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타협의 예술이라 했는데 윤석열 정부 들어 정치에 타협은 없고 반목만 넘쳐난다. 그 결과 낯부끄러운 ‘역대 최장’ 기록들이 속출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장관 공백은 4일 기준 71일을 넘겨 2000년 인사청문회 도입 이후 최장 기록을 깼고 검찰총장은 공백 66일 만에야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가 구성됐다. 임명 소요 기간, 여야 대치로 국회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이 불투명하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박근혜 정부의 채동욱 검찰총장 임명까지 걸린 124일 기록을 갈아 치울 듯하다.
국회는 54일간 공전 끝에 가동됐으나 싸움박질만 한다. 법제사법위원회는 윤석열 정부의 인사 문제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으로, 행정안전위는 경찰국 신설 문제로, 국방위·외교통일위·정보위는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탈북 어민 북송 사건 등으로 거친 설전이 오가고 있다. 온 국민이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충격으로 극심한 고통 속에 있는데 이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보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50일 넘게 민생 입법을 팽개친 의원들은 1000만 원이 넘는 세비를 받아 챙겼다. 이런 몰상식의 정치를 언제까지 봐야 하나.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의 지리멸렬은 참담하다. 연금·노동·교육·규제 개혁 등 과제가 산적해 있는데 지난 정부 탓만 할 뿐 제대로 하는 일은 없다. 윤석열 대통령을 등에 업은 이른바 ‘윤핵관’들의 전횡과 당권을 둘러싼 이전투구는 실로 가관이다. 169석의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와 여당이 하려는 일에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다. 지난 5년의 집권 기간 동안 국민의 기대를 저버려 심판받은 정당답게 자숙하고 국정 쇄신에 힘을 보태야 하는데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가장 큰 책임은 윤 대통령에게 있다. 국민 통합과 협치에 대한 국민의 기대를 저버린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 지지율은 28%(한국갤럽, 표본 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포인트)까지 추락했고 비슷한 결과가 속출하고 있다. 대선 이전 윤 대통령은 당내 경선 후보들과 이준석 대표의 힘을 더하고 안철수와의 단일화를 이끌어내는 ‘덧셈 정치’를 보여줬다. 정권 교체를 위해 보수 세력을 하나로 모아 대선에서 이긴 것이다. 만약 대선 후에도 야당의 힘까지 더하고 지역과 성별을 초월한 탕평 인사로 국민 통합을 이루는 덧셈 정치로 나아갔다면 윤 대통령은 지금 압도적인 지지율로 취임 100일을 느긋하게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뺄셈 정치’를 했다. 특수통 검사 출신과 측근 중심의 편파 인사로 대선을 함께 치른 보수 동지들은 짐을 쌌고 유승민과 이준석 등을 계속 덜어내 지지층은 실망했고 걸핏하면 전 정부를 탓하는 언사로 민심은 싸늘하게 식었다.
문제는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라는 점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지층만을 바라보는 뺄셈 정치를 하는 꼴이 지겨워 윤 대통령을 뽑았는데 정권 교체 이후 훨씬 낮아진 정치 수준에 폭발하는 짜증을 견뎌내야 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하지만 임기 초반의 윤 대통령에게는 실수를 만회할 기회가 충분히 있다. 꼬인 실타래는 역순으로 풀어가면 된다. 인사도 통합, 정책도 통합, 오직 국민 통합을 위한 정치가 해법이다. 여야도 상대방을 흠집 내거나 깎아내리거나 발목을 잡아 상대적 우위를 점하려는 뺄셈 정치는 접어야 한다. 이제는 서로의 성과를 공유하고 더 좋은 나라를 만드는 일에 협력하고 발전시켜나가는 덧셈 정치로 가야 한다.
미국의 칼럼니스트 데일 도튼은 ‘자네, 일은 재미있나?’라는 책을 통해 지금 하는 일이 잘 안 풀리고 앞날도 막막하기만 한, 그러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변하는 것도 두려워하는 이에게 조언한다. 남의 흠을 들춰내고,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고, 타인을 바꾸려 애쓰지 말라고. 그 대신 이 순간의 자신에게 집중한다면 매일 쌓이는 스트레스가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말이다. 휴가 중인 윤 대통령에게도 이런 변화가 생겼으면 좋겠다. 국민은 이 순간 자신에게 주어진 국정 과제에 집중하는 대통령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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