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낙제점’을 주기에도 아깝다. 문 정부는 어느정도 예측 가능한 위험인 ‘회색코뿔소’도, 예상할 수 없는 위험인 ‘검은백조(블랙스완)’도 모두 발생할 수 없는 변수로 치부한 채 에너지 정책을 수립했다. 그저 ‘친환경 도그마’에 빠져 현실이 아닌 이상으로 점철된 정책을 밀어붙였다. 이에 반대하는 공무원은 좌천시키거나 적폐로 몰아붙였다. 지난 5년간 다른 목소리가 나올 수가 없었다.
실제 탈원전과 신재생 급과속에 따른 에너지 수급 불안 문제는 누구든 예측 가능한 회색코뿔소였다. 원전 발전 비중은 5년새 2.6%포인트 줄고, 그 빈자리는 발전 비중이 6.8%포인트 늘어난 액화천연가스(LNG)가 메웠다. 신재생의 발전 비중은 같은기간 2.7%포인트 늘긴 했지만, 기후나 시간대에 달라 좌우되는 간헐성 제어를 위해 LNG의 발전 부담이 오히려 늘었다. 값비싼 LNG 사용을 늘림에 따라 전기요금을 당연히 인상해야 했지만, 문 정부는 ‘탈원전에도 요금인상은 없다’는 공약(空約)을 지키기 위해 요금을 억눌렀다. 결과적으로 문 정부가 약속을 지키긴 했다. 문제는 5년 임기의 문 정부와 달리, 우리 국민의 삶은 이후에도 계속 된다는 점이다.
회색코뿔소도.. 블랙스완도 무시하고 밀어붙인 탈원전
문 정부의 에너지 정책 덕분에, 한국경제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수렁 속에 허우적 댄다. 그 대표 사례가 한전이다. 한전은 자산을 모두 팔아도 버틸 수 없을 만큼 재정상황이 악화됐다. 지난 5년간 마른수건까지 쥐어짜서 겨우 버텼지만, 이제는 그 마른수건마저 팔아 넘겨야 하는 실정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블랙스완에, 에너지 가격이 2배 이상 치솟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에너지 정책 수립 시 예상치 못한 위기발생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했다. 글로벌 에너지 가격이 최근 몇년새 요동치는 상황에서, 한전이 이에 대응할 수 있게 충분한 힘을 비축토록 에너지 정책을 설계해야 했다. 반면 문 정부는 신재생 에너지가 화석연료 대비 가격경쟁력이 높아지는 ‘그리드 패리티’에 조만간 도달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에 탈원전과 신재생 보급에만 열을 올렸다. 에너지전문가와 전문관료들의 경고는 그저 ‘원전 마피아’나 ‘반(反) 환경론자’들의 외침일 뿐이었다.
그러면서 주요국들로부터 ‘박수’를 받기 위한 작업에는 어느 정권보다 적극적이었다. 주요 선진국들 조차 ‘탄소중립 무임승차’를 위해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상향에 소극적이었지만, 문 정부는 아예 국제사회에 이를 대대적으로 공표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NDC 상향안 철회를 검토했지만, 문 정부는 이 같은 상황까지 예측했는지 국제사회에 NDC 상향이라는 ‘대못’을 제대로 박았다. 결국 국제사회로부터의 극찬은 문 정부가 받고, 전기료 급등 및 산업경쟁력 저하와 같은 관련 문제 수습책임은 윤 정부가 모두 떠안게 됐다.
30조 적자 우려되는 한전.. 낙제점도 아까운 文정부 정책
한전의 재정상황은 문 정부 에너지 정책이 왜 낙제점도 아까운지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대응 여력이 바닥난 한국전력은, 지금과 같은 연료비 급등 시기에 쓸 수 있는 카드가 없다. 한전은 연료비 급등으로 급격한 전기요금 인상이 필요하다며 결국 정부를 압박 중이다. 한전은 오는 21일 ‘실적연료비(1kWh당 ±3원)’ 조정을 앞두고, 매년 결정되는 기준연료비 인상 외에 총괄원가상승분까지 요금에 반영해야 된다는 입장이다. 실제 한전의 요청이 받아들여질 경우 전기요금은 지난해 대비 2배 가량 껑충 뛸 전망이다.
