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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票’만 보고 ‘노동이사제’ 밀어붙인 이재명…따라간 윤석열

이재명 “패스트트랙이라도 신속하게 도입”이후 속도

윤석열 “진보·보수 모두 표 많은 노동자 편일 수 밖에”

대선 앞 與 ‘하명입법’에 일사천리·野 사실상 통과 협조

재계는 ‘비명’ “이사회 마찰 불가피…경영 스톱 가능성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연합뉴스




공기업과 준정부기관 등 공공기관 이사회에 근로자 대표를 포함하는 것을 골자로 한 ‘노동이사제’가 11일 본회의를 통과했다. 반도체와 2차전지 등 국가 차원의 전략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을 강화하는 ‘반도체 특별법’도 이날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노동이사제 도입에 따른 부작용과 반도체의 특수성을 고려한 주 52시간 근로제 탄력 적용 등 재계의 목소리는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선을 앞두고 노동 표심만 바라본 여야 대선 주자의 선창에 본회의 통과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노동이사제가 포함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공포되면 6개월 후부터 공공기관은 근로자 대표의 추천이나 동의를 받은 비상임 이사 1명을 이사회에 선임해야 한다.

재계는 지난해부터 제도 도입에 반발해왔지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에 이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까지 찬성하며 급물살을 탔다. 이필상 서울대 경제학부 특임교수는 “노사 합의 문화가 발달한 유럽 일부 국가와 달리 영미식 주주자본주의 시스템에 노사 갈등이 강한 국내에 노동이사제를 도입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우려했다.

반도체 특별법도 재계의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민주당이 당론으로 추진했던 반도체 특별법은 총리실 산하 국가핵심전략산업위원회 신설, 반도체와 2차전지 등을 포함한 첨단산업 분야에 인력과 인프라 등의 투자를 지원하는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수도권 대학의 반도체학과 정원 확대와 주 52시간제 탄력 적용 등 재계의 요청은 전혀 수용되지 않았다.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조항마저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대폭 수정되면서 알맹이 없는 ‘생색내기용’에 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131개 공공기관 이어 민간도 시간문제…"강성 노조에 경영 멈춰 설 것"


노동이사제는 현 정부 출범 이후 줄곧 ‘여당·노동계’가 찬성, ‘야당·경제계’가 반대 입장에서 팽팽히 맞섰지만 대선 앞에 여야 모두 노동 표심(票心)에 손을 들어줬다. 문재인 정부 100대 과제였지만 첨예한 입장 차로 5년 가까이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던 법안이었다. 그러다 지난해 11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정기국회 내 처리를 당부하고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까지 가세하자 두 달 만에 국회 문턱을 넘었다. 선거를 앞두고 표심 앞에 ‘허약한 정당’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윤 후보는 지난해 말 관훈토론회에서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보수 성향이든, 진보 성향이든 가릴 것 없이 노동자 편일 수밖에 없다”며 “표가 그쪽에 많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사회에 근로자가 직접 참여하면 경영 자체가 마비될 수 있다는 재계의 우려에 보수 정당 대선 후보까지 귀를 닫은 셈이다. 국회가 11일 본회의에서 노동이사제를 포함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의결하면서 당장 재계는 비상등이 켜졌다. 노동 이사 자격은 3년 이상 재직 근로자로 임기는 2년으로 하되 1년 단위로 연임할 수 있다. 시행 시기는 공포일로부터 6개월 이후로 올해 하반기 적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추경호 원내수석부대표가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새해 첫 본회의를 마치고 의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권욱 기자


법안 처리 과정은 드라마틱했다. 이 후보가 지난해 “현실적으로 야당이 반대하거나 협조하지 않으면 ‘패스트트랙’을 통해서라도 신속하게 공공 부문 노동이사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뒤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이후 윤 후보까지 동조하면서 유력 두 대선 후보들의 ‘하명’ 입법에 여당은 안건조정위원회를 열어 드라이브를 걸었고 상임위에서 퇴장하며 항의한 야당도 안조위원을 지명하는 등 사실상 본회의 통과에 협조했다. 이날 신년 기자회견 자리에서 윤 후보는 “공공기관은 사기업과 달리 도덕적 해이가 걱정될 수 있다”며 “근로자들이 추천하는 분이 회사 사정에 대해 파악하고 감독하는 업무를 담당한다면 공정하게 감독이 가능하지 않겠냐”며 재차 노동이사제 도입에 힘을 실어줬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새해 첫 본회의를 마치고 의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권욱 기자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5개 경제 단체는 일찌감치 반대 목소리를 냈지만 역부족이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앞서 입장문을 통해 “강성 노조가 공공기관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이사제가 도입되면 공공의 이익은 노조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뒷전으로 밀릴 것”이라고 반발했다. 특히 전경련은 “공공 부문 노동이사제 도입이 민간 기업 도입 압력으로 이어지면 가뜩이나 친노동 정책으로 인해 위축된 경영 환경은 더욱 악화할 것”이라고 반대했지만 정치권은 외면했다. 이날 본회의 통과 직후 한 공기업 임원은 “법안 통과가 지나치게 빠르다”고 했고 다른 한 공공기관 관계자도 “노조가 강성이라 노조 요구에 노동 조건이나 급여·정원 등 안건마다 이사회에서 마찰이 커지면 경영 자체가 멈춰 서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날 본회의를 통과한 반도체특별법은 국무총리 산하에 20명 이내로 구성된 ‘국가첨단전략산업위원회’를 설치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인허가 신속 처리 특례, 세액공제 등을 지원하는가 하면 전문 인력 확보를 위해 계약학과, 특성화대학(원) 설치·운영을 지원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다만 시작만 요란했던 ‘속빈 강정’ 법안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당초 정부와 여당은 기업의 요청을 적극 수용하겠다며 지난해 하루가 멀다 하고 기업체를 방문하며 ‘경청’하는 자세를 보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재계의 요청에 눈을 감았다. 재계가 요구한 수도권 대학 정원 완화와 주52시간근로제 탄력 적용 관련 조항은 결국 제외됐다. 수도권 대학 정원은 지방정부 눈치를 보기 바빴고 주52시간근로제 탄력 적용은 노동계의 반발을 의식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특별법에 따라 지원 근거가 마련된 것에 의미가 있다”면서도 “반도체 글로벌 패권 경쟁 속에서 중국과 미국 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한국 정부는 따라가지 못해 아쉽다”고 지적했다.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새해 첫 본회의에서 만 16세 이상 국민이라면 누구나 정당의 발기인 및 당원이 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정당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가결되고 있다. /권욱 기자


한편 국회는 정당 가입 가능 연령을 낮춰 앞으로는 고1 연령부터 정당에 가입을 할 수 있도록 수정한 정당법 개정안도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만 16세 이상 국민이라면 누구나 정당의 발기인 및 당원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지난해 국회는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선거 피선거권 연령을 만 18세로 낮추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으며 이에 따라 정당 가입 연령도 낮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 데 따라 정당 가입 연령을 하향했다. 경찰관의 형사책임 감면을 골자로 하는 경찰관 직무집행법(경직법) 개정안도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경직법 개정안은 현장 경찰관이 긴박한 상황에서 직무 수행 중 타인에게 피해를 줘도 고의·중과실이 없다면 형사책임을 감경 혹은 면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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