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집권론을 꿈꿨던 더불어민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내줬다. 정치권에서 일종의 법칙처럼 통하던 10년 주기설이 깨진 것이다. 지난 1987년 이후 5년 만에 상대 진영에 정권을 빼앗긴 최초의 정부라는 불명예만 떠안게 됐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문재인 정부에서 반면교사 삼아야 할 것들은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독선과 진영 간 갈라치기는 근절하고 협치와 통합형 내각 실현은 임기 내내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만과 독선은 실패의 지름길=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 문재인 정부와 집권 여당의 지난 5년은 이 한마디로 요약된다. 촛불 정부를 자임했던 문재인 정부는 스스로에게 지나친 도덕적 권위를 부여했다. 언론과 야당 등의 합리적 비판에도 눈과 귀를 닫는 경우가 많았다. 조국 사태와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사례에서 보듯이 사법부도 이들의 독선을 꺾지 못했다. 당 지도부급 인사들은 “거짓의 감옥에 보내게 됐다”며 대법원 판결마저 공공연하게 부정하는 행태를 일삼았다. 이러한 독선은 중도 성향의 지지층 이탈을 불렀고, 결국 어떤 악재에도 꺾이지 않는 강고한 정권 교체 여론을 만들어냈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선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국민의힘의 승리보다는 오만한 민주당에 대한 심판으로 인식하는 것이 성공적인 국정의 첫 단추라고 강조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이번 대선만큼 정권 교체 여론과 정권 재창출 지지 여론의 차이가 벌어진 적이 없었다. 집권 세력에 대한 심판 의지가 그만큼 강했다는 점을 뜻한다”면서 “부동산 등 일부 정책 실패로 심판 여론이 생기지는 않는다. 집권 세력의 독선과 오만함 등 태도에 대한 심판이 20대 대선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라고 진단했다. 신 교수는 “오만하면 언제든지 바로 심판한다는 것이 한국 정치의 새로운 표준이 됐다”며 “윤 당선인이 겸손한 자세를 보이며 치유의 리더십만 구현해도 여론의 지지를 상당히 받으며 국정 운영이 가능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지지자를 위한 정치는 결국 ‘독’=진영 간 갈라치기도 극복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문재인 정부의 집권 기간 동안 조국 사태 등을 거치면서 진영 간 대결은 정치적 내전 상황을 방불케 할 정도로 심화됐다. 이는 정치권, 특히 집권 세력의 책임이 크다. 국민은 두 쪽으로 갈라져 대립하는데, 대통령은 지지자들에게 갇혀 사실상 손을 놓아버렸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실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편 가르기’를 전략적으로 활용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한일 갈등 격화 국면이나 총선거 등 선거를 앞두고 여권 핵심 인사들은 ‘토착왜구 척결’ 등을 입에 올리며 반일 감정을 자극했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사건, 윤미향 민주당 의원의 정의기억연대 후원금 유용 의혹 등으로 국민적 공분이 발생해도 ‘피해 호소인’이라는 신조어를 유통하며 편 가르기로 대응했다.
유창선 정치평론가는 “편 가르기 정치는 결국 민심 이반을 낳고 정책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대통령은 모두의 대통령이다. 남녀와 세대 간의 갈등을 해결해야지 어느 한쪽 편에 서서 갈등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여야 협치 구축의 물꼬=야당을 국정 운영의 파트너로 존중하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는 조언도 많았다. 문재인 정부는 2020년 4월 총선에서 승리한 뒤 법사위원장 몫을 두고 야당과 갈등을 빚다 결국 모든 상임위원장을 독식했다. 국회 역사상 유래를 찾기 힘든 일이었다. 이후에도 야당을 존중하지 않은 사례는 속출했다. 청문회 제도를 무력화하며 인사권을 남용한 것이 대표적이다. 인사청문회 단계에서 야당이 ‘임명 반대’ 의견을 냈는데도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인사는 34명에 이른다. 역대 정부 중 가장 많은 숫자다.
새 정부가 직면한 환경은 협치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과제다. 170석이 넘는 의석을 차지한 야당과 갈등이 깊어지면 내각 구성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다. 장관은 인사청문회를 거치기만 하면 되지만 야당의 견제 속에 낙마가 속출할 수도 있다.
◇통합형 내각 완성=매번 공염불에 그친 통합형 내각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이 어느 때보다 큰 것도 염두에 둬야 한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전국적으로 고르게 인사를 등용하겠다. 능력과 적재적소를 인사의 대원칙으로 삼겠다”고 약속했지만 기대했던 탕평 인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노무현 정부 인사나 측근들로 채워져 회전문 내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문재인 정부의 요직을 가장 많이 배출한 대학은 ‘참여연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인재 풀을 스스로 좁혀온 결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으로, 장하성 정책실장을 주중 대사로, 김상조 전 공정거래위원장을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이동시키는 등 돌려 막기 인사도 반복됐다. 정권 말 사실상 ‘의원내각제’의 모습을 띠었다. 18개 정부 부처 가운데 민주당 의원 출신 장관은 8명에 달한다.
엄경영 시대경영연구소장은 “여야 협치 없이는 국정 운영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윤 당선인이 빨리 인식하는 게 관건”이라며 “기존 정치권에 부채가 없다는 장점을 활용해 탈진영·능력 우선의 인사 철학을 구현하는 것이 새 정부의 성공을 좌지우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