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을 조건부 승인하기로 잠정 결정했다. 양 사의 통합으로 독과점이 발생하는 노선은 운수권이나 슬롯(공항 이착륙 시간)을 재배분한다. 다만 미국과 유럽연합(EU)·중국 등 해외 주요 당국의 결정이 남아 있어 최종 기업결합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공정위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 심사보고서를 29일 발송했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내년 초 전원회의를 열어 결론을 내리게 된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11월 아시아나항공 주식 63.88%를 취득하는 계약을 맺고 지난 1월 공정위에 기업결합을 신고했다. 1년 만에 공정위가 결론을 내리는 셈이다.
공정위는 두 기업의 계열사를 포함한 5개 사(대한항공·아시아나·진에어·에어부산·에어서울)가 운항하는 약 250개 노선을 분석하고 총 119개(항공여객 87개, 항공화물 26개, 기타 6개) 시장을 획정해 각각 경쟁 제한성을 분석한 결과 ‘인천~LA’ ‘인천~뉴욕’ ‘인천~장자제’ ‘부산~나고야’ 등 점유율 100%인 독점 노선 10개를 포함한 일부 노선에 경쟁 제한성이 발생할 것으로 판단했다. 공정위는 양 사가 해당 노선의 운수권이나 슬롯을 이전하는 방식으로 독과점을 해소하도록 했다.
통합 항공사는 독점이 예상되는 일부 노선에서는 운수권을 반납해야 한다. 각국이 운수권을 자유롭게 설정할 수 없는 유럽·중국 등 ‘항공 비자유화 노선’에서 잔여 운수권이 없어 신규 진입이 불가능한 경우가 반납 대상이다. 반납된 운수권은 관련 법령상 국내 항공사에만 재배분될 수 있다.
공정위는 양 사가 보유한 국내공항 슬롯 중 ‘경쟁 제한성이 생기지 않도록 하거나 점유율이 높아지는 부분을 해소하는 수준’에서 일부를 반납하도록 했다. 외국 공항 슬롯의 경우 혼잡 공항 여부, 신규 진입 항공사의 슬롯 보유 현황 등을 고려해 국토교통부와 협의 후 이전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런던·파리·뉴욕 등 혼잡도가 높은 주요 공항의 슬롯은 재배분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를 두고 우리 항공업계의 경쟁력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우리 정부가 회수한 운수권을 국내 항공사에만 재배분할 수 있다지만 현실적으로 신규 진입할 항공사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외 국내 저비용항공사(LCC) 중 장거리 노선을 운행할 만한 대형 기종을 보유한 곳은 없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항공 여객 수요 감소로 위기에 놓인 LCC가 대형기를 새로 구매하기도 쉽지 않다.
국내 LCC가 회수된 운수권을 배분받지 못하면 자연스레 외국 항공사들의 시장 점유율은 높아지게 된다. 통합 항공사가 승객 이용률이 높은 ‘알짜’ 시간대 슬롯을 반납해야 한다는 점도 부담이다. 대한항공 측이 고용유지 입장을 밝히긴 했지만 노조에서는 운항 횟수와 승객이 줄어들면 장기적으로 중복되는 인력이 감축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공정위는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의 운수권·슬롯 이전이 완료될 때까지 △운임 인상 제한 △공급(좌석) 축소 금지 △서비스 축소 금지 등을 이행하도록 했다. 운수권·슬롯 이전 조치가 효과적이지 않거나 불필요한 일부 노선에 대해서도 이와 같은 행태적 조치만 부과한다.
공정위는 내년 1월 말께 전원회의를 열어 심의를 시작한다. 다만 시정조치안을 바로 확정하기보다는 해외 경쟁 당국의 심사 상황을 봐가며 추가 회의를 열어 결정할 가능성이 있다. 공정위뿐 아니라 해외 경쟁 당국의 승인을 모두 받아야 기업결합이 완료되기 때문이다. 고병희 공정위 시장구조개선정책관은 “해외 경쟁 당국의 경우 기업 측이 가져온 조치 방안을 승인하는 구조인 만큼 기업의 노력이 결합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며 “공정위의 조치가 각국 조치와 충돌하지 않도록 ‘조치 변경이 추후 가능하다’는 내용을 보고서에 담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 관계자는 “공정위의 심사보고서를 송달받으면 구체적인 내용을 면밀하게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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