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학이 아닌 이념으로 만들어진 탈원전 정책의 손실을 결국 국민이 짊어지게 됐다. 전력 산업 발전과 전력 수급 안정을 위해 사용하는 전력기금을 정부가 멋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시행령을 바꿨다. 전력기금은 전기 요금에서 떼어내 조성된 기금인 만큼 국민의 전기 요금 부담이 더 커질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진다. 매년 불어나던 전력기금은 지난 2018년 이후 계속 줄고 있다.
25일 관련 부처에 따르면 전기사업법 제 48조는 전력기금의 설치 목적에 대해 ‘전력 산업의 지속적인 발전과 전력 산업의 기반 조성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다음 달 9일부터는 탈원전에 따른 손실 비용을 전력기금으로 충당해야 한다.
이번에 개정된 시행령에 따라 비용 보전 대상 사업은 사업자가 원전 감축을 위해 해당 발전 사업 등을 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하고 행정 조치까지 완료한 사업이다. 비용 보전 대상 원전 총 7기 중 현재 비용 보전 신청이 가능한 원전은 대진(삼척) 1·2호기, 천지(영덕) 1·2호기, 월성(경주) 1호기 등 총 5기다. 비용 보전 범위는 신규 원전의 경우 인허가 취득을 위해 지출한 용역비, 인허가 취득 이후 지출한 부지 매입비, 공사비이며 조기 폐쇄된 월성 1호기는 계속 운전을 위한 설비 투자비, 물품 구매비, 계속 운전에 따른 법정 부담비 등이 포함된다.
한국수력원자력이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이번에 비용 보전 신청이 가능한 원전 5기의 손실 비용은 6,666억 원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건설이 중단된 신한울 3·4호기를 포함하면 1조 4,556억 원으로 늘어난다.
전문가들은 탈원전에 한전공대 설립 등 대통령의 공약 추진을 위해 전력기금을 쌈짓돈처럼 사용한다면 예상보다 빠르게 고갈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는다. 특히 탄소 중립 추진으로 인한 전력 산업 기반 조성에 투입돼야 할 전력기금이 모자랄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력기금 중 공공자금관리기금 예탁 누적액은 지난해 3조 9,600억 원이다. 2년 연속 감소하고 있다.
기금의 경우 국회가 운용계획안 및 기금 결산에 대한 심사권을 가지고 있지만 정부가 세입·세출 예산과 상관 없이 운용할 수 있어 견제가 쉽지 않다. 이번 전기사업법 시행령 개정 역시 예산 관련 내용이 담기지 않아 정부 부처 간 회의인 국무회의만으로 수정이 가능했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정부로서도 탈원전에 따른 손실을 감당할 수 없어 전력기금 활용이라는 편법을 쓴 것”이라며 “전기 요금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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