다만 기획재정부가 ‘물가잡기’에 올인한 상황에서 한전의 이 같은 요구는 묵살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한전 측은 자본잠식 우려로 ‘상장폐지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세종 관가에서는 한전의 추가 요구사항이 관철되기는 커녕, 실적연료비 인상과 같은 기본적인 요구 또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한전이 16일 내놓은 설명자료를 통해 “최근 유례없는 국제 에너지가격 폭등으로 인해 기존 연료비연동제 가동만으로는 현재 한전의 재무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며 “한전은 이번 3분기 연료비조정단가 3원 인상 요청뿐만 아니라 추가로 전기요금 제도개선 방안에 대해서도 정부에 협의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한전은 정부 측에 △기준 연료비 조기 조정 △연료비 조정단가 상·하한 확대 △유보 등으로 회수못한 연료비 미수금 정산 △요금에 원가 상승요인 반영 등을 요구했다.
우선 한전 측은 올 상반기 연료비가 급등한 만큼, 직전 1년간의 연료비를 바탕으로 정해지는 ‘기준연료비’를 한시바삐 재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준연도 직전해 12월부터 기준연도 당해 11월까지의 연료비 변동분을 근거로 산출되는 2022년도 기준연료비(1kWh당 9.8원)는 올 10월에야 모두 반영된다.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이 전기요금인상으로 이어졌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요금 인상 시점을 차기정부(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로 늦춘 탓이다. 정부는 이 같은 늦은 기준연료비 인상으로 한전이 입은 손실만 5조원 내외라고 보고 있다.
한전 측은 이에 더해 올 하반기 실적연료비를 한시바삐 재산정해, 이를 즉시 요금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1년새 유가는 2배, 석탄가격은 3배이상 각각 치솟은 상황에서 지난해 산정한 기준연료비 만으로는 버틸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한전 측은 이에 더해 실적연료비 조정단가의 상·하한을 확대해 연료비 변동분 대부분을 전기요금에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실적연료비는 분기당 1kWh당 ±3원, 연간으로는 1kWh당 ±5원으로 제한돼 있다. 한전은 올 2분기에 1kWh당 33.8원의 요금을 인상해야 했지만, 연료비 조정단가 제한으로 정부에 ‘1kWh당 3원을 인상해 달라’고 요청했으며 이마저도 묵살됐다. 정부는 연료비 연동제 도입 당시 전기료 급등을 막기위한 안전장치로 이 같은 제도를 도입했지만, 결국 한전의 적자 누적으로 국민이 치러야 할 부담은 이자비용까지 포함시 오히려 늘었다는 것이 한전의 판단이다.
한전은 ‘ 비상시 유보’ 등으로 횟수하지 못한 연료비 미수금을 추후에 받을 수 있는 제도 도입도 요구했다. 현재 전기요금이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될 경우, 기재부 장관은 임의로 요금인상을 억제할 수 있다. 실제 정부는 지난해 ‘코로나19와 관련한 국민의 경제적 부담 완화’를 이유로 실적연료비 인상을 수차례 유보한 바 있다. 한전 측은 추후 미수금 정산이 가능할 경우, 정부가 ‘전가의 보도’처럼 쓰는 ‘비상시 유보’ 카드를 쉽게 꺼내지 못할 것이라 보고 있다.
한전 측은 총괄원가 등 원가 상승요인 또한 전기요금에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전은 애초 오는 2030년까지 전력망 보강에 47조 5000억원을 투입할 예정이었지만, 문재인 정부의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상향으로 추가로 30조원 이상을 투입해야 한다. 에너지저장장치(ESS) 구축 비용까지 감안하면 한전의 전력망 관련 투자액은 더욱 늘어난다. 반면 지금과 같은 요금체계에서는 한전이 전력망 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빚을 내 조달해야 한다. 전력망 투자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블랙아웃(대정전)’이 발생할 수 있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는 신재생과 액화천연가스(LNG) 발전단가가 계속 우하향할 것이라는 ‘나이브’한 가정을 바탕으로 에너지 믹스를 구축하도록 해, 지금과 같은 에너지 위기를 촉발했다 볼 수 있다”며 “한국은 사실상 섬나라이자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95%에 달한다는 점에서, 이전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이상에 근거한 망상같은 정책’이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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