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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소송 땐 투기자본 먹잇감…‘100% 자회사’로 대상 축소를

■다시 기업을 뛰게 하자

2부. ‘규제 주머니’ OUT

<1>기업 성장판 갉아먹는 상법·공정거래법

[대주주 감사선임 의결권 3% 제한]

경영권 공격 표적…정족수 미달도

경쟁국 비교, 국제적 정합성 갖춰야

[6촌내 보유지분 신고 동일인 제도]

누락 고의성 없어도 불량기업 낙인

촌수 과잉범위 줄여 유연한 적용을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해 9월 7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공정거래법 발전 방향 토론회에서 대학교수와 연구소 위원들이 열띤 토론을 하고 있다. 기업들은 3%룰, 다중대표소송제 등 기업 경영 발목을 잡고 투기자본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는 상법과 공정거래법 규정을 고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연합뉴스




# 코스닥 상장사 K사는 2020년 한 사모펀드와 감사위원 선출을 두고 맞붙었다가 완패했다. 최대주주인 A 회장은 34.26%의 우호 지분을 갖고도 25.06% 지분을 보유한 사모펀드에 졌다. 문제는 이른바 ‘3%룰’에 있었다. 사모펀드는 규제의 허점을 노려 유령 회사를 세워 3%씩 지분을 쪼개는 방식으로 18%의 의결권을 행사했다. 이를 예상하지 못한 A 회장은 감사 선임 안건을 철회하며 백기를 들었다.

기업들은 각종 규제가 경영 환경을 옥죈다고 호소하고 있다. 뭉텅이 규제가 기업 공격으로 ‘한몫’ 잡으려는 외부 세력들의 악용을 부추긴다는 비판도 나온다.



◇사모펀드 공격 빌미된 상법·공정거래법

기업 감사위원의 독립성 확보를 목표로 내세운 상법상 감사위원 분리 선임 제도(3%룰)가 대표적이다. 규정은 감사위원 선출 시 대주주가 몇 %의 지분을 가졌더라도 의결권은 3%만 행사할 수 있게 했다. 대주주가 뽑은 감사위원이 제대로 된 감시 역할을 하기 어려우니 외부 견제를 통해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확보하자는 취지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외부 세력이 제도를 악용해 회사에 감사를 밀어넣고 이를 활용해 각종 딴죽을 걸며 발톱을 드러내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감사는 회사에 영업 보고를 요구할 수 있고 각종 내부 기밀 자료도 열람할 수 있어 경영권 공격에 앞서 좋은 표적이 된다.

경영 환경을 개선한다는 취지와 달리 주주 간 이합집산을 부추겨 기업 분쟁을 더욱 촉발한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H사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19%의 지분을 가진 회장의 장남 B 부회장과 동생 C 사장(43%)이 감사위원 선임을 두고 붙었다. B 부회장은 ‘3%룰’을 활용해 소액주주들을 대거 포섭하며 승리했다. 업계 관계자는 “회사가 ‘나쁜 기업’으로 낙인찍히는 등 부작용만 극심해졌다”고 지적했다.

분쟁이 없는 회사에서도 부작용이 나타났다. 올해 주주총회에서 랩지노믹스·한국비엔씨·테라젠이텍스 등 일부 기업은 ‘3%룰’로 감사 선임 안건의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감사 선임에 실패했다. 이런 상황이 되풀이되자 한국상장회사협의회와 코스닥협회는 “주주 평등 원칙에 어긋난다”며 제도 폐지를 촉구하기도 했다.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손자회사 임원의 불법행위 등에 손해배상 소송을 걸 수 있도록 한 다중대표소송제도 기업이 걱정하는 문제다. 현행법은 모회사가 지분을 50% 이상 보유한 자회사를 대상으로 비상장회사 1%, 상장회사 0.5%의 주식을 6개월 이상 보유한 모회사 주주에 소송 자격을 준다.

경제계에서는 이 제도 또한 투기 자본이 악용할 소지가 높다고 지적했다. 지분을 사들여 계열회사에 소송을 연이어 걸면서 ‘흔들기’를 시도하고 이를 바탕으로 소액주주들을 끌어들여 경영권 공격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지도 모르는데…총수 6촌까지 따져 자료 제출

이름도 잘 모르는 먼 친척까지 따져가며 자료 제출 의무를 강제하는 공정거래법상 ‘동일인’ 제도도 기업들을 숨 막히게 하는 규제다. 2020년 2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이해진 네이버 당시 글로벌투자책임자(GIO)를 지정 자료 허위 제출 행위(공정거래법 위반)로 검찰에 고발했다. 2015년 회사가 제출한 기업집단 지정 자료에서 사촌이 지분 50%를 보유한 회사 등 20개 계열회사를 누락했다는 이유였다. 회사는 “기업집단 지정에 영향을 주지 않을 정도의 작은 회사에 대한 일부 누락일 뿐”이라며 단순 실수라고 항변했지만 소용없었다. 공정위는 “총수 친·인척으로부터 증빙 받기 쉽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총수에게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보고했다면 실수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작 고발장을 검토한 검찰은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무혐의 처분했지만 회사는 ‘불량 기업’으로 낙인 찍힌 뒤였다.

공정거래법상 자산 총액 5조 원을 넘어 기업집단(재벌)으로 지정되면 기업 총수를 ‘동일인’으로 보고 6촌 이내 혈족이나 4촌 이내 인척, 비영리법인과 그 임원 등 관련자의 보유 기업 지분 등을 파악해 신고해야 한다. 신고가 부실하다고 판단되면 형사 처벌 대상이 된다. 기업과 경제계에서는 동일인 신고 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하다는 지적이다.

◇부작용 속출…국제적 정합성 갖춰야

학계와 경제계에서는 기업의 발목을 잡는 이런 규제들을 적극적으로 수정하거나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주선 강남대 교수는 한국경영자총협회 토론회에서 “3%룰로 인한 의결권 제한으로 감사 선임 안건 처리가 불가능한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며 “감사위원 제도를 운용하는 다른 나라에 대한 검토를 통해 국제적 정합성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중대표소송제는 최소한 일본 수준으로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일본의 경우 다중대표소송제를 인정하고 있지만 소를 제기할 수 있는 기준을 ‘100% 완전 모자회사 관계, 모회사 주식 1%를 6개월 이상 보유한 경우’로 정하고 있어 한국보다 까다롭다. 이 제도를 연구한 김신영 한국법학원 박사는 “상법에 기업집단 차원의 내부 통제 시스템 구축 의무 규정을 마련하는 방법”을 제안하기도 했다.

기업 규제를 푸는 데 그치지 않고 기업을 도울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상법 중 회사법을 별도로 분리해 일명 ‘모범회사법’을 제정하자고 제안했다. 과거 기준에 맞춘 규제를 현 시점에 맞게 개선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신영수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동일인의 친족 범위 규정과 관련해 “3대·4대까지 넘어가면 외국 국적 보유자가 적지 않고 이런 경우 자료 거절 등 집행 자체가 곤란한 상황도 발생한다”며 “촌수보다 유연성을 두고 적용상의 구체적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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