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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현장에서] 수교 60년 韓·모로코의 문화적 연결고리

정기용 주모로코 대사

모로코서도 큰 각광받는 K콘텐츠

외교관계 영향 미치는 '소프트파워'

양국 묶는 스토리·맥락찾기 공들여

국익 도움 되도록 장기계획 세워야





냉전 이후 국제정치 분석에서 이미 중요한 개념이 된 ‘문명’과 ‘연성권력(소프트파워)’을 각각 설명한 기념비적 고전 ‘문명의 충돌(1996)’과 ‘주도국일 수밖에 없는 미국(1990)’이 출간됐을 당시 그 책들이 우리나라를 대상으로 쓰였을 것이라고 예견한 국제정치 학자나 외교관은 아마도 거의 없었을 것이다. 각 저술의 저자인 고(故) 새뮤얼 P 헌팅턴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우선 주요 문명의 분류에 있어 우리나라를 중국 문명의 일부로서 다뤘으며 조지프 나이 전 하버드대 교수도 미국 국력 변화의 본질을 소프트파워의 부상으로 분석했다. 그런데 요즘 필자가 근무 중인 모로코에서 여론 주도층이나 일반 대중을 접촉하거나 수도인 라바트 외교가에서 주요국 대사들과 교류할 때 ‘한국 문명’이 매우 독창적이라거나 한국 소프트파워의 위상이 드높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게 된다. 그런 말만 듣는 데 그치지 않고 문명과 소프트파워 현상을 주제로 논의하는 소인수 전문가 회의에 초대받거나 처음 보는 주재국 최고위급 인사가 면담 후 자신의 딸이 K팝에 빠져 이미 한국을 여러 차례 다녀왔다며 대사관 문화 행사에 자신과 딸을 초대해 달라는 요청도 받는다.



나이 교수는 소프트파워를 ‘한 나라가 다른 나라로부터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도록 영향력을 미침에 있어 자발적으로 받도록 하는 매력(attraction) 또는 공동선택권한(co-option)’으로 정의하고 문화·가치 및 대외 정책을 그 구성 요소로 봤다.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나 대외 정책이 보편성을 갖거나 주재국의 대외 정책에 반향을 일으키는 것 같지는 않으니 주재국에서 이른바 ‘먹히는’ 소프트파워는 필경 문화적 측면의 그것일 것이다. 모로코의 젊은이들은 디지털 기술과 융합된 우리나라의 수준 높은 음악, 영화, 드라마, 게임, 음식 문화, 교육, 스포츠, 전자 제품들과 특히 영화나 드라마 콘텐츠의 경우 빈부·세대·성별 간 격차와 같은 사회적 치부를 숨기지 않는 진실성과 탄탄한 스토리에 열광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문화적 매력이 양국 간의 구체적인 현안 해결에 도움이 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전혀 아니라고 봐야 할 것이다. 정부 간 관계에 있어서는 여전히 국제 관계상 국익을 기준으로 하는 냉혹한 계산이 작용한다. 즉 그런 계산에 있어 특정국과의 경제·통상 관계, 구원(old enmity) 또는 구정(old friendship), 핵심 이익에 대한 입장 등이 우선적으로 작용하고 문화는 모든 조건이 같을 경우 어떤 입장을 전달할 때 그 톤의 부드러움이나 딱딱함의 정도에나 영향을 주거나 또는 아니거나일 것이다. 즉 일본 젊은이들이 한국 비자를 받기 위해 우리 영사관 앞에 줄을 설지언정 이런 호의나 관심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는 하등의 도움이 안 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면 문화를 구체적인 외교 목적 달성을 위해 활용하고자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를 위해서는 먼 미래를 내다보는 전략적인 계획과 투자가 필수적이다. 특히 우리나라와 모로코같이 지리적으로 멀고 문화적으로 이질적이며 사활적 이해가 얽혀 있지 않은 국가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또한 소프트파워는 경제력·군사력에 기반하는 하드파워가 함께 뒷받침하는 스마트파워의 접근이 요구된다.

올해는 한·모로코의 수교 60주년이 되는 해로서 양국 관계의 더욱 큰 도약을 위한 좋은 계기가 되는 해다. 필자는 소프트파워가 양국 관계 발전에 있어 보다 큰 힘을 발휘하기 위해 양국을 묶는 스토리와 맥락이 필요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필자는 지난해 7월 부임 이래 그간 소문으로만 확인된 6·25 전쟁 당시 프랑스군으로 참전한 모로코 군인을 찾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부산 유엔군 묘지에 잠들어 있는 두 명의 모로코 출신 군인을 찾기에 이르렀다. 현재 그 가족과 여타 참전용사 찾기를 계속하고 있으며 어느 정도 진전을 보인 상황이다. 아울러 모로코 국가기록원이 보유 중인 프랑스 보호령 당시의 고문서를 우리 국가기록원의 도움을 받아 복원 중이다. 양측 모두 이민족 지배의 아픔을 겪은 동병상련을 의미 있는 협력 사업으로 만들어 보는 것이 이 사업의 핵심이다. 양국의 이런 문화적 연결 고리가 점차 오랜 정으로 전환돼 국익에 도움이 되는 승수 효과를 거두기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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