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퇴임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지만 여전히 후임 총재 인선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사상 초유의 통화정책 수장 공백 사태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이번 주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회동이 전격 성사될 경우 신임 총재가 깜짝 발표될 가능성도 있지만 향후 국회 임명 동의 절차를 고려하면 당분간 총재 공석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신임 총재 후보로는 이명박(MB) 정부 출범 당시 인수위원회 인수위원과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잇따라 맡았던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국장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20일 한은에 따르면 이 총재는 오는 31일로 임기가 종료된다. 국회 인사 청문회 일정 등을 고려할 때 신임 총재가 4월 1일부터 공백 없이 바통을 이어받으려면 늦어도 이달 중순 후임 총재가 내정됐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 후임자 내정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당초 대선 이후 문 대통령이 윤 당선인과 협의해 후임 총재를 지명할 것으로 관측됐지만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회동이 돌연 취소되는 등 양측 간 갈등이 불거지면서 한은으로 불똥이 튀는 모양새다.
총재 공백 사태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한은은 지난 16일 총재 공백 시 이승헌 부총재가 총재직 권한대행을 맡고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직 직무대행은 주상영 금통위원이 수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다음 달 14일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회의가 열릴 때까지도 신임 총재가 취임하지 못하면 기준금리 결정 등의 안건을 주 의장 직무대행 주재로 논의하게 된다.
물론 당장 이번 주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회동이 전격 성사되면 회동 직후 신임 총재가 함께 발표될 가능성도 있다. 문 대통령은 18일 한 차례 연기된 윤 당선인과의 회동과 관련해 “빠른 시일 내에 격의 없이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는 자리를 갖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라며 신속한 회동 가능성을 언급했다. 특히 감사원 감사위원 선임 문제 등과 달리 한은 총재 문제에 대해서는 청와대나 윤 당선인 측 모두 큰 이견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인선에 속도가 붙을 수도 있다.
현재 한은과 인수위 안팎에서는 차기 총재로 이 IMF 국장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출신의 이 국장은 2007년 말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시절 인수위 경제1분과 위원으로 참여한 뒤 MB 정부에서 금융위 부위원장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기획조정단장을 지냈다. 이후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이코노미스트를 거쳐 2014년 IMF로 자리를 옮긴 그는 이론과 실무는 물론 국제 경험까지 두루 갖춘 인물로 평가받는다. 과거에도 한은 총재 물망에 올랐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고사해왔던 그는 은퇴를 앞두고 고국에서 뭔가 기여하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당선인 측 인수위에 MB 정부 출신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는 데다 이 국장이 현 정권 측과도 원만한 관계를 이어온 만큼 한은 총재로 지명될 경우 여야 모두 큰 반대 없이 인사 청문회를 통과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은 내부 출신으로는 이 부총재와 윤면식 전 부총재도 후보군으로 이름이 오르내린다. 하지만 내부 출신인 이 총재가 현 정부에서도 연임을 통해 8년간 의사봉을 잡아온 만큼 새 정부에서는 외부 출신이 우선 검토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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