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파티게이트’ 불신임 투표에서 살아남았던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성 비위 측근 인사와 ‘거짓말 논란’으로 결국 물러난다. 후임 총리는 올여름 열리는 보수당 지도부 경선과 이후 10월에 개최되는 보수당 전당대회에 맞춰 선출될 예정이다.
존슨 총리는 7일(현지시간)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대표직에서 내려오겠다"고 밝혔다. 다만 "보수당이 후임자를 선출할 때까지 총리직에 있겠다"고 말했다.
2019년 7월 취임한 존슨 총리는 지난해 말부터 코로나19 봉쇄 기간에 방역 수칙을 어기고 여러 차례 총리 관저에서 파티를 벌였다는 파티게이트에 휘말렸다.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4월 12일 경찰이 존슨 총리 등에게 벌금을 부과하면서 사태가 일단락되는가 싶었지만 5월 25일 영국 정부가 존슨 총리의 적나라한 행동 등이 담긴 파티게이트 조사 결과 보고서가 공개되며 논란에 다시 불이 붙었다. 결국 지난달 6일 보수당 하원의원들의 신임 투표까지 진행됐지만 이때도 찬성 211표, 반대 148표로 간신히 총리직을 유지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한 달도 안 돼 이번에는 거짓말 논란이 그의 정치생명을 흔들었다. 올해 초 보수당 하원의원인 크리스토퍼 핀처를 당의 원내 부총무로 임명할 당시 그의 성 비위 문제를 사전에 인지했는지 여부에 대해 존슨 총리는 처음에는 “몰랐다”고 부인했다가, 이후 “관련 보고를 받은 사실을 잊어버렸다”고 말을 바꿨다. 핀처 의원은 지난달 30일 술에 취해 남성 2명을 만진 혐의로 원내 부총무 자리에서 물러났다.
총리의 거짓말 논란이 불거지면서 영국 내각과 각 부처, 의회 관계자 등 50명이 넘는 인사가 존슨의 자진 사퇴를 요구하며 줄줄이 사퇴해 그를 압박했다. 존슨 총리는 전날만 해도 자신의 사퇴를 촉구한 최측근 마이클 고브 주택장관을 해임하면서 단호한 태도를 보였지만, 사임하는 내각 관계자 등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자 결국 손을 들었다.
존슨 총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대(對)러시아 강경 대응에 앞장서며 지지층 결속을 시도했지만 도덕성 훼손 문제를 만회하지 못했다. 여기에 최근 영국 경제를 덮친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 우려도 존슨 내각에 대한 불만을 키웠다.
존슨 총리의 사의 결정으로 그는 동료 의원들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해 물러난 테리사 메이 전 총리와 마찬가지로 당내 반발로 불명예 퇴진하는 단명 총리로 남게 됐다. 또 각료들이 줄사퇴한 가운데 존슨 총리가 가을까지 시한부 총리직을 유지하게 됨에 따라 앞으로 국정 혼란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보수당 일각에서는 존슨 총리가 당장 총리직에서 내려오고 임시 총리가 임명돼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한편 존슨 총리의 사임으로 불확실성이 수그러들며 영국 파운드화 가치는 상승했다. 환율은 전날 한때 파운드 당 1.1876달러까지 하락해 2020년 3월 이후 2년여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지만, 존슨 총리의 사임이 보도된 후 1.1994달러까지 상승했다.
이제 관심은 후임 총리에게로 쏠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스(NYT)는 리즈 트러스 외무장관, 나딤 자하위 재무장관 등을 유력 차기 주자로 소개했다. 존슨 총리가 임명한 트러스 장관은 떠오르는 정치 스타이자 보수당 정권 최초의 여성 외무장관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러시아 신흥재벌(올리가르히) 개인에 대한 제재를 적극 옹호하면서 인기가 치솟았다.
자하위 장관은 최근 10년 사이 보수당 내에서 입지를 크게 확대한 인물이다. 리시 수나크 전 재무장관이 사임한 지 단 몇 시간 만에 장관으로 발탁됐다. 이 밖에 2019년 존슨의 당내 경쟁 상대였던 제러미 헌트 전 외무장관, 사표를 던져 존슨 총리에게 타격을 준 수나크 전 재무장관 등도 유력한 차기 주자로 거론된다고 NYT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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