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경제의 한 축인 통화정책을 총괄하는 한국은행 총재 자리가 정권 교체기와 맞물리면서 공석이 발생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주요 국가들이 긴축 정책으로 전환하고 있고 고물가·고환율·고유가 등 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여건이 급박하게 바뀌는 시기에 총재 공석으로 자칫 정책 대응의 골든 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5일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이주열 총재의 임기는 오는 3월 31일까지다. 통상적으로 후보 지명 이후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리기까지 약 20일이 걸리는 만큼 이대로라면 일정 기간 총재 공석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후보자 지명이 더 늦어지면 4월 14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총재 없이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일마저 벌어질 수 있다. 이 총재는 지난달 간담회에서 “금통위가 합의제 의결기구인 만큼 자율적으로 정책을 운용할 수 있다”면서도 “물론 의장 역할이 크고, 없을 때 지장이 전혀 없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한은 총재가 금통위 의장직을 맡게 된 지난 1998년 이후 총재 교체 과정에서 공석이 발생한 적은 한 차례도 없다. 만약 후임 총재가 임명되지 않더라도 이 총재는 임기를 마치고 이승헌 부총재가 내부 경영을 맡고 미리 정해둔 순번에 따라 주상영 금통위원이 금통위 의장직을 대행한다.
관건은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전격적인 인선 가능성이다.
법적으로 임명권자는 현 대통령이지만 후임 총재는 다음 정권에서 임기 4년을 보내기 때문에 당선인의 의중을 어느 정도 반영할 수 있다. 따라서 청와대가 미리 검증을 마친 후보자 중에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측이 적절한 인사를 고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청와대와 인수위가 협의를 통해 정할 경우 후임 총재는 윤석열 정권의 첫 번째 청문회 대상자가 되는 만큼 정치적 중립성을 갖춘 무난한 인사가 뽑힐 가능성이 크다. 현재로서는 외부 출신보다 한은 내부 출신인 이 부총재와 윤면식·장병화 전 부총재 등이 거론되고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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