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중립 시대를 맞아 전기차와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설비에 금속 자원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비축 계획조차 세우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정부는 금속 자원의 확보·활용·관리 방안 등을 담은 ‘금속 비축 종합 계획’을 연내 수립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결국 해를 넘긴 지금까지도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부 금속 자원의 지역적 편중이 심한 가운데 글로벌 공급망 붕괴에 따른 수급 차질까지 현실화하는 상황에서 희소금속의 안정적 확보에 실패할 경우 에너지 안보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최근 발간한 ‘탄소 중립 이행을 위한 금속 자원 확보 과제’ 보고서를 통해 “재생에너지와 에너지저장장치 기술을 포괄하는 탄소 중립 기술은 다종 다량의 금속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금속 자원의 안정적 확보는 탄소 중립 사회로 가기 위한 중요한 국가적 과제가 됐다”며 금속 자원 비축 계획의 조속한 수립과 희소금속 공급원을 다양화하기 위한 투자 확대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보고서에 따르면 탄소 중립 시대의 대표 아이템으로 떠오른 전기차의 경우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에 비해 6.2배 더 많은 금속 자원을 사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주요 발전 설비 가운데 태양광은 천연가스보다 6배, 육상 풍력과 해상 풍력은 각각 8.95배와 13.55배 더 많은 금속 자원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IEA는 오는 2050년 탄소 중립 달성 시나리오를 충족시키려면 2040년까지 전 세계 금속 수요가 지난 2020년 대비 약 2.7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입법조사처 보고서는 재생에너지 설비에 대한 투자 확대가 세계 금속 원자재 가격 상승에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몰리브덴 가격은 2020년 4분기와 비교해 114%나 뛰었고 같은 기간 주석은 84%, 코발트는 59% 급등했다. 구리(30.6%)와 알루미늄(37.8%) 가격도 30% 넘게 치솟았다. 한국광해광업공단이 집계하는 희유금속지수는 4일 기준 3,160.46으로 지난해 초(1,201.63)와 비교해 1년 새 2.6배 넘게 뛰어올랐다.
이처럼 금속 자원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글로벌 공급망 차질에 따른 수급 불안까지 더해질 경우 탄소 중립 달성에 악재가 될 수 있는 만큼 국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 위해 먼저 한국광해광업공단과 조달청으로 이원화된 금속 자원 비축 제도를 일원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희소금속은 광해광업공단, 비철금속은 조달청이 비축하고 있다. 문제는 전기차 배터리의 필수 원자재인 니켈의 경우 대표적 희소금속이지만 조달청이 비축하는 비철금속에 포함돼 희소금속 관리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에 정부는 조달청이 보유한 희소금속 9종을 광해광업공단에 이관하기로 했지만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아직 이관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또 정부는 지난해 말까지 금속 자원의 확보·활용·관리 방안 등을 담은 금속 비축 종합 계획을 수립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국 해를 넘긴 지금까지 발표되지 않고 있다. 아울러 리튬·니켈·코발트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광물로 꼽히는 희소금속의 공급처 다변화를 위한 투자 확대 필요성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니켈과 코발트의 중국 의존도는 70~80%를 넘는다.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을 지낸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탄소 중립 시대를 맞아 재생에너지 기술에 필수적인 금속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지 못할 경우 에너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희소금속의 공급처 다변화를 위한 투자 확대에도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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