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굽이 산길을 돌아 내려가다 보면 만나는 조그만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만나는 풍경이 이색적이다. 각종 악기를 연주하는 모양의 가로등들, 거리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클래식 선율 등등…. 해발 700m에 위치한 산골 마을 치고는 평범한 모습이 아니다.
21일 찾은 강원도 평창군 ‘계촌마을’이 이 같은 모습을 갖춘 데는 이유가 있다. 이 마을은 매년 여름이면 클래식의 성지로 변한다. 벌써 8년째다. 세계적인 첼리스트 정명화, ‘건반 위의 구도자’ 백건우 등 세계적인 거장들도 모습을 드러낸다. 올해는 밴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자인 피아니스트 임윤찬도 무대에 선다.
축제의 개최자는 현대차정몽구재단과 한국예술종합학교다. 하지만 이 축제의 모태는 따로 있다. 계촌초등학교의 ‘계촌별빛오케스트라’가 주인공이다. 계촌별빛오케스트라는 2009년 처음 만들어졌다. 당시 권이오 교장이 ‘음악이 있어 즐거운 학교’를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전교생에게 1인 1악기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거창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곳은 아이들이 방과 후 학원을 다니거나 문화적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학생들도 매년 줄어들어 폐교 위기까지 갔던 곳이었죠. 이런 문제의 해법으로 시작된 것이 오케스트라였던 것 같습니다.” 방과후부장을 맡고 있는 최연진 선생의 설명이다.
오케스트라에 대한 소문이 나면서 계촌마을의 많은 것이 바뀌었다. 2015년에는 현대차정몽구재단과 한예종이 함께 진행하는 ‘예술마을 프로젝트’ 지역으로 선정되면서 ‘클래식마을’이라는 명칭을 얻게 됐다. 오케스트라를 지원하려는 손길도 이어졌다. 매주 월요일에는 한예종 학생들이 찾아와 재능 기부를 하고 수·목요일에는 다양한 분야의 최고 실력자들이 아이들을 가르친다. 특히 지휘를 맡고 있는 이영헌 선생은 부산시립교향악단과 인천시립교향악단 수석을 지내고 경희대·동덕여대 등 대학 강단에도 섰던 실력자다.
오케스트라 활동은 철저히 학생들 위주로 돌아간다.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 실제로 단원 전원이 모여 합주 연습을 할 때 도중에 한 학생이 갑자기 집으로 가야 한다며 자리를 뜨는 모습도 보였다. 그만큼 학생들의 자율성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전교생이 모두 악기를 다뤘지만 지금은 36명 중 1명이 빠지고 35명이 단원으로 활동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어린 연주자들의 열정이 식은 것은 아니다. 학생들은 일주일에 10시간씩 연습한다. 한창 뛰어놀 나이의 아이들에게는 어려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악기를 손에 쥐면 누구도 딴짓을 하지 않는다. 가끔 “어깨가 너무 아파” “여긴 너무 힘들어”라며 칭얼대는 모습도 보이지만 일단 연주에 들어가면 아무 말 없이 몰두한다. 최 선생은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흥얼거리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며 “6학년 학생들은 연습이 끝난 후 자기들끼리 손을 맞춰 보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효과는 적지 않았다고 한다. 학생들 간 유대감도 생기고 협동심도 커졌다고 한다. 1학년 학생들이 자기 키만 한 악기를 들고 다니고 연주가 끝나면 직접 챙기는 등 책임감도 강해졌다. 그뿐 아니다. 이 선생은 “아이들이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면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은 수학 능력이 크게 향상됐다는 점”이라며 “정서적으로 불안한 아이들도 안정을 찾는 모습을 자주 본다”고 강조했다.
계촌별빛오케스트라는 지난 7년간 계촌클래식축제 오프닝 공연을 책임지고 있다. 이날도 다목적 강당에서는 오펜바흐의 ‘지옥의 오르페우스(천국과 지옥)’ 서곡에 등장하고 우리에게 ‘캉캉’으로 알려진 무곡이 흘러나오는 등 공연 준비가 한창이었다. 올해는 캉캉 외에도 파헬벨의 ‘캐논’, 영화 ‘사운드오브뮤직’ 등 3곡을 연주할 계획이다.
학생들의 실력은 타 학교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이다. 그럼에도 ‘왜 우리 학생들 중에는 음대에 가는 학생이 한 명도 없냐’는 불만을 표하는 사람도 있다. 학교의 생각은 다르다. 배정희 교장은 “우리가 오케스트라를 하는 것은 음악인을 양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하나의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초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학교가 할 일은 음악을 좋아하도록 만드는 것 이상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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