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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현 가야금, 다양성과 공존 역사 산물이죠"

◆잊힌 역사 찾기 나선 정은영 국립현대미술관 과장

'가야 역사 기록해야' 사명감에

2년간 하루 수백㎞ 영호남 답사

느슨한 연방체 지속 가능했던 건

서로 인정하며 하나가 됐기 때문

향후 마한·탐라 등 연구 계획도

정은영 과장




“가야는 강력한 왕권 국가가 아닌 느슨한 연맹체였습니다. 그럼에도 500년 이상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다양성과 공존의 가치를 유지했기 때문입니다. 가야를 보면 영호남과 남북으로 갈라져 대립하고 반목하는 오랜 생각의 경계는 의미가 없습니다.”

가야 등 우리 역사의 잊힌 곳들을 찾아 나선 정은영(52·사진)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총괄과장이 18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금관가야와 대가야 등 소국가들의 연합 왕국이었던 가야는 다양성을 유지하면서도 하나로 묶인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정치 공동체”라며 이같이 말했다.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한 정 과장은 청와대 행정관, 문화체육관광부 과장 등을 거친 전형적인 공무원이다. 그런 그가 존재했지만 잊힌 역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하나의 질문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기록이 없다고 기억이 없는 것일까.’ 그는 “기록은 없지만 고고학적으로 유의미한 유물이 있으면 그것이 역사가 없는 시절을 보완해 줄 수 있을 것”이라며 “누군가 계속 파고들면 잊힌 역사를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가야는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한 첫 시도였다. 게다가 2017년에는 정부를 중심으로 가야사에 대한 붐이 일기도 했다. 과거 1500년 동안 한 번도 주목받지 못했던 관심 밖의 존재가 갑자기 화두로 등장하면서 이제는 정말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고 한다. 그는 “가야에 대한 관심은 지금이 지나고 나면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며 “누군가는 기록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고 실행에 옮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9년부터 2년간 답사 후 지난해 펴낸 ‘잊혀진 나라 가야 여행기’는 그 결과물이다.



정은영 과장


하루 수백㎞를 돌아다니고 고분과 박물관 앞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영호남 지역을 답사한 후 그가 내린 결론은 가야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고대국가로서 통일된 관료 체계도 갖지 못한 가야가 500년 이상 유지할 수 있었던 힘은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며 공존의 지혜를 발휘했기 때문일 것”이라며 “이런 특별한 통치 방향은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독특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가 주목하는 것이 당시 악성 우륵이 만든 가야금곡이다. 대가야국 가실왕이 음악을 통한 12가야의 통합을 꿈꾸며 우륵에게 지시한 12줄의 가야금곡에서 나오는 화음이야말로 다양성과 공존의 철학을 바탕으로 깔고 있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정 과장은 “다양성이란 긴장과 균형을 유지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라며 “각각을 인정하면서 하나로 되는 것이 각각의 현을 통한 화음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다양성과 공존을 바탕으로 500년을 유지해 왔던 가야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점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해석했다. 정 과장은 “역사 속에 영호남이 함께 어우러졌던 시대가 500년 동안 이어졌다는 사실은 지금 영호남의 단절적 역사의 허구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각각의 특성과 문화를 유지하면서도 하나로 존재할 수 있는 길이 여기에 있다”고 지적했다.

잊힌 역사를 찾는 그의 발길이 가야에서 멈추는 것은 아니다. 이미 또 다른 목적지가 정해졌다. 이번에는 영산강 유역의 마한이다. 정 과장은 “마한 역시 가야와 마찬가지로 신라·백제·고구려 삼국에 밀려 역사에서 사라졌던 존재”라며 “이후 탐라 등 삼국에 포함되지 않았던 지역의 연구와 답사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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