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기준금리를 한꺼번에 0.75%포인트 올리는 ‘자이언트스텝’을 단행했지만 인플레이션은 여전하다. ‘R(경기 침체)의 공포’까지 현실로 다가왔다. 금융통화위원을 지낸 함준호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27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경제의 추운 겨울이 오래갈 것”이라며 “힘들어도 혹독한 구조 개혁으로 나라 전체의 펀더멘털(기초 체력)을 다져야 한다”고 고언했다. 이어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경제의 실상을 솔직하게 말하고 경제 활력을 찾기 위해 구조 개혁에 동참해줄 것을 설득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물가와 관련해서도 “유류세 인하 등 정부의 노력과 별개로 민간의 고통 분담이 불가피하다”며 “결국 생산성 향상이 물가 압력을 낮추는 정공법”이라고 밝혔다. 함 교수는 한국과 미국의 금리 역전 가능성이 크다고 전제한 뒤 “신흥 시장이 국지적 불안에 빠질 수 있다”며 “자본 유출이 일어나지 않도록 외환 당국의 신축적 환율 운용과 선제적 외화 유동성 확충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특히 “내년에 경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며 “금융이 건전성을 유지해야 경제가 어려움을 뚫고 나갈 수 있는 만큼 금융회사들의 자본 확충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어디까지 금리를 올릴 것으로 보는가.
△미국의 긴축이 예상보다 훨씬 더 빨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긴축에 실기했다. 축적된 유동성에 물가 상승의 불씨가 붙어 금리 인상 경로가 굉장히 가파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미국에서는 명목 기준금리가 3% 후반까지는 올라가야 중립 수준으로 볼 수 있다. 갈 길이 멀다. 대차대조표 축소 효과를 감안해도 연말까지 3% 중반 정도로 인상할 것으로 본다. 내년에는 중립금리 이상으로 오르면서 미국 경제가 침체에 진입할 수 있다.
-우리 통화정책은 더 복잡하다. 금리를 덜 올리면 자본이 이탈하고 너무 올리면 부실이 커진다.
△미국의 긴축 속도가 빨라 한미 간 금리 역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금리 역전으로 항상 자본 유출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경제 상황과 펀더멘털이 중요하다. 고령화 때문에 우리 잠재성장률이 미국보다 높다고 확언하기 어렵다. 금리 역전이 상당 기간 갈 수 있다. 경제의 기초 체력과 재정·금융 시스템의 건전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흥국 위기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신흥국 경기가 좋지 않은 와중에 미국이 금리를 올리고 이를 완충할 중국 경제의 뒷받침도 없다. 신흥국이 쓸 통화정책이나 재정 여력이 바닥났다. 신흥국들이 국지적으로 경제 불안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무역 구조와 공급망 등을 감안할 때 신흥국 경기가 나빠지면 우리 수출 여건이 악화한다. 파급의 영향을 주시하면서 연쇄 충격에 대비해야 한다.
-지금은 위기 초입이므로 더 좋지 않은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경제의 추운 겨울은 오래갈 것이다. 가계·기업 모두에 버블이 많이 끼여 있다. 유동성이 축소되면 실상이 드러난다. 소비나 투자의 부정적 영향이 오래갈 것이다. 부채 디레버리징(축소) 과정은 고통스럽다. 금융사들이 도산하면서 고통받는 금융 위기 형태는 아니지만 거시적 불황이 지속될 수 있다. 이를 극복하려면 구조 개혁과 더불어 펀더멘털을 다지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코로나19 이전부터 4차 산업혁명이 구조 개혁을 요구해왔는데 팬데믹으로 개혁 주문이 더 커지고 있다. 돌이킬 수 없다. 재정·통화정책으로 미뤄왔지만 여력이 줄고 있다. 고통스럽지만 구조 개혁을 해야 할 시기가 닥쳤다.
-물가가 큰 문제인데 뚜렷한 처방전이 없다.
△금융 위기 때는 수요 정책으로 대응했는데 지금은 수단이 별로 없다. 순수한 일시적 공급 충격이면 기다리면 되는데 수요 요인까지 작동했다.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면 총수요를 관리해야 한다. 통화를 긴축하고 재정을 푸는 것은 모순이다. 재정은 금리 인상의 충격이 집중될 취약 계층에 투입해야 한다.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고 구조조정의 여파를 최소화하는 데 재정을 써야 한다.
-긴축으로 인한 구조조정의 파고가 클 것이라는 뜻인데.
△자영업과 한계 기업 구조조정을 활성화하면서 경제가 가라앉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해외발(發) 인플레이션의 충격이 잦아들 때까지 버텨야 한다. 공급 충격에 대응하려면 궁극적으로 생산성 향상이 정공법이다. 경기를 희생하며 인플레이션을 잡아야 하므로 가계·기업 전부 고통을 분담해 견뎌내야 한다. 규제를 완화해 기업 혁신과 시장 경쟁을 촉진하는 것이 공급 측면의 해답이다.
-긴축으로 우려되는 것은 부실이다.
