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추석 전과 당일에 각각 시골에서 부모님 등 조상님 묘소를 돌며 벌초를 했다. 청년 두 명과 함께 총 5기의 묘소를 정비하고 아카시아 뿌리를 뽑는데 구슬땀이 비 오듯이 흘렀다. 추석 이후에는 시골에서 아버님 제사를 모셨고 곧 어머님 제사도 모시러 갈 예정이다. 그런데 시골에 갈 때마다 과연 이런 전통문화가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지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그만큼 농촌 공동화와 전통 단절이 심하기 때문이다. 기자가 시골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학생이 2,000여 명이었다. 지금은 병설 유치원을 포함해도 80명이 안 된다. 농사짓는 연령도 60대 초반이 가장 젊은 축이다. 그만큼 저출산·고령화가 심각하다. 과연 어떻게 해야 농촌을 살리고 도시와도 상생할 수 있을까.
바로 농촌 마을을 치유농업(케어팜·Care Farm) 공동체로 탈바꿈하면 된다. 치매 노인, 우울증(코로나 블루) 환자, 발달장애·자폐·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 환자, 약물 중독자들이 거주하며 힐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환자가 낮에만 체험하는 형태도 가능하다. 일반 노인도 자연 친화적 실버 생활을 누릴 수 있다. 전문가·주민·자원봉사자가 어우러지면 별 문제없다. 이런 단상(斷想)을 지난 설날 이후 유기상 고창군수께 제안하니 치유농업을 확대해 해양치유로까지 넓히겠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환자와 노인들이 케어팜에서 생활하거나 체험하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 가볍게 채소 등 텃밭을 가꾸고 과일도 딴다. 정원의 꽃과 나무도 꾸민다. 개 등 동물도 돌본다. 노래·춤·산책·그림·공예·전통문화도 즐긴다. 요리·설거지·청소도 한다. 뭔가 삶의 의미를 느끼며 자존감과 자활 의지를 키우며 삶의 질이 높아진다. 농민들은 케어팜을 생산·가공·관광 등 6차 산업으로 연결시켜 소득을 늘릴 수 있다. 젊은이들이 농촌에 거주할 여지도 생기고 도시민의 귀농·귀촌 유도 효과도 발생한다.
실제 유럽에서는 20~30년 전부터 케어팜이 발달했다. 네덜란드의 경우 농장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케어팜이 1,400개 가까이 된다. 이 중 약 25%는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주 2~3회, 오전 10시~오후 4시 체험을 하도록 한다. 간병인을 갖춘 거주형 케어팜은 허가와 관리가 까다로워 숫자가 많지 않은데 그만큼 선호도가 높다. 평일에는 치매 환자를 돌보고 주말에만 자폐아를 1박 2일 받는 곳도 있다. 어느 곳이든 돌봄과 농업 교육을 할 수 있는 인력을 배치해 환자와 노인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돕는다. 자원봉사자나 일부 주민이 돕는다.
우리나라는 유럽의 사례를 참고하되 농장이 아니라 마을 공동체 중심으로 케어팜을 추진하는 게 효과적이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시범 사업을 통해 마을 단위로 노하우를 축적하면 고령화 시대 해법이 될 수 있다. 마을 회관이나 남아도는 시골집을 활용하면 된다. 이렇게 되면 경증 치매 환자의 인지 기능이 향상되는 등 다양한 유형의 환자와 노인이 사람·자연·동물과 교감하는 효과를 얻게 된다. 주민들은 요양보호사나 간병인·장애인활동지원사·치유농업사 자격증을 따거나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다. 시골 할머니들의 구수한 수다도 활력소가 될 것이다. 환자 가족과 관광객에게 팜스테이와 지역 역사 문화 체험 서비스도 제공한다. 유기농 식품이나 농산품 가공 판매, 찻집·밥집 운영도 할 수 있다.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고 새로운 복지 문화를 선보이는 것이다. 물론 도심에서도 시골과 차별화한 시설형 치유농장을 할 수도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케어팜에 대한 법률 정비와 환자 건강보험 적용 등 지원 체계를 갖추는 게 시급하다. 이곳에서 원격의료까지 할 수 있도록 하면 금상첨화다. 마침 지난 3월 국회에서 ‘치유농업 연구개발 및 육성에 관한 법률’이 통과됐다. 이제는 속도다. 농림축산식품부·보건복지부·행정안전부·해양수산부 등과 정치권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 여야 대선 주자들도 이렇게 농업과 보건 복지를 융합한 창의적 민생 해법을 놓고 논쟁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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