼 후 이달 182일물 기업어음을 발행한 두산(A3등급)의 경우 발행금리가 지난 4월(0.99%) 대비 67bp(1bp=0.01%포인트)나 높은 1.66%로 대폭 올랐다. 이자 비용이 5개월 만에 눈덩이처럼 불어난 셈이다.
자금 부담이 커지는 추석 연휴나 분기 말(9월 말)이 다가오는 것도 기업 자금 담당자의 어깨를 짓누르지만 연말로 갈수록 자금 확보가 어려울 수 있다는 공포감이 더 크다는 관측도 나온다. 4분기부터는 기관투자가들이 투자 포트폴리오를 정리하고 수익률이 저조한 회사채를 시장에 내다 팔기 시작한다. 아울러 일찌감치 장부를 마감하고(북클로징) 더 이상 회사채를 담지 않는 기관들이 많아져 웬만한 대기업도 회사채 발행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일부에서는 벌써 현금 확보가 쉽지 않아지며 회사채 시장에 비상등이 켜졌다는 전망도 제기한다. 금리 변동성이 높아지자 회사채 시장이 이미 약세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국고채 금리가 2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자 채권 가운데 위험이 높은 회사채의 유동성 프리미엄이 늘었다. 9월 이후 수요예측을 진행한 기업들의 발행 스프레드(개별 민평과의 금리 차)는 0(par)으로 7월 -4.3bp 대비 적잖이 올랐다. 투자은행(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상반기 회사채 시장이 좋을 때는 발행 물량을 담으려는 수요가 넘쳐났지만 지금처럼 본격적인 금리 인상기에 접어든 후에는 평가손실 부담 때문에 투자가 쉽지 않다”면서 “추후 금리 상승을 감안한 수준으로 회사채를 매입하는 경우가 늘어나 기업들의 조달 비용은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이달 7일 회사채 사전청약을 진행한 LG디스플레이는 대규모 수요를 확보하기 위해 투자자들에게 고금리를 제시했다. 일반적으로 10~20bp 수준으로 제시하는 금리 밴드 상단을 최대 65~75bp 선까지 확대해 투자자를 유인한 것이다. LG디스플레이 다음날 수요예측에 나선 두산퓨얼셀은 500억 원의 회사채를 모집하면서 연간 최대 5.5%의 금리를 제시하기도 했다.
자금 조달 비용이 늘거나 어려운 추세는 신용도가 낮은 기업일수록 뚜렷하다. BBB등급인 두산인프라코어의 경우 5월에는 3년 만기 회사채 600억 원을 연 3.3%의 금리에 조달한 데 반해 7월에는 연 2.5~3.5%의 금리를 내걸며 800억 원을 모집했지만 130억 원의 미매각이 발생했다. DL건설도 투자 수요가 많은 ESG채권을 발행해 최대 1,000억 원의 자금을 조달할 계획이었으나 수요예측 결과 800억 원어치의 매수 주문만 들어왔다. 대형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저신용 기업들의 경우 대부분 차환을 염두에 두고 회사채를 발행하는데 리파이낸싱(자금 재조달)을 통해 금리가 크게 오를 수 있다”며 “금융 비용이 급증하거나 투자자를 찾지 못해 단기 자금 시장으로 내몰려 재무 부담은 더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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