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원자재·곡물 가격이 급등하는 가운데 브라질을 비롯한 중남미 펀드의 상승세가 가파르다. 원자재 생산·수출국을 향한 글로벌 자금의 ‘러브콜’ 덕에 증시는 물론 외환·채권시장도 들썩이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긴축과 전쟁 위협 속에 마땅한 투자처가 없는 상황에서 이들 원자재 보유국의 프리미엄이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다만 원자재·곡물 값 급등이 불러온 고물가가 이들 신흥국 내에서 정치·사회적 소요 등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투자에 경계를 늦추지는 말 것을 조언하고 있다.
11일 펀드 평가사 에프앤가이드·한국펀드평가 등에 따르면 국내에서 운용 중인 10개 브라질 주식형 펀드와 8개 중남미 주식형 펀드의 연초 이후 평균 수익률은 각각 28.5%, 23.1%에 달했다. 이 기간 북미·유럽 펀드의 수익률이 각각 -9.41%, -8.94%에 머물렀던 것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수익률이다. 베트남(5.03%), 인도(1.75%) 등 신흥국 펀드와 비교해도 상대적으로 높다.
상품을 들여다봐도 올 들어 고수익을 기록한 펀드·ETF는 대부분 브라질·중남미 상품이 차지하고 있다. 멀티에셋삼바브라질펀드(34.6%), 신한브라질펀드(31.7%), 신한더드림브라질펀드(31.5%) 등이 올해 들어서만 각각 30% 이상의 수익률을 올려 눈길을 끌었다. 또 한화브라질(29.6%), KB브라질(27.9%), 미래에셋브라질업종대표(26.3%) 등도 20%대의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미국 증시에 상장된 라틴아메리카 기업에 투자하는 TIGER 라틴35 ETF와 멕시코 증시의 주요 기업들에 투자하는 KINDEX 멕시코 MSCI(합성) ETF 등도 연초 대비 각각 32.8%, 10.6%의 수익을 거뒀다.
이들 중남미 국가들의 질주는 러시아발 원자재·곡물 값 쇼크에 따른 ‘나비효과’라는 분석이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자원 부국이자 세계 원자재 주요 생산·수출국인 중남미로 몰려가며 증시를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실제 세계 최대 구리 생산국인 칠레의 증시는 연초 대비 18.24% 상승했고, 세계에서 은 매장량이 가장 많은 나라이자 구리·아연 등의 주요 광물 수출국인 페루도 15.21% 높아졌다.
특히 브라질은 원당과 대두 등 주요 농산물의 수출국이자 원유·철광석·희토류 등의 보유량도 높은 ‘자원 부국’으로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브라질 증시인 보베스파지수가 연초 대비 12.88% 오른 것은 물론 달러 대비 헤알화 가치도 1분기 14.9% 급등했다. 기준금리를 선제적으로 연 11.75%까지 올려놓은 덕에 미국의 긴축 행보에도 환율 흔들림이 적어 채권 투자에 대한 관심도 다시 커지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중남미 국가의 ‘원자재발 랠리’가 올 상반기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당분간 원자재·곡물 가격 상승세를 꺾을 별다른 변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다.
다만 일각에서는 전쟁 리스크를 너무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는 조언도 나온다.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글로벌 경기를 위축시켜 자원 보유국 역시 타격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물가 리스크에 취약한 나라들의 경우 정치·사회적 소요 등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실제로 9일 페루에서는 연료·비료 값 급등이 촉발한 반정부 시위가 있었다.
최진영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페루와 칠레는 글로벌 최대 금속 생산국답게 광산업의 비중이 높아 러시아발 원자재 쇼크의 수혜를 입었지만 에너지와 곡물의 경우 순수입국에 해당해 고물가에 취약하다”며 “이런 취약성이 자칫 ‘아랍의 봄’과 같은 반정부 시위로 이어질 경우 증시에 악재가 되는 것은 물론 구리·아연 등 일부 금속의 단기 공급 불확실성까지 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는 이어 “에너지와 곡물 가격이 안정화되는 하반기까지는 금속 섹터의 추가 변수를 계속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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