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상속세 최고 세율은 가업 승계가 어려울 정도로 상상을 초월한다. 지난 2018년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별세로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총수 일가가 신고한 주식 상속세는 9,000억 원 수준이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타계로 오너가에서 부담해야 하는 상속세는 4,000억 원에 달한다. 삼성그룹 오너 일가는 12조 원이라는 막대한 상속세를 부담해야 한다. 상속세 납부를 위해 기업을 사모펀드에 매각하거나 폐업하는 경우도 있다. 2013년에는 국내 종자 업체 1위인 농우바이오가 2013년 고희선 회장 사망 후 1,200억 원대의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해 지분을 매각하기도 했다.
◇징벌적 상속세율 60%=가업 승계 자체를 고민하도록 하는 ‘실질 상속세율 60%’는 재계의 오랜 고민거리로 꼽힌다. 국내 기업 오너가 기업을 물려줄 경우 내야 하는 명목 상속세율은 50%다. 하지만 최대주주의 주식에 대해서는 20%의 할증이 붙어 실질 세율은 더 높아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상속세율이 가장 높은 일본(55%), 프랑스(45%), 영국·미국(40%)을 넘어선다.
중소기업은 가업상속공제제도를 통해 최대 500억 원까지 공제를 받을 수 있어 상속세 부담에서 자유로운 듯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고용 유지 조건 등 엄격한 사후 관리 요건에 발목을 잡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중소기업중앙회의 2020년 중소기업 가업 승계 실태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인 500개 중소기업 중 94.5%가 가업 승계 시 상속세 등 조세에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중소기업 10곳 중 3곳은 10년 내 승계가 필요한 상황인데 가업상속공제 요건을 충족한 기업은 27%에 불과한 탓이다. 실제 2013년 화장실·욕실용 자재 업체 와토스코리아의 경우 세라믹 소재의 신제품을 개발하고도 업종 변경으로 취급돼 공제를 받을 수 없게 되자 신제품 생산을 포기하기도 했다. 다음 달 중순께 상속증여세법 시행령 개정안이 적용되면 가업상속공제 관련 가업 인정 요건이 다소 완화되지만 개정안이 상속 전 사업에 대해서만 적용된다는 한계가 있다. 일정 범위 내에서 공익 법인에 주식을 출연해 경영권을 유지하도록 하는 제도가 마련돼 있지만 활용도는 낮다. 의결권이 있는 주식 총수의 5% 이하로 공제 범위가 제한적이라는 점이 문제다.
◇3% 룰, 경영권 공격에 취약=재계가 높은 상속세율을 우려하는 것은 경영권 공격에 취약한 우리나라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소위 ‘3% 룰’로 불리는 상법상 감사·감사위원 선임 시 3% 의결권 제한 규제, 감사위원 분리선임제 등도 경영권을 위협하는 요소다. 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대규모기업집단의 2020년 12월 결산 상장 계열 회사 213곳의 최대주주 등의 평균 지분율은 45.25%이지만 감사·감사위원 또는 감사위원이 되는 이사를 선임하는 경우 약 7.43%로 급감한다. 재계 관계자는 “투기 세력이 공의결권을 확보하는 전략으로 경영권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최대주주 의결권이 특수관계인 합산 3%로 제한되는 등 경영권 위협에 대한 불합리한 규제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1주=1의결권’ 원칙의 예외를 인정하고 보통주보다 많은 의결권을 갖는 주식 발행을 허용하는 등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 재계의 주장이다. 선진국형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꼽히는 신주인수선택권(포이즌필) 도입에 대한 목소리도 높다. 자기주식 매입으로 경영권을 방어할 수밖에 없어 고비용 방어 수단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2018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당시 삼성물산이 헤지펀드 엘리엇에 대응하고자 우호 주주에 매각한 자기주식 가격은 6,743억 원에 달한다. 양준모 연세대 교수는 “포이즌필은 경영 능력을 검증받은 창업주가 회사를 키워가는 기회이자 자본을 조달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무더기 의원 규제 입법, 제동 필요=이외에도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의원 입법에 대해서도 재계는 평가 기능을 강화해 무분별한 입법을 방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원 입법안 발의 건수는 20대 국회에서 16대 국회 대비 14배 수준으로 급증했다. 특히 상장회사의 경영 활동과 밀접한 의원안도 함께 늘어 규제의 필요성이나 경제적 타당성에 대한 고려 없이 기업 규제의 양적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높다. 경제 단체들은 사전적 의견 수렴 절차를 강화하거나 규제영향분석과 같은 사후 평가 제도를 도입해 의원 입법 절차의 개선을 도모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오는 27일 시행을 앞둔 중대재해처벌법도 의원 입법 사례다. 시행이 목전이지만 산업 현장에서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예방 조치를 해야 하는지, 의무 주체는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실정이다. 경제 단체들은 구체적인 보완 방안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지만 처벌을 완화하고 중대재해의 정의 등 포괄규정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경쟁국 어디에서도 전례가 없는 입법으로 상당히 강력한 처벌 규정을 담고 있으면서도 모호하다”며 “기업 경영이나 투자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만큼 반드시 손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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