△우리는 소규모 개방 경제이고 기축통화도 아니다. 그런데 민간과 정부 부채를 합친 ‘매크로 레버리지’가 자본 유출 위험이 없는 선진국 수준으로 높아지고 있다. 우리가 감내할 수 있느냐는 우려가 있다. 선제적 부채 관리가 필요하다. 우리 국채는 안전 자산이 아니다. 외국인들은 특정 국가의 부채가 감내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고 판단하면 국채를 던지고 나간다. 신흥국 외환 위기의 원인은 두 가지다. 금융 부실보다 외환 위기를 더 일으키는 것은 재정이다. 재정 건전성을 상실하면 통화가치가 폭락해 위기로 이어진다. 부채 문제가 생기지 않으려면 실질성장률이 실질금리보다 높아야 한다. 구조 개혁을 통해 잠재성장률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국가 경쟁력 순위는 외려 떨어졌다.
△우리는 팬데믹 이전부터 잠재성장률이 하락하고 있었다. 통화·재정정책으로 견뎌왔는데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 경제의 민낯이 드러난 셈이다. 혹독한 구조 개혁의 시대가 왔다. 구조조정에 따른 갈등을 흡수할 포용력·통합·신뢰 같은 사회적 자본이 중요하다. 이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대통령과 정치권이 경제 상황을 국민들에게 솔직하게 말하고 경제 활력을 되찾으려면 고통스럽지만 구조 개혁과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설득해야 한다. 옥석 가리기는 금융이 하는 것이다. 금융이 구조조정을 이끌도록 제도적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금융의 역할을 강조했는데 그간 포퓰리즘 수단으로 많이 활용돼왔다.
△외형만 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금융자산 비율이 지난해 3분기 기준 11배에 달한다. 규모는 선진국과 비슷하다. 양적으로 팽창했다고 제대로 된 기능을 한다고 볼 수는 없다. 양질의 투자 정보를 생산해 자금을 생산적인 곳으로 흘러가게 하고 제대로 쓰이는지 감시하는 것이 금융 본연의 기능이다. 이런 측면에서 금융의 실력이 떨어졌다. 금융을 실물경제를 지원하는 보조 장치로 보는 견해가 많다. ‘정치 금융’으로 바뀌었다. 금융의 공공성을 강조한 나머지 금융을 자꾸 수단으로 삼고 있다. 그러면서 금융 산업이 낙후됐다. 금융회사들도 자산 성장 위주의 경영에 머물러 있다. 그런 것들을 싹 바꿔야 금융회사들이 자산 운용 실력을 늘리면서 자체적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구조조정을 이끌 수 있다.
-부실과 관련해 국가 부채가 걱정이다.
△국가 채무 규모는 아직 괜찮지만 인구 구조 변화 등을 감안하면 뻔히 보이는 재정지출 규모가 있다. 국가 부채가 빠르게 늘 수밖에 없으므로 지금부터 관리해야 한다. 재정과 경상수지 적자가 겹치는 ‘쌍둥이 적자’까지 우려된다. 재정준칙 마련은 대외적으로도 (국가 부채를 관리한다는) 효과적인 시그널이 된다. 해외 투자가들이 재정 건전성에 의구심을 품으면 조달 금리가 올라간다. 선진국은 국가부채관리청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한계 기업 처리도 현안이 되고 있다.
△정부부터 정책금융을 과감하게 줄여나가고 감독 기구에서 자산 건전성 분류를 더 엄격하게 하는 등 구조조정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운영해야 한다. 한계 기업을 깔고 앉지 않게 유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본시장에서 구조조정이 잘 이뤄지도록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
-긴축에 따른 부동산 경착륙 우려는 없을까.
△금융권의 부동산 관련 대출이 2000조 원을 넘는다. 부동산 경기의 하강 속도가 너무 빨라도 문제다. 연착륙을 위해 시장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주택 자산이 가계에 너무 묶여 있는데 유동화하는 것이 좋다. 집값이 떨어지면 어쩔 수 없이 주택을 팔아 대출을 갚게 되고 그러면 가격이 또 하락할 수 있다. 이를 막을 시장을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가격이 급격하게 떨어지면 관련 기구를 만들어 낮은 가격에 사서 임대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면 가격 급락을 막고 차주는 은행 빚을 갚을 수 있다. 주택금융도 더 장기화돼야 한다.
-부실로 금융 시스템이 교란되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는데.
△한국은행에 따르면 3년물 국채 수익률이 4%로 올라가고 성장률이 1%로 하락하면 대부분의 금융권은 괜찮은데 보험권 자본이 규제 수준까지 떨어진다. 국채 수익률은 이미 4% 가까이 갔고 성장률 1%도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그 이상의 충격이 발생할 수 있는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한다. 금융사의 자본력이 강하다고 낙관할 상황이 아니다. 특히 비은행은 자본이 취약한 구조이므로 감독 당국에서 적정성을 제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내년에 경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고 기업 수익성이 나빠져 대손이 늘 수 있다. 금융 위기가 다시 발생하면 안 된다. 끝까지 금융 부문의 건전성을 유지해야 경제가 어려움을 뚫고 나갈 수 있다. /young@sedaily.com
◆He is…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나 상문고와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에서 금융경제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캘리포니아대 샌타바버라캠퍼스 경제학과 조교수와 한국개발연구원(KDI) 금융팀 연구위원을 거쳐 2000년부터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로 재직해왔다. 금융개혁위원회 전문위원, 금융발전심의위원회 위원, 예금보험공사 비상임이사, 한국금융학회 부회장 등을 맡았으며 2014년부터 4년 동안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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